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가진 발달장애인으로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를 나온 배성연군. 지금의 그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던진 어머니 강선옥씨를 만나 그녀의 인생의 BnR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사랑으로 잉태한 아이의 자폐 진단
Q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성연이를 낳고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언제 알게 되신 건가요?
결혼하고 5년만에 성연이를 갖게 되었는데 미숙아로 태어났어요. 주변에 임신 소식을 알리고 축하 받고 나왔는데 하혈을 하는 거예요. 죽을 뻔한 상황에서 병원에 갔는데 아이의 심장이 뛰는 거에요. 사실 제가 임신이 잘 안 돼서 불임클리닉을 다녔는데 하혈을 많이 하니까 병원에서 중절 수술을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큰 병원에 갔더니 양수는 부족하지만 아이가 살아 있다는 거에요. 결국은 임신 8개월 때 1.7 kg 미숙아로 태어났어요. 아이가 울지도 않고, 뇌에 피도 차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는데 병원에서 나중에 장애가 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사실 전 다운증후군 아이들을 지나가다 가끔 본적은 있지만 장애라는 것을 한번도 경험해 본적도 없고 ‘자폐’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어요. 어려서 정말 순했는데 세 살 반 때 행동이 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 공항에 갔는데 한쪽을 보면서 끝도 없이 계속 걸어가는 거예요. 몇 시간을 놔둬도 계속 걸어요. 그 때 오빠가 아무래도 병원을 데려가 보라고 했어요. 그런다고 애가 순해서 짜증을 내거나 반항을 하지도 않고 성품이 순했어요.
*자폐 장애(自閉障碍) 또는 자폐증(自閉症)이란 의사 소통의 문제와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의 특징을 보이는 발달 장애이다
성연이는 너무 귀하게 태어났고 저희 부부는 둘다 아이를 좋아했어요. 키우면서 이해 안되는 행동들을 해서 혼내기도 많이 했지만 아이는 예뻤어요. 그리고 그때만 해도 자폐가 교육을 시키고 치료를 하면 낫는 병인 줄 알았어요.
Q 어렵게 가진 아인데 ‘자폐’라는 진단을 받고 마음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처음 진단을 받고 마음이 정말 힘들었어요. 성연이는 장손이고 아들이니까, 또 힘들게 가진 아이였으니까요. 애기가 잘못될까 봐 유기농 재료만 사서 먹이고 온갖 노력을 다 했는데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이 컸어요.
절대음감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다
Q 성연이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제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음악을 많이 틀어주었어요. 성연이는 찬양으로 태어나서 찬양으로 키운 아이 거든요. 6살 때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데 말도 못하는 애가 ‘아아아아~’하면서 찬양을 따라하는 거에요. 음정과 박자가 정확하게 부르더라구요! 옆에 계신 집사님이 ‘성연이는 경음악의 대가네요.’ 라고 하더라구요. 그 때 ‘우리 애가 음악에 소질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피아노 밖에 없으니까 한 번 가르쳐 봤죠.
방 바닥에 엄지손가락은 1번 검지손가락은 2번 순서로 건반에서 연주하는 손가락 운지법을 바닥에 썼어요. 그렇게 ‘나비야’의 계이름을 가르쳤는데 오래 걸렸어요. 하루에 5분씩, 차 타고 가면서도 가르쳤어요. 손가락을 다 익히고 피아노에 앉혀놓고 치라고 하니까 그대로 치는 거에요. 사실 성연이는 ‘절대음감’이었어요.
*절대 음감(absolute pitch, perfect pitch): 기준이 되는 다른 소리의 도움 없이 소리의 높이를 음이름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그때부터 악보없이 1년 동안 직접 가르쳤어요. 사실 그때에 성연이는 5분도 못 쳤어요. 7살 이후로 말귀를 좀 알아들으니까 이론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4학년 때까지는 제가 가르치다가 5학년 때부터 레슨을 받았어요.
Q 성연이를 위한 특별한 교육법이 있으셨나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온누리 교회 양재 사랑부(장애인부)를 다녔는데 한 엄마가 성경 말씀 암송 학교를 소개시켜 줬어요. 이걸 시켜 봐야지 했어요. 성연이가 반복을 좋아하는 아이라 제가 1단계를 배우고 와서 책을 사서 바로 그날로 성연이와 말씀 암송을 시작했어요. 서울예고 들어갈 때 300구절 외웠고, 대학 들어 갈 때 550구절 정도를 외우게 되었어요.
