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문법 중에 ‘현재완료’라는 것이 있다. 시제상으로는 분명 과거인데 과거에 시작한 일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국문법에는 없지만 수업 시간에 많이 들어서 익숙한 이 문법이 꼭 영어를 사용할 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또 다시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왕년에’라는 말로, 과거가 마치 현재의 일인 양 사는 사람과 과거의 후회에 붙들려 현재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사업에서 비교적 성공을 하고 있는 한 사람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OO, 요즘 잘나간다며… 들었어?”
“응, 들었어. 그 애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어리숙하고 바보 같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거지? 사실 그 애가 학교 다닐 때 얼마나 덜 떨어진 거 같았냐 하면….”
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그 애가 학교에서 모자란 애였는지 설명이 계속되었다. 현재 그 사람이 왜 성공을 했는지 보다는 20년 전에 그 애가 얼마나 자신보다 못한 애였는지 이야기하기 바쁘다. 20년 전의 덜 떨어진 친구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직장인 반의 영어 수업 시간에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공부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자신은 영어가 제일 싫단다. 왜 싫은지 물어보니까 학교 다닐 때 영어 수업 시간에 교사에게 혼이 난 이후에 영어를 싫어하게 되었고 지금도 영어가 제일 싫다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붙잡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이다.
이쯤 되고 보면 왜 우리나라에 현재완료라는 문법이 없는지 이상할 정도다. 과거가 우리의 현재까지 이렇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력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최근에 우연히 누군가가 이야기해 보게 된 짧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바로 ‘슈퍼맨 닥터 리, 이승복 박사’에 관한 다큐이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체조 선수가 되어 금메달을 꿈꾸었다. 18살이 되던 어느 날 훈련 중에 목이 부러져 사지마비 신세가 되었고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고 다리 뿐만 아니라 손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 과거가 자신을 묵어 두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들보다 장시간 앉아있을 수 없는 몸을 하고서도 공부를 해 뉴욕대를 거쳐 콜롬비아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자신과 같이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하고 위로하고자 의사가 되기 위해 다트머스 의대에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했다. 하버드 인턴을 거쳐 존스 홉킨스대의 재활의학과 교수가 되었다.
다큐에서 그는 전혀 자신이 다쳤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휠체어를 능숙하게 조정하며 그 어느 의사보다 병실을 빠르게 움직이며 환자들을 돌본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이 ‘슈퍼맨 닥터 리’이다.
“나에게 수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희망을 꺽지는 못했다.
나에게 육신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할 수 없다는 마음 속 장애에 갇히는 것이 무서운 일이다.
내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아마 의시가 되지 못했을 거다.
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아픔이, 고통이, 고난이, 실수가, 좌절이 나의 현재 상태에 영향을 주는 계속적 용법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고통을 극복하고 일어서서,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현재완료 결과적 용법의 삶 말이다. 아니 그렇게 내가 선택한다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스스로
어떤 삶은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과거를 털어버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용기가 비앤알러로 사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