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재우고 집안 일을 끝내고 나면, 적막함 속에 집안에 있는 전자제품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이때야 비로소 하루 중 ‘짧은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 그 시간에는 바쁠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과 밀어넣어 두었던 인간의 욕망같은 것들이 고개를 내민다.
매일이 전쟁같이,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싸는 것 모든 것이 다급한 일상 속에 한량이었던 때가, 그저 걷고 싶으면 걷고 눕고 싶으면 눕고, 마음이 가는 대로 했던 때가, 비록 먹고 사는 것과 장래의 일로 고민이 가득했어도 그 고민들의 중심엔 오롯이 나만 있었던 때가 사무치고 아프게 그립곤 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잠든 늦은 시간이 되면, 낮 동안 그리워하던 잠이나 실컷 자면 될 것을, 온 집을 구석구석 뒤지며 할 일을 찾는다. 관심사가 맞지 않아 책꽂이에 장식품으로 세워져 있던 책을 들춰보고, 텔레비전을 틀어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떠들며 웃는 예능프로그램을 따라 웃는다. 적막함을 원했던 마음과 달리, 한적함이 찾아온 나의 밤은 항상 바쁘다. 5분만 주어져도 의미있게 쓸 것 같 았던 나만의 자유 시간은 핸드폰을 뒤져가며 의미없는 SNS를 읽다가 까먹기 일수다.
내가 낮 동안 원한 것이, 한가함인지 바쁨인지 심심함인지 기쁨인지 무료함인지 수면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허무하게 밤 시간을 보내고 누우면 오늘도 이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일찍 잘걸…’
바쁜 낮 동안은 쉼을 원하지만, 정작 쉴 수 있는 시간에는 바쁜 일을 찾는다. 인간은 항상 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것을 꿈꾼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던 처녀 때는 일을 그만두고 어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정작 원한 것을 이루고 나면 인간은, 아니 나는 다시 자유를 갈망한다.
외로움에 이성을 만나 연애를 하지만 연애의 신선함을 잃어버리고나면 싱글이어서 자유로웠던 때를 그리워하다 이별을 하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스스로 구속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계속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더 집중한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죄성 때문일까?
나는 두 돌이 막 지난 큰 아이와 한 돌이 지난 작은 아이를 아직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있다. 말이 서툴고 기저귀를 떼지 않았고 등의 핑계가 있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크는 것이 아깝기 때문이다.
이제 줄곧 내 품을 서서히 벗어나는 일만 남은 이 아이들의 인생에서 나를 전부라 여겨주는 이 시기를 마음껏 누리고 싶은 엄마의 욕심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일상은 힘들다. 감정이 지치고, 머리가 지치고, 시간이 지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며 내 시간이 생기게 되면, 내 인생에 엄청난 행복과 자유가 찾아올 거라 기대하지만 사실 나는 알고있다.
내 인생에서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가장 좋은 시간이자 때라는 걸.
은정이. 내가 자주 만남을 가지는 미혼모 동생이다. 임신을 했을 때부터 아이의 아빠는 낙태를 강요하며 계속해서 폭력을 가했고, 은정이는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홀로 낳아 기르기로 결정했다. 내가 은정이를 처음 만난 것은 은정이의 아이가 생후 9개월이 되던 어느 가을이었다.
아이의 아빠에게 양육비 소송을 진행중이었는데 돈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아이의 아빠임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재판이라고 했다. 국가에서 지원되는 보조금과 미혼모 센터에서 제공되는 물품들로 생활은 먹고는 살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궁핍하고 넉넉치 않다.
사는 것도 녹록치 않은데 재판까지 하느라 한 손에는 전화기를 붙들고 이해되지 않는 법정 단어들을 듣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 젖을 물리는 은정이를 보는 것이 영 편하지 않았다.
“은정아, 힘들지 않아?”
“아니요, 좋아요. 아기랑 살 집도 있고, 아기가 아프지 않고 잘 커주고 있고, 무엇보다 제가 미혼모라서 이렇게 언니도 만났잖아요.”
숨고 싶었다. 은정이에 비해 가진 것이 많은 나는 이런 질문에 은정이처럼 밝게 웃어내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신혼이 힘들다는 것을 누구라도 붙잡고 푸념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비교하여 은정이의 그 대답은 어디서 나온 걸까?
9개월이었던 은정이의 아이는 올해 5살이 되었다. 말을 잘해서 그 작은 입으로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 낼 때면 내 입가와 눈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성탄절에 태어난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겸 생일 선물을 주고 싶어 무엇이 갖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이모, 이모랑 신서랑 로서랑 놀고 싶어요.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한끗 차이인 것 같다. 삶에서 감사한 것을 찾고 사는 사람과, 불행할 이유를 찾고 사는 사람은.
어떤 이는 최고급 주택에 살아야 행복할 거라고 믿고, 어떤 이는 작더라도 우리 가족의 온기가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 어떤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크고 비싼 장난감이 있어야하고, 어떤 아이는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선물이 된다.
무엇이 정답이라 할 수 없지만, 고개를 젖혀 높은 곳을 보면 하늘뿐이지만 고개를 숙여 낮은 곳을 보면 지금 내가 가진 복을 셀 수 있지 않을까….
글 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