10년을 하다 보니까 자다가도 생각나고 항상 말씀이 제게 힘이 되요. 오늘 성연이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들 때 시편 23편 1절이 생각났어요. ‘주님이 내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에요.
그리고는 성연이와 함께 말씀 암송과 더불어 성경 통독을 시작했어요. 성연이 대학 들어갈 때 쯤엔 성경을 5독을 했어요. 서울대 들어갈 때 자기소개서에 책 읽은 걸 써야 하는데 거기에 성경 5독 이라고 썼어요.(웃음) 지금은 13독 째 하고 있어요. 10독이 넘어가면서 앞뒤 흐름도 알게 되고 아이가 반복을 좋아하니까 말씀 암송도 통독도 좋아해요. 아침마다 제가 ‘우리가 살길은?’ 하면 성연이가 ‘오직 말씀 !’이라고 대답해요. (웃음)
Q 시댁이나 친정에서도 성연이의 장애를 아시고 걱정하셨을 거 같아요.
저희 가정이 시부모님도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셨는데 성연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기도를 시작하셨어요. 지금은 교회를 다니시고 집안 분위기가 오히려 좋아졌어요.전 어딜 가든 우리 성연이가 ‘집안의 복덩이’라고 말해요.
Q 성연이가 장애가 있는데 일반 아이들과 함께 음악을 공부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것 같은데 어떤 점이 힘드셨나요?
성연이가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를 전공을 시키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레슨을 받으려면 돈도 돈이지만 우리 얘를 어떻게 가르칠까 걱정이 되더라구요. 근데 그 때 뷰티플 마인드라는 문화 단체를 만났어요. 충무로에 있는 충무아트홀에서 장애인과 저소득층 아이들을 음악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거에요. 그 단체가 생긴지 3개월 즘 된 초창기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뷰티플 마인드: 장애인 소외계층 아동 청소년을 위한 맞춤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뮤직아카데미
그 당시만 해도 그곳에 피아노 치는 애가 별로 없어서 성연이가 제일 잘 쳤고, 또 저처럼 열정을 가진 엄마도 없었어요. 아주 좋은 대학교 강사 선생님을 만나서 예고 1학년 1학기 때까지 4년을 배웠어요 레슨비는 무료였지만 레슨 시간도 짧은 것이 아쉬웠죠. 더 열심히 하고 싶은데… 그래도 그 때 성연이가 무대도 많이 서 봤고 외국에서 연주하는 은혜도 입었어요.
서울 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다
Q 장애를 가진 아이가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것을 넘어서 서울예고를 들어갔어요.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서울 예고를 보내기 위해 많이 기도하고 준비했어요. 이런 고민을 교회 사랑부 엄마들에게 털어놓았는데 거기서 피아노 선생님을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그분이 제 사정을 아시고 도와 주신다고 하셨어요.
사실 처음에는 저도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서울예고는 음악 뿐 아니라 공부를 잘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우리 애가 음악은 잘하지만 공부는 잘 할 수가 없거든요. 학교 찾아가서 교장, 교감 선생님도 만나 뵙고 부탁드렸지요. 3월 2일이 개학인데 2월 28일에 입학 허가가 나왔어요. 서울예고를 떨어지면 이 학교 저 학교 다 못 가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교육청에서도 도움을 주셔서 결국은 입학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정식으로 입학의 문이 열렸어요. 그때 성연이가 처음 길을 터놔서 지금은 장애 학생이라도 실기만 잘하면 들어갈 수 있어요.
Q 성연이의 서울예고 생활은 어땠나요? 잘 적응했는지 궁금해요.
학교가 처음엔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까 정말 잘해 주시는 거에요. 음악을 하는 애들이니까 선생님들께서 학생 한사람 한사람을 음악가를 대하듯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어요. 친구들이 장애를 가진 성연이가 피아노를 치면 좋아 보였나 봐요.
솔직히 실기로 봐도 일반 애들보다 부족한 점이 있어요. 테크닉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감성, 감정이 다른 애들보다 부족했어요. 그래도 장애아이들이 맑고 순수하다 보니까 우리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또 따로 있더라구요. 연주가 깔끔하고 순수하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성연이는 모차르트, 바흐 음악을 좋아해서 그런 연주를 잘 하더라고요. 성연이는 외우는 것 , 기계적인 그런 분야에 뛰어나니까요.
