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한 사람’이란 스테디 셀러의 저자이자 목사, 박사, 교수이다. 21년 동안 케냐 선교사였다가 지금은 선교지에서 역파견되어 한국 청년들의 멘토로 활동 중인 임은미 선교사를 만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B&R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Q 21년 동안 케냐 선교사로 계셨는데 요즘 한국에 나와계시는 이유가 있나요?
저를 소개할 때 보통은 21년 동안 케냐에 있었으니까 케냐 선교사였다고 말해요. 지금은 CAM 대학선교회의 내셔널 디렉터로 발령을 받고 한국에 와 있어요. 한국 캠퍼스 복음률이 2%, 캠퍼스 안에서 기독 동아리는 0.2%라고 하더라구요. 케냐는 복음률이 70%인데 오히려 한국의 복음률이 낮으니 케냐에서 저를 역파견한 거죠. (웃음)
Q 케냐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6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기도원을 만들었어요. 케냐에는 하루에 한 끼밖에 못먹는 아이들이 많아요.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서 15년 동안 먹이고 성경 공부를 시켰어요. 그러면서 9년 동안 나이로비 국제신학대학원에 기독상담학 전임 교수도 했어요. 방송은 안되었지만 ‘톡 투 유니스’라고 해서 예수님 잘 믿는 사람들을 불러서 간증을 하는 토크쇼를 준비하다가 발령을 받고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Q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는데 어떻게 가게 되신 건가요?
저희 집이 가난했어요.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민을 갔어요. 아메리칸 드림이 있던 시기였죠. 고모가 미리 미국에 가 계셔서 가족 이민을 갔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집은 가난하고 애는 셋이고 다 대학 공부 시키기에는 어려우니까 ‘애들 교육이라도 시키게 미국에 가자’라고 결정을 하시고 떠나신 거죠. 그때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늦은 나이에 가다보니 많이 힘들었어요.
Q 미국에서는 어떤 점이 특히 힘드셨나요?
제가 고 3이었지만 영어를 정말 못해서 미국에서 고 1부터 다시 다녔어요. 동생들은 어려서 가서 저보다 영어 배우기가 훨씬 나았죠. 한국에서 진짜 공부를 안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못하는 과목이 영어랑 수학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니 제일 필요한게 영어랑 수학이더라구요. 반 배정을 하는데 제가 영어를 못하니까 중학교 2학년이랑 같이 공부를 시켰어요. 그땐 제 자신이 비참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저보고 원어민처럼 영어를 한다고 해요. 재밌는 것이 제가 고등학생 때 미국에 갔지만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하나도 안해서 미국에서 영어를 처음 시작한 거예요. 저는 성문종합영어가 뭔지도 몰라요.(웃음)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영어를 잘해도 보통 한국식 영어를 써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을 하는 거죠. 근데 저는 번역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까 미국식으로 쓰는 거예요. (웃음) 그땐 비참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아, 하나님의 선하신(good) 뜻이 있고, 깊으신 뜻이 있고, 온전한 뜻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Q 하나님의 뜻에도 종류가 있나요?
처음 믿을 때는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구하게 되다가, 믿음이 자라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깊으신 뜻을 보게 되고, 그걸 넘어서면 하나님의 온전한(Perfect) 뜻을 보게 되요.
아프리카에는 신학교육이 없어요. 제가 아프리카에서 교수를 하게 됐는데 학생들의 95프%가 남자였어요. 저는 나이 서른의 여자였는데 남자들을 앉혀놓고 강의를 한다는 게 처음에 좀 무서웠어요.
그런데 저는 어렸을 때 딸이어서 집 안에서 차별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 아버지가 딸이 태어낳다고 미역국을 엎을 정도로요. 나중에 ‘딸이어도 괜찮다’라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았지만요. 강의를 하다보니 내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으면 이 사역을 감당 못했을 거예요. 좋은 가정에서 공주처럼 자라지 못한 것이 오히려 척박한 땅에서 선교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거죠. 이것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다’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에게 가장 큰 선은 영혼 구원 즉, 복음이예요. 로마서에 모든 것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인생의 일들이 복음의 도구가 된다는 말인 거예요. 때론 내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내 고난의 스토리가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한 사람이 주님 앞에 돌아온다면 그게 선인 거죠. 그러면 이제 그 고난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되는 거예요.
Q 딸로서 가졌던 상처는 회복되셨나요?
보통 사람들은 생일을 기쁜 날로 생각하면서 축하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생일인데 생일이어서 우울한 거에요. 왜 그럴까 깨닫지 못하다가 어느 생일날 남편이 ‘생일이니까 외식하러 가자’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가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싫다고 해놓고는 내 생일에 아무도 신경을 안쓴다고 또 섭섭한 거예요. 당황해하는 남편을 보면서 느꼈어요.
