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호에는 하나님의 드러머, 황정관 교수를 만나 그의 사람 속에 드러난 비앤알 스토리를 들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교수님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께요.
저는 드럼을 연주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황정관입니다. 겸임교수로 백석예대, 명지대에 출강하고 있고 서경대, 경희대등에서 실용음악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드럼을 전혀 칠 줄 모르던 시골 청년
Q 드럼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요즘에는 유투브나 온라인 강의가 발달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드럼을 배우는 게 쉽진 않았을 거 같아요.
저희 시대에 경배와 찬양이 유명하던 때라 제가 다니는 교회가 시골교회였는데도 교회에 드럼이 있었어요. 중 1때 전도사님의 권유로 드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읍내로 나가려면 버스타고 30분을 가야 할 정도의 시골이었는데 전도사님이 기본적인 드럼을 가르쳐주셔서 찬송가 반주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조금 배운 걸로 주일날 교회에서 드럼을 쳤어요.
고 2때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와서 할머니와 살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치는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 할머니가 여든이 넘으신 권사님이었는데 어느날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는데 저에게 두드리는 은사(재능)가 있다는거에요. 저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저는 그냥 ‘내가 드럼을 치고 있어서 그렇게 이야기하나 보다’라고만 생각했었죠.
그 친구가 저에게 드럼 레슨을 받아보라고 권유했어요. 고3때 낙원상가 악기점에서 레슨 선생님을 소개받아서 1년 동안 레슨을 받으면서 결국 음악을 전 하기로 했죠. 일주일에 한번, 충청도 시골에서 두시간반 기차를 타고 서울로 다니면서 레슨을 받았어요. 저희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돈도 없고 학력도 짧으셨지만 자식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으신 분 들이라 제가 레슨 갈 때마다 어머님이 몰래 숨겨둔 돈을 레슨비로 주셨어요.
Q 신학대학을 진학하셨다고 들었는데 목회자를 꿈꾸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제가 어릴때 부터 신앙생활을 하다보니까 고등학교때 경배와찬양을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데 어린 마음에 ‘나는 먼저 신학교에 가서 말씀으로 나를 다져야겠다.’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신학대에 갔는데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학생들이 담배와 술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교 출석을 거의 안해서 학사경고를 받고 결국 그만 두었죠.
서울예대 입학, CCM 밴드 드러머가 되다
Q 그리고 그 이후에 ‘얼터’라는 CCM밴드에서 활동하셨어요. 그때 생활은 어떠셨나요?
신학교를 그만두고 임마누엘 찬양선교단에서 연주하던 형을 만났는데 그 형이 저를 서울로 불렀어요. 그 때 서울에 와서 CCM밴드 ‘얼터’를 시작하고 1-2년 정도 하다가 서울예대 시험을 보고 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학하게 되었어요. 90년대에 CCM 붐이 일었고 CCM팀이 엄청 많이 나오던 중에 제가 속한 얼터라는 팀이 있었던거죠. 저는 시골에서 자라서 서울의 음악 분위기를 전혀 몰랐어서 선생님 소개로 들어간 얼터라는 팀에서 얼터너티브 락을 하게 된거에요.
음악적으로는 덕분에 공연이나 녹음을 할 기회가 많았었어요. 공연을 1년에 500회 정도 했어요. 홍대 클럽이 활성화 되어 있던 때라 홍대에서 많이 연주 했어요. 그 때 연주했던 곡들은 예수님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들어가지 않지만 예수님을 비유적으로 표현해서 클럽에서 연주했어요. 드럼을 많이 배우고 들어간 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력적으로는 힘든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 많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서울예대 입학을 하고도 얼터 활동은 계속 하다가 군대에 갔죠. 얼터 시절에는 수입이 전혀 없었어요. 클럽에서 그렇게 연주를 해도 팀페이가 5만원 정도 밖에 안되서 팀원들 차비랑 식비로만 해도 모자라던 시절이에요. 지금은 유명한 자우림이나 윤도현 밴드도 다 그렇게 연주하던 시절이니까요.
Q 군악대 시절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감사하게도 동작동에 있는 국방부 군악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주로 대통령 행사만 하는 곳이었어요. 캄보밴드라고 지칭하는 대통령 행사가 있을 때는 팡파르라고 영빈관가서 연주를 하고, 평소에는 국방회관에서 장관 만찬 행사 연주를 했어요. 그 외의 주 일과는 음악 연습이었어요. 하루 10시간씩 연습할 수 있어서 군대에서 드럼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어요. (웃음) 군대에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던 은혜의 시간이었죠.
