수많은 직업 중에 내가 사진가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때 화가의 꿈을 품었던 아버지의 재능이 나에게도 이어진 결과 아닐까 하니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평소 나에게 무엇이 되라는 말씀이 없었다. 대신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일마다 당신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때문에 먼 길을 돌아 다소 늦은 나이에 사진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 또한 아버지를 닮은 내가 밟아야 했던 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종종 나의 사진과 글에 딸이 등장하는 까닭은 내가 사진가가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본의 아니게 평범한 직장생활을 그만두어야 했을 당시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던 나에게 딸과 함께 보낸 시간들은 달콤한 위로가 되었다. 차곡 차곡 사진 속에 쌓인 딸과의 추억들은 한동안 절망의 나락에 빠졌던 나의 삶을 회복시키는 원천이자 사진가로 살아가게 하는 지속가능한 동기가 되었다. 그러니 딸은 나에게 영원한 뮤즈인 셈이다.
뉴욕에 살 때 딸을 데리고 시내 곳곳에 자리한 미술관을 찾곤 했다. 혹시나 우리 딸에게도 그림의 재능이 있지 않을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미술관에 갈 때마다 유모차에 빠짐없이 그림도구를 실었다. 그러나 보기좋게 예상은 빗나갔다. 미술관은 딸에게 지루한 곳이었나 보다. 아빠의 기대와는 달리, 독특한 화풍으로 한 세기 전 거장의 반열에 오른 후안 그리스(Juan Gris)의 경이로운 추상화 앞에서 딸은 천연덕스럽게 딴청을 피운다. 사진에 증거로 남은 그 결정적 순간이야말로 나의 걸작이 되었다.
요즘엔 점점 늘어가는 사춘기 딸의 이유없는 반항에 위태위태한 분위기가 집안을 감돈다. 그저 무덤덤하게 넘겨도 될 것을, 행여나 엉뚱한 길로 셀까 노파심에서 시작된 나의 잔소리에 이내 서로의 심기만 더 상하곤 한다. 결국 아빠의 꾸지람으로 가라앉는 이 반항의 뿌리도 알고보면 정녕 나를 쏙 빼닮은 탓이거늘, 오늘도 모순된 일상이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제자리걸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촬영장소: 뉴욕. 아일랜드의 토속어인Mo Cuishle(모쿠슈라)의 뜻은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권투선수인 주인공이 그녀의 코치로부터 받은 링네임인 동시에 영화 속 주요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