‘내 출생에 문제가 있구나.’ 내가 태어날 때 무시당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속사람을 치유하겠다고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을 읽고 우리 아버지한테 갔어요. 내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용서해야 되는 거거든요. ‘내가 아버지를 용서합니다.’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용서를 빌어서가 아니라 내가 용서를 해야 자유하게 되니까요. 나를 위해서 용서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제 묵상을 읽으면서 육신의 아버지하고 사이가 좋은 것 같다고 말해요. 누가 내 아버지하고 나하고의 이 갈등을 알겠어요. 지금은 아버지와 애인 같이 지내지만요.
Q 한국에서도 공부를 안하셨다고 하셨는데 늦게 영어로 공부하는게 힘들지 않으셨어요?
공부를 못따라가서 남들 다 졸업하는데 졸업을 못했어요. 학교에서 졸업 명단에 없으니 졸업식에 오지 말라고 그러더라구요. 집에서 너무 속상해서 엄청 울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는데 5년 5개월 걸렸어요. 대학교 1년 때까지 정신 못차렸죠.
그런데 어느날 예배 때 ‘여러분 로마서 12장 2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는 딱 이 구절에서 성령님이 임하신 거에요.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이 세대를 본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 날 은혜가 임하니까 내가 이 세대를 본받았던 걸 회개하게 되더라구요. 그 이후로 설교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도 안나고 딱 그 말씀 한 구절만 기억나요.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바로 제가 변화되었으니까요. 저는 꿈도 없고, 소망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었어요. 딸로 태어난 게 미안해서 치마도 안 안 입었고 머리도 쇼커트만 했어요. 그런 제가 변한 거예요.
‘나는 뭐가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까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때론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화장실 변기 위에서 무릎 꿇고 울며 기도했어요. 제가 나중에 간증할 테니까 도와달라고요. 교과서를 열 때마다’교과서를 달달 외우게 해달라고, 나를 도와주셔서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5년 5개월을 걸려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가 대학교에서 학위 받을 때는 최고우수상 받을 테니 준비하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기분이 이상한 거에요. 언제는 학교에 안 와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이제는 최고우수상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으니까요.
Q 고등학교를 5년 넘게 다니셨는데 그 이후에 목사, 박사, 그리고 교수까지 되신 비결이 있다면요?
당시에는 여자 목사가 거의 없었어요. 제 버킷리스트에 여자 목사. 박사, 교수가 있었거든요. 제 나이 서른 네살에 대학원 교수가 되었어요. 그렇게 되기까지 매일 같이 ‘ 교수되게 해주세요! 목사 안수 받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어요. 그래서 항상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야기해요. ‘여러분이 꿈을 갖고 있다면 매일 기도하세요.’ 라고요.
그리고 20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꾸준히 큐티 묵상을 하고 있어요. 제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제가 가진 학위나 성취한 것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한 발자취예요. 저는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말씀 묵상을 해요. 제 철칙이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거든요. 새벽 예배 설교하기 전에 꼭 묵상을 먼저 해요. 20년 동안 하루도 안거르고 매일 묵상을 하다보니 어느 날 목사 안수 받고, 어느 날 보니 대학원 교수가 되어 있고, 어느 날 보니 28쇄를 찍은 책을 썼더라구요.
Q 남편을 대학교 때 만나셨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 주변에도 결혼하고 나서 오히려 어려운 부부들이 더 많다고 하는데 덧붙여 결혼에 대한 조언도 같이요.
혼자 살면 외로움이요 둘이 살면 괴로움이에요.(웃음) 사람들이 외로움이 괴로움보다 더 힘들어서 괴로운데도 산다는 말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안 믿는 사람들이 결혼하는 이유는 행복, 크리스천이 결혼하는 이유는 ‘maximize potential’(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가능성, 남자에게 주신 가능성이 있는데 두 사람이 만나서 아내는 남편의 potential을 maximize, 남편은 아내의 potential을 maximize 하는 거예요. 서로가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결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남편을 신학대학교에서 만났어요. 키는 190cm이고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딱 반반 닮았고 몸매는 초콜릿 몸매였어요.(웃음) 지금은 초콜릿이 녹아서 없어졌지만… 매우 믿음 좋은 청년이었어요.
남편이 참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너무 가난한 거예요. 저희 아버지도 ‘얼굴 보아하니 먹고 살기 힘들겠다’고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기도하는데 ‘세상에는 돈 많은 남자도 많고, 학위가 높은 남자도 많고 잘생긴 남자도 많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남자는 드물다. 너는 어떤 남자를 구하니?’ 라고 하나님이 물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신실하고 착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남자가 좋아요.’라고 했더니 ‘그러면 빌(남편 이름)과 결혼해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결혼하게 됐어요.(웃음)
Q 임선교사님하면 입양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케냐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입양하게 되신 건지?
