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처럼 얽힌 바라나시(Varanasi) 의 골목들을 빠져나와 강가에 마련된 보트 선착장인 가트(Ghat )에 도착했다. 걸음마다 매캐한 공기에 뒤섞인 인도식 향료가 콧속 깊이 후각을 자극했다. 생의 마지막을 기다린 이들의 죽음과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이 이곳 갠지스(Ganges) 강에서 함께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의 한켠에 자리잡은 화장터에선 경우에 따라 시신을 있는 그대로 강물에 흘려 보내기도 했는데, 그 물에서 몸을 씻고 옷을 세탁하고 밥을 지어먹는 이들의 표정은 곁의 화장터에 감돌던 숙연한 분위기와는 달리 태연했다.
여담이지만, 가트에서 자신의 보트에 태우려 호객하는 갠지스강의 뱃사공들 사이에서 한국의 ‘철수’란 이름은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갠지스강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이 부쩍 늘면서 이곳의 뱃사공들 중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철수로 소개한 재치있는 유머가 한국 관광객의 입소문을 탄 것이다. 소위 ‘맞춤형 마케팅’이라고나 할까. 이제 가트에 도착해서 “철수야!”라고 외치면 여기저기서 “네! 여기요!”라고 한국말로 화답하는 수많은 ‘철수’들이 서로 먼저 손님을 태우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견고했을 것만 같았던 지구촌의 가치와 질서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재앙 같은 이 상황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원인으로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절박한 이들의 숨소리도 힘을 못 내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치루면서 병들어 가는데 유명 쉐프의 요리 비법, 가창실력을 검증하는 무대, 서슴지 않고 보여주는 누군가의 사생활, 쥐락펴락 마음을 흔드는 홈쇼핑 같은 성향의 소재가 이 시국에도 흥행의 우위를 달리고 있다. 포장만 달리했을 뿐, 어쩌면 이들도 갠지스강에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반평생 아프리카에서 침팬지를 연구한 영국의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최근 미국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 말미에서 지금처럼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유머감각’을 꼽았다. 구달은 침팬지에 번호를 매겨 실험 대상으로만 취급하던 기성 연구진의 해묵은 관습을 따르지 않고 침팬지를 연구의 파트너로 대하고자 성별과 성격에 따라 사람과 친숙한 이름을 지어준 첫 사례를 이뤄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물며 침팬지도 사람처럼 대접받아 마땅한 세상에,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선 누군가를 ‘0번 확진자’란 영혼 없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매정함을 그는 에둘러 지적한게 아닌가 싶다.
촬영장소: 인도.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인이다. 이들에게 갠지스(Ganges)강은 죄를 씻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곳에서 이승을 떠나면 영원한 윤회의 굴레를 벗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반면, 위생수칙을 무시한 종교의식과 생활방식으로 오염된 강의 수질이 세계 최악의 수준에 이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