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인류는 철에 따라 생존하는 방법을 달리해왔다. 농경사회에선 철마다 변하는 기후와 자연 조건에 따라 일의 성격과 삶의 방식도 달랐을 것이고, 문명사회에서는 입학과 졸업, 취직과 승진, 심지어는 결혼과 출생까지도 철에 맞춰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결국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가 줄곧 희망해온 공통분모는 철따라 심고 거두는 삶이 아닐까.
하지만 누구나 철에 맞게 순리대로 살 수 없음 역시도 세상이 마주한 현실이다. 철 지난 옷가지나 구닥다리 살림마저 사치로 여겨지는 궁핍한 이들의 세상에선 오직 가난만이 대물림되고 있다. 6년 전 오늘의 사진 속에서 그 중 한 사람을 다시 만난다.
그 날, 결국 차량 안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동행한 현지인 동료의 거듭된 조언에도 불구하고 코 앞까지 닿는 주린 손길과 애절한 눈빛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라도 하나 쥐여 보내야 하지 않을까 망설이고 있을 때 이를 지켜 본 동료가 외지인의 발길이 드문 곳에서 생길 수 있는 돌발상황을 염려하여 현장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떠나려는 차창 안까지 뻗은 그들의 손길과 눈빛 사이로 간신히 매달린 자그마한 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손의 주인공은 근처 수돗가에서 더위를 식히다 뒤늦게 이 무리를 발견하고 달려온 여자아이였는데, 사람들 틈에서 보일락 말락한 지극히 작은 몸체와 함께 채 마를새 없었던 손과 이마의 물기가 간절함을 배로 외치는 듯하다.
그들의 형편은 지금도 나아진 게 없다고 한다. 지금도 어느 차창에 매달려 있을 것만 같은 그 아이의 손도 그 사이 많이 자랐을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인색하게도 차창 밖 풍경에 무관심하다는 듯 문을 닫아버린다. 그 날로부터 한참 철이 지난 오늘, 사진 속 아이의 반짝이는 물기가 여전히 촉촉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촬영장소: 에티오피아.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통치를 받지 않은 국가로 6.25전쟁 당시 6천여명의 군인을 파병하여 한국을 도왔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아프리카연합 본부가 설치되는 등 외형적으론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적 대처능력과 부족간 멈추지 않는 권력투쟁으로 인해 심각한 빈곤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 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