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유치원에 들어갔을 나이로 보이는 한 아이가 학습지를 빼곡히 채운 덧셈과 뺄셈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이내 곁에서 지켜보던 엄마의 탄식과 함께 아이가 적은 3-3의 답을 놓고 서로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린다. 3에서 3을 빼면 0이 뻔하지 않냐는 엄마의 꾸지람도 잠시, 아이는 오른편에 있는 3을 빼놓으면 왼편에 홀로 남는 다른 3이 고스란히 정답이 된다는 것이다. 순간 주변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비록 결과는 빗나갔지만 나름의 논리와 상상으로 답을 모색했던 아이의 독특한 셈법이 참 인상적이었다.
중학생인 딸이 수학에 영 흥미를 못 붙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심심찮게 유행어처럼 떠도는 ‘수포자’라는 말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과목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딸의 소질을 종종 아내를 닮은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내심 나도 학창시절부터 굳이 수학을 왜 배워야만 하는지 되묻던 반항섞인 질문에 여태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미 한 인터넷 포털의 국어사전에선 ‘수포자’를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라 정의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인터넷의 곳곳에는 ‘수포자’ 말고도 ‘과포자’, ‘영포자’, ‘국포자’ 등 과목마다 이미 스스로의 가능성을 접은 듯한 아이들의 한 숨 섞인 푸념들이 화면을 메운다. 한창 배움의 도전을 거듭할 시기에 포기가 일상이자 일상이 포기인 아이들이 날마다 늘고 있다.
베이징에서 다니는 딸의 학교에서도 요즘 아이들과 더불어 이들의 학부모들, 그리고 교사들까지 모두가 나서 수학공부에 대한 새로운 교육철학과 학습방식을 학교와 가정에서 적용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가령 암산 위주로 결과에 이르는 답만 채점하는 대신 단순한 연산에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과정에 세부 가산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평소 결과에만 주목한 일상에 익숙한 나는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는 딸 덕분에 한편으론 새로운 삶의 질서를 배워가는 모험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당장 희망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도의 슬럼지역이지만 이곳에 세워진 학교에서 배움을 향한 아이들의 도전과 열정은 이 나라의 더위만큼이나 그 열기가 뜨겁다. 누구에겐 쓸모없어 버려진 몽당연필이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이 몽당연필에 저마다의 꿈을 담아 미래를 그려 나간다. 보잘 것 없는 몽당연필을 쥔 이들의 야무진 손에서, 봄에 피어나는 새싹의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새싹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해 포기가 일상이자 일상이 포기였던 이곳의 일상에 희망의 빛이 움튼다.
촬영장소: 인도(Gyana Rainbow English & Odia School): 이 학교가 위치한 곳은 서남아시아 최대의 슬럼지역인 뭄바이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큰 슬럼지역이다. 한국의 밀알심장재단과 인도 현지의 비정부기구가 함께 이곳에 학교를 세웠다. 하루벌이가 미화 1달러에 체 못 미치는 일용직 종사자들의 자녀들이 이 학교를 통해 기초교육의 기회를 얻고 있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