Q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부분은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군대 제대하고 나서 커먼그라운드라는 팀도 했고 학교 다니면서는 가수 세션활동을 많이 했어요. 전역하고 대학다니면서 2-3년 동안이 제일 활동을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박화요비, JK 김동욱,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등 세션 활동을 많이 했죠. 선배들이 워낙 일을 많이 하니까 서울 예전이라는 네임밸류가 있어서 덩달아 저도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술 여자 돈 얘기들만 오가는 공연 뒷풀이가 힘들었어요. 영적으로 지치고 그러다보니 관계가 어려워졌어요. 공연이 끝나면 저는 일찍 집에 가고 점점 사람들과는 멀어졌지만 제가 결단하는 만큼 하나님이 보상해주시더라구요. 제가 돈을 쫒지 않고 무엇을 행하던지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다 보니까 당시에는 손해볼 것 같았지만 결국 다른 곳을 통해서 보상을 해주셨어요. 세션이 없으면 학교에 일을 주시고, 학교에 일이 없을때는 신실한 음악감독을 만나게 하셔서 일을 받게 하셨어요..
하나님은 세상과는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 주시는데 하나님의 보상을 받으려면, 그것에 관한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결국은 실력이 중요해요. 자신의 일에 대한 실력이 있으면 다 괜찮아져요. 뒷풀이 안하고 일찍 간다해도 다음에 또 부르게 되는건 역시 실력을 갖춘 사람이니까 크리스천이 바르게 살려면 먼저 실력을 갖춰야 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다
Q 성공한 뮤지션이심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7년간 유학을 떠나셨어요.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도 개인 앨범도 계속 냈었지만 제 안에 드럼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드럼에 대한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죠. 그 시절 대학에서 교수님들이 강의를 하실 때 커리큘럼을 가지고 강의를 하시는게 아니고, 수업에 들어오셔서 ‘오늘 뭐 배우고 싶냐’ 물어보시면 학생들이 답을 하고 그럼 그걸 가르쳐주시는 식이었어요. 그런 방법으로 수업을 듣다보니 체계적인 드러밍(Drumming)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대중 음악의 꽃을 피운 미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했어요.
당시에 제가 드러머로 너무 활동을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라 사실 미국에 가는 것이 두려웠어요. 시간이 지나고 사람이 멀어지면 그 자리는 누군가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미국에 가버리면 다들 결국 저를 잊어버리겠죠. 주변 형들이 모두 말렸지만 그래도 가고 싶더라구요.
Q 그럼 미국 어디로 유학을 가신 건가요? LA에서 공부하지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군악대에서 알게 된 형이 다니고 있던 노스 텍사스대학교 (University Of North Texas)로 갔어요. 영어를 못하니까 그 학교에 가서 랭귀지스쿨 1년을 했는데 제가 2천만원을 들고 미국에 갔거든요. 주립 대학이라 학비가 일반 대학보단 싸긴 했지만 집세도 내야 하고 여기 저기에 필요한 돈을 쓰다보니 어쩔수 없이 학비가 더 저렴한 다른 학교로 편입해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버티다가 결국 돈이 다 떨어지고 무작정 LA로 갔어요.
사실 저는 처음부터 LA에 가고 싶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많이 있는 LA에 가서 학교는 못가도 개인 레슨이라도 받다가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텍사스에서 LA로 갔어요. LA에 갈때 제 수중에 200불이 있었어요.
텍사스에서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LA에 계시는 어느 목사님의 전화번호를 주셨어요. 그래서 무작정 전화해서 제가 LA에 왔는데 잘데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목사님께 전화드렸더니 제가 있는 곳으로 오셨어요. 아파트 렌트비와 디파짓 등을 포함해서 3천불 정도가 필요했는데 그것을 수표로 써주셨어요.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3천불을 수표로 써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목사님도 돈이 없으셔서 현금을 주신게 아니라 나중에 지불하는 수표를 써주신 거죠. 그렇게 LA에서의 첫 날을 시작하게 됐어요.
Q 정말 감사한 분이네요. 그래도 아파트만 가지고는 생활을 하기가 어려우셨을 거 같은데, LA에선 어떻게 공부까지 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전역하고 한국에서 발매했던 ‘황정관 트리오’라는 앨범 두장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앨범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께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서 냈던 앨범이었어요. 1집은 일반 앨범이었고 2집은 찬송가 앨범을 내라는 마음이 들어서 그 자리에서 곡을 편곡하고 녹음해서 앨범을 냈고, 내자마자 미국에 갔었죠. 근데 제가 텍사스에서 1년 고생하던 그 때 그 앨범이 한국 연주자들 사이에서 엄청 유명해 진거에요. LA에서 제 음반을 알고 있던 분이 소개해주셔서 전액장학금을 받고 쉐퍼드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LA에 7년을 있을 수 있었어요.