학교에서는 자폐 성향 때문에 애들을 좋아해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게 부족해서 친하게 누구와 지내는게 어렵나 봐요. 사실 중학교 때 특수학교를 보낼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일반 아이들도 사춘기는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성연이는 뷰티풀 마인드에서 연주여행을 열심히 다니면서 사춘기를 별 탈 없이 잘 보냈어요. 또 순하다 보니까 친구들도 점점 성연이를 좋게 봐주고 친하게 지냈어요.
Q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대에 들어갔어요. 정말 대단한데 준비가 힘들지 않으셨나요?
서울대에 특별전형이 있어요. 하지만 힘들었어요. 총 6명이 시험 봤는데 그 중에 1명만 합격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은혜로 된 거죠. 입시 준비하면서 기도를 많이 했어요.
성연이가 언어적으로 부족해서 면접 준비를 집에서 면접 상황 같이 연습하곤 했어요. 나중에 교수님께 들어보니 면접 잘 했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성연이를 키우며 배운 사랑과 나눔을 베푸며 살기로
Q 요즘은 간증과 연주를 위해 성연이와 함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신다고 들었어요.
초청하는 교회에 가서 간증도 하고 연주도 하고 있어요. 장애가 있는 성연이가 연주를 하니 사람들이 감동을 받더라구요. 보통 예배나 집회에 가면 제가 5분 정도 간증하고 성연이가 성경구절을 50절정도 암송을 해요. 그리고 40분정도 피아노 연주를 하면 많은 분들이 좋아하세요. 교회에 처음 온 새신자인데 은혜를 받으셨다면서 헌금을 하고 싶다는 분도 계시고 밥을 사주겠다는 분들도 계세요.
저희 부부가 교회에서 만났지만 깊이 있는 신앙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성연이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는 안 나오고 원망만 했어요. 우리 가족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그러다 점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제 생활도 변화되고,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과 나눔의 삶이 제 마음에 들어왔어요. ‘이제 내 인생을 손해보면서 살자. 더 나누어주고, 베푸는 삶을 살면서 좀 더 선한 영향력을 펼치자’라는 마음이 들어서 그걸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Q 성연이를 키우시면서 알게 된 깨달음이나 자신이 좀 더 성숙해진 부분이 있을까요?
성연이 아빠는 성연이가 아프고 나서 성연이 7살때부터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시작했어요. 불법체류자도 있고 여러가지 상황이 안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성연이 아빠가 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는데 너무 헌신적으로 그들을 돌보고 사랑해요. 그냥 의무적으로 했다면 이렇게 까지 열심히 못했을텐데, 성연이가 아프고 난 후 사람과 생명에 대한 긍휼함과 귀중함이 생긴 거예요.
저도 전에는 예쁘고 말 잘 듣는 아이들만 좋아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너무 귀하고 사랑스러워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있는 사랑부를 섬기면서 기쁨을 느껴요. 만약 성연이가 아프지 않았었으면 저는 아마 저와 제 가족밖에 모르고 살았을 거에요.
Q 발달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소개해주고 싶어요. 그분을 만나면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예요. 그 분은 우리 모두에게 목적이 있어서 우리를 만들셨거든요.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서 삶의 목표와 목적이 달라지면 아이에 대한 태도도 달라져요.
저는 사실 성연이 매니저처럼 살고 있어요. 제 삶이 없다 보니 스스로 답답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 때가 왜 없었겠어요. 그 시기는 이제 지났죠. 지나가면서 이 삶이 정말 행복하구나 이 아이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삶,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이 있어 전 행복해요. 그 행복을 다른 발달 장애 엄마들과 나누고 싶어요.
Q 앞으로의 어머님이나 성연이의 비전이 있다면요?
서울대학교 음대 졸업 연주 때 성연이가 한시간 동안 네 곡을 연주했어요. 보통 다른 아이들은 앵콜 준비를 안하기도 해요. 그런데 성연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앵콜곡으로 준비했어요. 리스트의 탄식이라는 곡과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함께 편곡된 곡이었죠.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곡이잖아요. 앞으로도 연주와 찬양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이 되면 좋겠어요.
글. 김정아,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