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있다면 이곳에 와봐야 한다. 힘든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이 곳에 와봐야 한다. 이곳에는 당신을 위로해 줄, 당신을 격려해 줄 당신의 친구, 자연이 있다.
거문오름에 올라보셨나요?
거문오름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시발점으로, 분화구 내부의 울창한 수림이 검은색으로 보인다하여 거문오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거문오름이 폭발할 때 막대한 양의 용암이 분출되었고 이 용암이 경사를 따라 흘러가면서 곶자왈과 용암 동굴을 만들어냈다. 곶자왈은 제주도 방언으로,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 같은 돌을 뜻한다. 이 곶자왈에 있는 현무암들은 습기와 물기를 빨아들여 가뭄 속에서도 식물에 물을 제공해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게 해준다. 우리가 즐겨마시는 삼다수도 제주도 곶자왈이 만들어낸 선물이다.
거문오름에는 화산 폭발 후 생긴 다양한 지형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방한계식물과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여 그 가치가 높다. 또한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수직 동굴과 일본군이 2차 대전 때 만들어놓은 군진지 등 역사적인 볼거리 들도 있어서 탐방하는 사람들에게 여행 속의 또 다른 작은 여행을 하게 해준다.
거문오름을 탐방하려면…
거문오름 입장료는 단돈 2,000원이지만 자연보호 차원에서 매일 정해진 사람의 수만 탐방이 허락된다. 세계자연유산센터 홈페이지(wnhcenter.jeju.go.kr)에서 혹은 전화(1800-2002)로 가고 싶은 날짜와 시간을 미리 예약하고 전문 해설사와 함께 올라야 한다. 편한 복장과 운동화는 필수! 동식물 보호를 위해 우산, 양산, 등산 스틱, 음식물은 지참 불가.
거문오름 코스
정상 코스 : 약 1. 8km(약 1시간 소요)
분화구 코스: 약 5.5km (약 2시간 30분 소요)
전체 코스: 약 10km(약 3시간 30분 소요)
거문오름이 특별한 이유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거문오름 방문이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해설사님은 날쌘 다람쥐와 같이 탐방로를 날아다니신다. 오름 초반에 나오는 긴 나무 계단을 오르다보면 숨이 턱에 닿는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인가 후회도 되지만 그래도 이 코스는 3시간 짜리 풀코스를 탐방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힘들다고 1시간 코스만 선택한다면 킹콩을 보러가서 킹콩 나오기 전에 영화관을 나간 것과 같고,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가서 유령이 등장하기 전에 집에 가버린 것과 같다. 거문오름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만, 그리고 거문오름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동식물들을 지나 1시간 정도 걷다보면 거문오름 전망대에 도달한다. 탁트인 전망대에 올라 거문오름의 속살인 분화구를 내려다보면, 올라오면서 쌓인 피로는 물론 세상 속에서 고생한 내 몸의 세포 곳곳에서 탄산이 터져 오른다.
거문오름을 탐방하다보면 곶자왈 지형 곳곳에서 발견되는 특이한 형태의 뿌리를 가진 나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보통의 나무라면 흙에 뿌리를 내려 육안으로 뿌리를 볼 수 없지만, 곶자왈에서는 흙이 아니라 바위 위에 혹은 좁은 바위 틈에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에 뿌리가 판자처럼 옆으로 평평해진 형태를 띠게 된다. 이것을 나무의 근육이라 하여 ‘판상근’이라 부른다. 바위 위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그 뿌리로 온 바위를 감싸안아 땅 위에 단단하게 서 있는 것을 보니 생각나는 글귀가 있다.
If you can’t fly then run,
If you can’t run then walk,
If you can’t walk then crawl,
But whatever you do
You have to keep moving forward
당신이 날 수 없다면 뛰어라.
뛸 수 없다면 걸어라.
걸을 수 없다면 기어라.
어떻게 하든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
by 마틴 루터 킹
초여름의 거문오름에는 여기저기 수줍게 핀 산수국들을 만날 수 있다. 산수국에는 두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첫째, 우리가 꽂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산수국의 꽃이 아니다. 꽃은 암술과 수술이 있어야 꽂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산수국의 꽂은 암술과 수술이 없는 가짜꽃이다. 가짜 꽃 사이에 피어있는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몽우리들이 바로 진짜 산수국의 꽃이다. 화려하고 큰 가짜꽂으로 벌레나 곤충을 유인하여 수정을 하고자 하는 산수국의 지혜인 셈이다.
두 번째는 산수국은 처녀와 유부녀를 한눈에 구분할 수 있다. 수정 전에 산수국 꽂잎은 하늘를 바라보고 있지만 가루받이를 하고나면 꽃잎이 뒤집어져 수정이 끝났음을 알려준다.곤충들에게 ‘나는 결혼을 했으니 여기 오지말고 결혼 안한 다른 꽂으로 가보세요.’ 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가진 것 외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 산수국.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자연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가는 산수국을 보고 있자니 자연에게서도 배울 것이 많다라는 생각이 든다.
단돈 2,000원으로 전문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희귀한 식물은 물론 제주의 역사와 지리까지 보고 들으니 새삼 우리나라에 세계가 인정한 자연유산이 있다는 것이 뿌듯해진다.
작년 여름 처음 이곳을 방문한 이후, 곶자왈에 반해 거문오름의 4계절을 모두 만나보리라 다짐했었다. 여름, 겨울, 봄의 거문오름을 만났으니 이제 가을만 남았다. 단풍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뽑낼 가을의 거문오름을 기대하며 여기서 받은 기운을 거름삼아 일상으로 다시 힘차게 출발해보자.
사진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 한라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