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동네 꼬마들의 즐거운 함성이 길게 울려 퍼진다. 이 요란한 녀석들 위의 드높은 파란 하늘을 보니, 가을이 깊어가는 모양이다. 뉴욕에 살 때는 가을이 오면 종종 딸을 데리고 도심을 벗어나 소풍을 가곤 했었다. 그때마다 딸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던 한마디가 있다.
“Are we there yet? 아직 멀었어요?”
무한하게 반복되는 이 물음 앞에 애써 꿈꿨던 딸과의 달콤한 소풍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구나 싶었다. 딸과 나누고 싶었던 소소한 대화 마다 더해지는 이 말 한마디 앞에 과연 어떤 아빠가 평온할 수 있을까. 나의 인내는 쉽게 바닥을 드러내곤 했다. 폰에 설치된 지도 앱 만이 딸의 질문에 대답을 줄 뿐이었으니, 어쩜 딸은 내가 아닌 지도 앱과 여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추억을 더듬는 사이 동네 꼬마들이 잠잠하다 싶더니 ‘싸아악 싸아악’ 누군가 낙엽을 쓸기 시작한다. 마치 가을을 연주하는 그 싸리비만큼 이 고적한 계절에 잘 어울리는 악기가 또 있을까. 머지않아 바삭한 낙엽을 태운 구수한 향이 동네에 퍼지면, 언제 올까 싶었던 겨울이 코 앞에 다가왔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한 해가 이렇게 간다.
싸리비의 연주를 따라 떼구루루 굴러가는 낙엽들의 소리를 들으니 문득 키르키즈스탄에서 이시쿨(Issyk Kul) 호수로 갔던 여정이 생각난다. 도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대개 이런 흙 길을 달려야 했었다. 처음엔 이 길이 흥미로웠지만, 차에 쉽게 무리가 갈까 봐 속도를 낼 수 없었으니 이내 지루함이 찾아왔다. 결국은 여러 번 차를 세워 수리하고 달리길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언덕 너머 정비소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서 너스레를 떨며 차를 고치던 고려인 3세 운전수를 나 역시 이 말 한마디로 보채곤 했다.
“Are we there yet?”
러시아어로 말하는 그의 대답을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차를 수리하고 나면 금방 도착할 거야’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린 꼬박 이틀을 더 이렇게 달려 출발한지 사흘 만에 간신히 이시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거라며 여전히 너스레를 떨며 웃던 운전수 아저씨. 정녕 그곳의 시간은 2,000년 전 베드로가 편지에 남긴 고백처럼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이’ 흐르고 있었던 걸까. 운전수의 눈엔 이 옹색한 순례자가 딱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어디선가 너스레를 떨며 웃고 있을 것 같은 그 운전수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 그게 언제인지.
“Are we there yet?”
촬영장소: 키르키즈스탄.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청정국가다. 이시쿨(Issyk Kul)호수는 4,000미터 높이의 텐산산맥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두 번째 크기의 고산 호수다. 제주도 면적의 3배에 이르는 이 거대한 호수는 구 소련시절부터 최고의 휴양지로 꼽힌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 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