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진열된 물놀이 용품들이 마트를 가득 메운다.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 흔한 풍경인데도 볼 때마다 어디론가 돌연 떠날 것 같은 설레임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다른 이유로 들린 매장에서 정작 물놀이 용품들 사이를 기웃거리는걸 보니 자못 나의 마음도 이미 그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있나 보다.
휴가란 모름지기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치열한 삶의 현장이든, 인터넷 가상공간이든, 과거로부터의 상처이든, 미래에 대한 고민이든, 내가 있던 자리를 잠시나마 떠나는 것이 휴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마땅히 누릴 찬스다.
그 해 여름 가족과 제주도로 떠났다. 그리고 이른 새벽, 최성원의 노랫말처럼 제주도의 푸른 밤이 채 가시지 않은 어둑한 길을 따라 바닷가로 향했다. 귓가를 적시는 파도소리가 마치 엄마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자던 딸의 숨소리처럼 길고 가늘게 밀려왔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날이 밝기 전 반반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따금 삶의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 사진에 보이는 그날의 새벽을 떠올린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딸의 모습처럼, 고이 잠든 바다가 바라보이는 사진 속 그 반반한 바위는 마음의 안식처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곁에 앉은 바위들도 저마다 사연을 안고 어딘가를 떠나 이곳에 모인 듯 싶다. 바위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아침 햇살에서 한 줌의 위로가 느껴진다.
촬영장소: 제주도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