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치르듯 온 세상이 전염병과 맹렬히 싸우고 있는 지금 나는 또 다른 병과 날마다 승자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흔히들 ‘중2병’이라고도 부르는 딸의 증상을 전문용어로는 ‘사춘기 소아청소년 이상 행동’이라고 정리한다. 그러나 고약하게도 이 병은 치료약이 따로 없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피할 수 없는 마음의 성장통 같은 것인데…’라고 받아주는 너그러운 아빠가 되길 노력하지만, 오늘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저항하는 딸과 나 사이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신기하게도 인터넷엔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의 하소연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이따금 중2병에 대한 독특한 정보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령 어떤 이는 중2병의 ‘중’이 중국의 中과 같아서 이 병을 중의학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마치 코로나 19와 단순히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지난 해 한 멕시코산 맥주의 매출이 크게 줄었다는 풍문처럼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맨하튼의 도심 한복판에서 두 남성의 날선 말다툼이 이내 주먹다짐으로 번졌다. 구차한 변명 같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수동으로만 조작이 가능한 라이카 M으로 이들의 결투를 선명하게 포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흑인 남성은 권투로 아시아인 남성은 쿵후로 맞서는 이들의 엇갈린 격투방식었다. 출신과 배경이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뉴욕답게 싸움의 언어마저 달랐던 이 웃픈 결투의 승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프랑스어로 투셰(touché)라는 말이 있다. 유독 펜싱에서 이 말이 ‘찔렀다’가 아닌 ‘찔렸다’로 해석되는 까닭은 전자장비 없이 점수를 판독하던 시대에 칼을 맞은 사람이 투셰를 외쳐 자신의 패배를 선언하고 상대에게 점수를 주던 승복의 미학이 펜싱의 법도였기 때문이다. 패배를 먼저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용기는 펜싱의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오늘날의 경기에서도 지켜지고 있다.
‘무덤이 있는 곳에만 부활이 있는 법’이라고 남긴 어느 시인의 말처럼 펜싱선수의 꿈을 안고 한국에 전학 온 딸도 거듭 쓰라린 패배를 맛보며 실력을 가다듬는 중이다. 중2병을 앓고 있는 그녀는 어쩌면 아빠인 나에게도 속으로 투셰를 외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마음의 언어를 읽지 못해 줄곧 꾸지람으로 딸의 저항을 다스렸으니 사진 속 그날의 웃픈 결투와 무엇이 다를까. 때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야 나도 용기를 내어 딸에게 외쳐본다.
투쎼!
촬영장소: 뉴욕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http://blog.naver.com/hankooyun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