제가 사랑이 많아서 입양을 한 게 아니라 (사랑은 우리 남편이 많아요.) 입양한 딸 아이가 교회 주일 학교 학생이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갈 데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집에 데려오게 된 거예요. 저희 집에 애가 9명이에요. 9명이 된게 어느 날 제가 집에 갔더니 남편이 교회 중고등부 애들을 집으로 데려온다는 거예요.
아프리카는 고등학교에 가려면 돈을 내야해서 학교를 못가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기도제목으로 학교 가고 싶다는 것을 낸 애들이 있었는데 남편이 그 기도제목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겠다고 상의도 없이 데리고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남편을 경외하고 순종하라고 나와 있잖아요. 솔직히 저는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아이들을 키운 것이지 아이들을 좋아해서 입양한 것은 아니예요. (웃음)
Q 저는 책을 읽고 오랫동안 입양의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입양 덕분에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우릴 어떻게 사랑했을까를 알게 되요. 사실 우리도 양자잖아요. 내가 우리 아이들을 키워보니 솔직히 친자식이 양자보다 더 사랑스럽더라구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친자식을 내주셨어요. 친자식을 죽이기까지 양자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어요.
Q 많은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도우신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삶을 사실 수 있는지?
도와준 들, 안 도와준 들, 이게 나한테 이득이 되는 게 아니예요. 돈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걸 제가 가질 수 없어요. 다 흘려보내야 하거든요. 물질은 어차피 제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서 영광 받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물질을 흘려 보내주면 받은 사람이 ‘오,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했어요!’ ‘어저께 기도했는데 오늘 딱 들어왔어요.’라고 할 때 물질에 대해서는 나는 그냥 중간 통로인 거죠.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니까 기쁘고, 나는 쓰임 받으니까 기쁘고 그런 거예요.
Q 요즘 30-50대 여성들이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선교사님은 우울하지 않으실 거 같은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스마트폰에 설정이라는 기능이 있잖아요. 설정하는 대로 무음도 되고 알람도 되고 그렇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우울하다, 누군가 나를 욕한다, 짜증난다, 열 받는다’ 싶으면 성경을 듣는 설정을 해요. 나이가 드니까 노안이 와서 주로 성경을 오디오로 들어요. 성경을 틀어 놓고 계속 듣고 듣다 보면 마음이 바뀌어요. 괘씸했던 인간도 용서가 되고 내 마음이 바뀌어요.
제가 기독교 상담학을 전공했잖아요. 육신의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보고 처방을 해주듯이 상담가도 마찬가지에요.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숙제 중 하나가 ‘일주일 동안 하루에 10가지씩 감사를 적으세요.’라는 거예요. 감사를 적다보면 포커스가 바뀌어요.
우울증은 자꾸 자신만을 보는 거거든요. ‘내가 뭘 잃어버렸고, 내 청춘이 날아가버렸고, 이 나이가 되도록 난 뭘 했을까.’ 이런 생각을 감사로 바꾸면 ‘내가 이 나이인데 내 딸은 벌써 시집을 갔어’. ‘대학을 졸업했어’. ‘내 남편은 아직 명퇴가 아니야.’ 이렇게 하나씩 내 삶에서 감사를 찾는 거에서 회복이 와요.
Q 혹시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제가 한국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차세대, 다음 세대의 신앙에 희망이 있습니까’라는 거예요. 전 이렇게 답해요. ‘내가 살아있는 한 이 땅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다음 세대에 비전이 있습니다.’
폭풍이 지나가고 바닷가에 불가사리 무더기가 밀려온 거예요. 한 소년이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서 바다로 던지고 있었어요. 지나가던 한 남자가 ‘그렇게 하나씩 던져서 언제 다 집어넣겠냐’고 한심하다고 해요. 하지만 소년이 말하죠. ‘최소한 제가 방금 바닷속으로 던진 저 불가사리에게는 도움이 되겠지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살아있는 한, 한 녀석은 안 살리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살아 있는 한 이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그만두면 회사가 망하는 것이 아니듯 나 하나 없다고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나 하나만 상 받을 것처럼 그렇게 달리는 거예요.
삼손이 죽을 때 죽인 블레셋 사람들이 살아 생전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다고 성경이 기록하잖아요. 내 마지막 꿈은 내가 죽는 날, 나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내가 살면서 만나서 전한 사람보다 더 많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지금은 내 삶의 일들을 다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거예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