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의 스케치’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연출을 맡았던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감독이 작고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다. 이 다큐영화가 현대 건축의 거장인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건축 유산을 장대하게 조명할 것으로 기대한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실은 대부분의 촬영은 게리의 스튜디오와 사무실에서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게리의 직원들과 동업자들이 폴락의 인터뷰에 응하고 심지어 그는 게리의 내면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정신과 전문의까지 찾는다.
세계 도처에 세워진 상식을 뛰어넘는 게리의 건축물들을 80분 남짓한 영상으로 보여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촬영마저 특별한 기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현장 스케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불편한’ 다큐영화가 갈수록 흥미로운건 간간이 보여주는 게리와 폴락의 대화가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각자의 업계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두 사람이 털어놓는 고민은 때론 어줍은 사회초년생 같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소명과 세상의 편견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느 예술가들과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게리는 자신의 신념이 상업적인 면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때마다 언젠가 폴락이 그에게 해준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윤을 우선으로 하는 영화산업에서 창작을 책임진 감독이자 연출가로서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폴락은 제작과정의 아주 작은 곳에서 다름의 가능성을 찾는다는 것. 게리는 그것이 바로 그가 건물을 설계하면서 발견하는 작은 공간 하나가 결과물 전체의 매력을 되살릴 수 있다는 그의 신념과 같다고 말한다.
날마다 뉴스가 전하는 코로나19신규 확진자의 수가 두 자리든 세 자리든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불편하고 불행한 소식인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외 여행은 고사하고 가족과 만나기 위해 사려던 국내선 항공권마저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주변 분위기를 의식해 여러번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다 결국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좀 나아지면 만나자”라는 알쏭달쏭한 여운의 말을 남긴 채.
흔히들 코로나19 이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묻는다. 때늦은 후회지만 날마다 마스크에 얼굴을 숨기고 지켜야 할 ‘거리두기’는 정말이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가혹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추억 속 한 켠에 뭍힐뻔한 대수롭지 않은 찰나의 순간마저 지금은 그저 간절한 소망에 그친다. 그 간절함은 이 병마가 할키고 간 상처에서 얻는 쓰디 쓴 교훈일테다. 지극히 평범해서 솔직담백한 폴락과 게리의 대화가 상품성 없는 ‘불편한’ 다큐 영화를 또다른 걸작으로 완성시킨 단초가 되었다면, 미우나 고우나 누군가와 함께 스쳤던 삶의 소소한 순간들은 어쩌면 행복으로 가는 밑거름 아니었나 돌아본다. ‘행복은 일상에 의한, 일상을 위한, 일상의 행복임이 중요하다’라고 말한 한 심리학자의 달콤한 지적처럼 말이다.
촬영장소: 서울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http://blog.naver.com/hankooyun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