LA에 있을 동안엔 한인사회에서 나름 제가 유명해져서 한국에서 오는 가수 세션도 하고 교회에서도 반주와 연주도 했어요. 레슨 만으로 4천불 정도를 벌었어요. 집에 돈이 없어 달라고 해도 부모님이 주실 수 없었겠지만 7년 동안 한번도 집에 손 벌리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에서 저를 먹이시고 입히셨어요.
드럼이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길…
Q 지금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가르치면서 하나님을 전하신다고 들었어요. 관련하여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실까요?
미국에서 공부할때 아브라함 라보리엘 (Abraham Laboriel)이라는 정말 유명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레슨이 끝나면 항상 학생들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셨어요. 그게 너무 보기 좋았어요. 나중에 학생들을 가르치면 나도 저렇게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블레싱(blessing)이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 저는 크리스천 학교는 아니지만 개인 레슨을 하고 나면 기도를 해줘요. 그래서 학생들은 저를 황목사라고 불러요.(웃음) ‘네가 신앙이 없지만 너를 축복하고 기도해 주고싶다’라고 말해요. 그러다 보니까 학생들이 신앙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신앙과 음악 사이의 갈등에 대해 물어보기도 해요. 그런 것들이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 가는 목적은 돈 때문이라기 보다 하나님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0:31)’ 고 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세션을 가도 전도의 마음으로 가고, 학생을 가르칠 때도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다보니까 하나님께서 계속 일을 주시는 것같아요.
Q 교수님 활동중이신 ‘황정관 트리오’ 찬송가 연주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화려한 기교보다는 정말 찬양하심이 느껴져 개인적으로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찬양인도자,연주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드럼이 정말 좋았어요. 드럼을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지 않고, 그냥 드럼이 너무 좋았어요. 드럼이라는 악기가 너무 좋아서 스틱을 안고 잘 때도 있었어요. 10시간 연습을 할 때도 해야 해서가 아니고 너무 좋아서 한 거였어요. 지금도 일하는것 보다 혼자 드럼 연습하는게 너무 좋아요
그러다 보니까 드럼으로 돈을 벌어야 겠다는 목적이었다면 괴로웠을 것 같아요. 주변에 그런 목적으로 음악을 하는 친구들은 과격해지고 다 변하더라구요. 제가 순수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드럼이란 악기가 너무 좋고, 같이 있으면 행복해서 지금까지 음악을 순수하게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것 같아요. 제 후배들에게는 돈도 벌어보고 실패도 해봐야 한다고 얘기해요. 메마름을 느껴봐야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으니 실패와 시련의 여러가지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세계가 돈과 여러가지 유혹이 많은 곳인데 그 안에서 자신을 순수하게 지킬 수 있는 비결이 뭘까요?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 세션이라고 대답해요. 세션비는 한번만 해도 돈이 되니까 물질에 욕심들이 커질 수 밖에 없어요. 그 뒤에 숨은 어두운 면, 힘든 것들을 얘기해줘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듣지 않죠. 신앙이라는게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사로잡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저는 말씀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잘 컨트롤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적인 욕심과 하나님의 말씀의 법이 부딪힐 때 그 가운데 기도하면, 말씀의 법이 세상의 욕심을 이기더라구요. 이게 없으면 다 무너질 수 밖에 없죠. 일을 많이 하면 지치고 내면이 고갈되는 허무한 느낌이 와요. 하지만 한 영혼에게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면 고갈이 아니라 그 안에 샘솟는 충만한 기쁨이 있어요. 그런 기쁨 속에서 사는 거죠.
말씀만이 나의 길이요 빛이니…
Q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특히 크리스천 음악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인데 연주자들의 마음에 흑심이 많아요.하나님은 찬양 받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연주자의 마음이 순수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무슨 일에서든 말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말씀을 암송하고 되새길 때 말씀의 능력이 엄청나거든요.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는 말씀이 있는데 말씀이 우리의 삶을 조명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연주자들이 말씀을 읽고 외우면 좋겠어요. 말씀을 외울 때 힘이 있거든요. 외울 때 말씀을 떠오르게 하시고 살아 내 마음 속에 운동하게 하시니까요. 말씀을 읽지 않고 허황된 믿음만을 가지면 마음의 중심도 흔들리게 되요.
교회 문화는 세상의 문화를 쫒아갈 수 없어요. 세상의 음악의 퀄리티가 달라요. 들어가는 돈의 단위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찬양과 음악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퀄리티라도 그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없다면 영혼이 메마를 수 밖에 없어요.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창피해 하는 것 같아요. 자신들도 확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촌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더 믿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죠. 그래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크리스천 연주자들이 할 수 있는건 실력을 키우는 방법 밖에 없어요. 실력을 키우면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실력이 있으면 누구든 그 사람을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의 말을 믿어요. 그래서 대안의 한 방법은 말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실력자가 되어야 되는 것 같아요. 실력을 키우고 말씀 안에 있다면 분명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연주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글. 김정아,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