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를 시작하다
“틈새시장을 잘 공략하셨네요. 플러스 사이즈를 생각하시다니 아이디어가 좋으시네요. “
빌드를 7년 넘게 운영해오면서 주변에서 항상 듣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 빌드를 사업적인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빌드를 시작한 것은 이러한 비즈니스적 전략에 의한 것이 아니였다.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이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건인 외모, 몸매, 옷과 가방 등의 소유 가치… 그런 조건들이 채워지면 여성은 진정으로 아름다워지는가? 여성의 아름다움을 겉모습 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반화된 패션계에서 우리는 ‘무엇이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답을 얻고 싶었다.
2015년 빌드의 오프라인 런칭을 준비하면서 해외 마켓 리서치를 계획했다. 그 출장은 단순한 시장 조사 만이 목적이 아니였다. 패션을 하면서 마음 속에 늘 품고 있었던 질문, “무엇이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만한 실체를 찾고 싶었다.
그 출발점으로 우리는 미국, 시카고를 선택했다. 시카고의 오피스 우먼은 당당하고 지적이며,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섬기는 고객과 일치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카고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아키텍쳐 투어(Architecture Tour)를 했다. 현재 세계에서 건축을 꿈구는 모든 이들에게 교육의 장이라고 불리울 만큼, 시카고는 전세계 유명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건물들로 가득차 있어 도시 전체가 미술 작품과 같은 곳이다.
워킹 투어(Walking Tour)에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그 예술적 감각과 섬세한 디테일, 옛 것과 첨단 건물과의 조화에 감탄이 일었다. 더불어 투어 가이드인 시카고 자원봉사 시민에게서 느껴지는 시카고라는 도시에 대한 자긍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시카고가 이렇게 멋진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1870년대에 일어났던 “대 화제(Great Chicago Fire)”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카고 역사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카고 대화재란?
시카고의 대화재는 1871년 10월 8일 밤 9시경에 일어난 화재이다. 시카고 대화재는 현재까지도 미국 역사상 3대 대재앙에서 3위를 할 정도로 (1위는 당연히 911테러) 엄청난 사건이였다. 그러나 시카고의 현재의 위상은 대화재가 없었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시카고 대화재는 시카고라는 도시를 알기 위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대화재는 현재의 시카고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미국인들의 개척 정신을 한 층 더 끌어 올려준 사건이였다고 볼 수 있다.
화재가 일어나고 1년이 안되어 잿더미 위에서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유명한 건축가들을 불러 모아 전에 있던 건물들보다 더 크고, 훌륭하고, 튼튼하게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의 시카고는 도시 전체가 미국 최고의 건축 전시장이 되었다.
이런 역사를 보고 있자니 이 도시가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난 사람은 아름다움을 넘어선 감동을 주듯이 말이다. 단순히 멋진 건물이 아닌 고난과 역경 속에서 탄생한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마음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던 또 다른 것은 바로 역사 박물관에서 본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의 사진전이었다.
비비안 마이어는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보모, 가정부, 간병인 등으로 일하며 헐렁한 티셔츠나 구식 블라우스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시카고 곳곳을 돌며 16만 여장의 사진을 찍었다. 생전에는 아무에게도 자신이 찍은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2007년 영화 감독 존 말푸프가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사온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 상자를 개봉하면서 그녀의 사진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비비안 마이어는 여가 시간을 활용해 거리, 사람, 사물, 풍경 사진을 찍었는데, 일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찍은 그녀의 사진은 사진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사진 중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특별해 보이지도 않고, 세상적인 미의 기준으로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명품 옷을 걸친 것도 아닌데 왜 이 여성들이 아름다워 보일까?’
그것은 나이와 외모, 직업과 상관없이 외적인 기준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사진의 여성은 우리에게 ‘나의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여성으로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태도에서 온다’ 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아름다움이란 내가 무엇을 가져서도 아니고, 어떻게 꾸며서도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정신없이 보내던 출장 기간 중, 잠시 짬을 내어 지인을 만났다. 뉴욕의 유니세프 본부에 근무하면서 한사람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뉴욕의 워킹맘이었다. 뉴욕의 워킹맘의 삶이 궁금했다.
하지만 대화가 지속 되면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7년이 넘는 뉴욕에서의 생활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한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처음 출장을 올 때 해답을 얻고 싶었던 그 질문… 어떤 여성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에서도 그것을 피하지 않고 자신을 다듬어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버티어 내는 모습!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가 찾으려고 했던 아름다운 여성, 바로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의문. ‘무엇이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말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한 답을 ‘블레싱 앤 레스팅(Blessing & Resting)‘이라고 말하고 싶다. ‘B & R이 있는 여성이 아름다운 여성이다’ 라고 말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여정을 떠나려 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는 여성을 찾아가는 여행. B&R이 있는 여성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