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페이스북에 들어가 친구들이 올린 사진과 소식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스크롤 하며 내려가는데 “자폐아이들을 위한 미용실”이라는 한 영상의 제목이 눈에 띈다. 영상속의 헤어드레스는 어떻게 자폐아들을 위한 미용실을 열게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오스트렐리아의 메이틀랜드에 거주하는 데스리 맥도날드(Desiree Mcdonald)는 특별한 미용실 ‘쉬어 어빌리티(Shear Abilities)’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미용실에 찾아오는 손님은 대부분 자폐아동이다. 자폐가 있는 사람들은 한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렵고 소리에 민감해 머리를 자르는데 어려움이 많다. 이런 손님들을 위해 데스리의 미용실은 예약제로 운영되어 다른 낯선 손님이 없고, 세게 내려오는 조명도 없다. 손님으로 온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 플레이도에 집중하거나 퍼즐을 맞추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데스리는 아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꼬마 손님의 머리 자르는데 집중하며 헤어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자폐아들을 위한 미용실, 아니 장애인들을 위한 미용실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는 나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미용실에서 장애인들을 한번도 마주친 기억이 없다. 분명 우리 사회에 장애인들은 많이 있는데, 그들은 어디서 머리를 자르는 걸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데스리는 머리를 자르는 일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작은 일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그녀의 딸에게 이 작은 일상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사람이 어느 미용실에 간들 다른 사람들처럼 자리에 앉아 머리를 자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딸아이의 장애를 통해, 세상의 수없이 많은 장애인들의 공평하지 않은 일상을 체감하게 된 그녀는 직접 장애인들을 위한 미용실을 열게 되었다.
데스리의 미용실를 찾은 일곱살 소녀 릴리안은, 머리를 자르는 것보다 지점토 놀이에 심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자폐증상으로 가만히 앉아 머리를 자를 수 없어 여러 놀이를 하며 머리를 자르는 것일 뿐, 이 작은 소녀도 여느 또래 친구들처럼 예쁜 머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또 다른 단골 손님인 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중년 여성은 데스리의 미용실에 오기 전까지 미용실에서 제대로 머리를 잘라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가면 늘 그녀의 휠체어에 앉아 잘라야했고 샴푸를 할 때 휠체어가 물에 젖는 일도 감수해야했던 지난 날을 생각하면 어찌 감정이 요동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는 딸의 장애에 멈춰있지 않았다. 그녀는 장애인들을 사회적으로 충분히 뒷받침하지 않는 구조에 좌절하고 있지 않았다. 동일한 아픔과 불편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손님들의 머리를 자르고 멋을 내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
자폐아이들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일을 평범한 일상으로 만들어준 헤어드레서, 데스리 맥도날드. 그녀에게 아픔은 모든 것을 정지시켜버린 시간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는 시간이다.
뇌성마비를 앓는 아이를 둔 엄마인 데스리의 아픔은 장애인들에겐 일상이 일상다울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나의 아픔은 무엇인가? 나의 시간도 아픔에서 멈춰있지 않길 바라며, 생각해본다. ‘다른 이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와닿는 그 선상에서, 나도 데스리와 같이 그 아픔을 함께 보듬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황인영 기자
참고:https://www.abc.net.au/news/2018-09-07/creating-a-world-of-equality-one-haircut-at-a-time/10173332
https://www.theherald.com.au/story/4580645/shear-abilities-a-cut-above-standard-sal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