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이라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건강한 입양가정 지원센터 대표 이설아씨.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건센의 대표로, 박사 과정 학생으로 B&R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 만나보았다.
어떤 계기로 입양을 하게 되셨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 다섯살 때부터 미술학원에서 중고등학생에게 미술을 가르친 게 계기가 되었어요. 학교나 가정에서 지친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을 하겠다고 학원에 와서 감춰져 있는 재능을 발견할 때 기뻤어요. 아이들 옆에 있으면서 그들의 재능에 영양분을 주는 일이 저하고 잘 맞았어요. 아이들과 미술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반짝반짝해 보이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선생님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픈 거에요. 나는 아이들 옆에서 충분히 사랑 많은 선생님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냥 선생님으로 사는 것보다 ‘엄마’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그날 처음으로 들었어요.
첫 아이로 남자아이를 입양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요즘은 모두 딸을 좋아하잖아요(웃음).
첫 아이를 입양할 때는 막연히 예쁜 딸아이를 입양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입양을 알아보다보니, 많은 남자아이들이 입양이 잘 안되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딸아이를 입양하기 위해서 기다려야 하는 그 기다림이 마치 제가 다른 가정이 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남자아이를 입양하자고 결심했어요.
두 번째 입양아는 첫 아이인 주하보다 나이가 많은 연장아동이었는데 그 과정은 어땠는지요?
사실 둘째도 신생아 같은 아기를 입양하려고 했는데 아직 부모를 찾지 못한 연장 아동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마음이 쓰였어요. 그래서 보육원을 통해 상담을 받으면서 저희 가족과 잘 맞을 것 같은 아이를 매칭받았죠. 첫 아이를 입양하고 키우는 과정이 수월하고 행복해서 둘째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루를 입양하면서는 힘들었어요. 내 안에 사랑도 없고, 선함도 없는 못난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연장 아동을 입양하는 과정에 힘든 일은 없으셨나요?
아이를 처음 만났는데 또래보다 체구도 작고 길거리에서 만나도 눈길 한 번 머물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의 아이였어요. 제가 생각했던 아이가 아니었죠. 그리고 사실 저희는 입양하겠다고 하면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저희에게 달려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생각해보면 아이는 5년 동안의 보육원 생활이 삶의 전부였고, 한번도 사람과 제대로 된 신뢰 관계를 쌓아본 적이 없었어요. 처음보는 낯선 아줌마, 아저씨가 자기를 데려가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그렇게 우리를 거부하는 미루를 만나려고 세 살된 주하를 언니네 맡겨두고 일 년 동안 토요일마다 보육원에 갔었어요. 어떤 때는 미루가 우리와 잘 놀아주었지만 어떤 때는 한 달을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저희를 거부했어요. 조금씩 지쳐가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열 번만 더 시도해보고 안되면 포기하자.’ 라구요. 하지만 남편이 반대했어요. 이미 미루를 딸로 마음에 품었다구요. 주하도 “누나, 누나!”하면서 미루를 찾았구요.
미루는 저희 가정에 이미 심기워진 아이인데 저만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미루를 입양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어요. 미루가 저흴 거부해도 이젠 저희가 미루를 포기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계절이 네 번이 바뀌며 정말 기적같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루가 우리 집에 왔어요.
셋째까지 입양하셨는데, 셋째까지 입양을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보건복지부에서 주관하는 “남아 입양 프로젝트”에 상담사로 함께 일을 하게 되었어요. 출근 첫날 아이들 프로필을 읽어 내려가는데 생모와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띄었어요. 많은 생모들이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자 자신의 사진은 프로필에 포함시키지 않는데 이 아이는 달랐어요. 엄마가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그대로 묻어 나왔어요. 그 사진을 보고 생모와 꾸준히 연락을 하며 아이를 양육하는 개방 입양을 생각하게 되었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애가 크고 있는데 데리고 올 거면 빨리 데려와.”
라고 말하더라고요.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어요.
아이들을 입양하시면서 양가 어르신들의 반대에 부딪히진 않으셨어요?
처음 주하를 입양할 때는 저희 친정 부모님께서 의외로 저희 입장을 이해해주셨어요. 하지만 시부모님께선 이해하지 못하셨죠. 미리 이야기하면 반대하실 까봐 저희가 아이를 데려오기 얼마 전에 말씀드렸거든요. 말씀드리자 불같이 화를 내셨는데 그땐 서운하기만 했어요. 왜 우리 마음을 몰라주실까 하구요.
사실 그 어른들의 입장에선 저희가 친 손주를 안아보실 기회를 빼앗는 거잖아요. 그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한 거죠. 주하를 입양하고 5개월간 시댁 문턱도 못 넘었지만 결국엔 저희 주하를 사랑으로 받아주셨고 그 이후 미루와 완이까지 많이 예뻐해주세요.
주하와 미루의 입양 과정을 그린 “가족의 탄생”이란 책을 지난 2013년에 출간하셨고, 최근 미루의 이야기를 그림동화로 출간하려고 준비 중이시라고 들었어요. 미루의 그림동화는 어떤 내용이죠?
미루를 입양하고 2년 동안 서로에게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들이었어요.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신뢰의 관계로 연결된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았어요.
한동안 평온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저녁, 미루의 표정이 좋지 않더라구요.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미루는 책을 읽다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생각났다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어요.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둘이 꼭 끌어안고 두 시간을 같이 울었어요. 그렇게 미루의 깊은 슬픔까지 온전히 주고 받은 그 날이 되어서야 저는 미루의 엄마가 되었어요. 저는 미루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가족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지는 선택할 수 있어.”
그 이후로 미루는 자신의 출생과 생모, 입양에 관한 질문이 많아지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미루의 첫 5년 동안을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많아 대답을 해줄 수 없었어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 줄 사람이 없어 속상해하고 슬퍼하던 미루는 보육원에서 자신을 돌봐주셨던 로즈마리 수녀님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궁금한 마음을 해소했어요. 미루가 주고 받은 편지에 제가 그린 그림을 얹어 동화책을 내고 싶었어요. 입양 부모의 시각이 아닌 입양 아동의 시각으로 된 책이요.
앞으로 아이들을 더 입양할 계획이나 다른 가족 계획이 있으신가요?
남편이 “앞으로 더 입양하면 정말 집 나갈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이제는 더 입양할 계획은 없어요. 저흰 아이들에게 입양으로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주하부터 미루, 완이까지 입양으로만 가족을 이뤘어요. 출산으로 다른 형태의 형제를 만들어 준다면 아이들에겐 또 다른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건강한 입양가정 지원센터(이하 건센)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건센에서는 입양부모들을 교육하고 상담하며 어른이 보는 입양이 아닌 아이들이 겪는 입양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곳이에요. 이제는 공개 입양의 단계를 넘어 입양 가족의 삶의 질을 돌아볼 때라고 생각해요. 많은 입양 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의 문제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어요. 입양아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이 있구요. 이런 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개방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돕는 곳이 건센이예요. 일년에 두 번 입양부모학교를 운영하고 입양부모를 돕는 소식지를 배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입양에 가장 큰 문제가 뭘까요?
우리나라는 입양교육이 입양절차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다른 선진국의 경우에는 훨씬 쉽고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사전, 사후 교육이 부족하다 보니 입양가족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많고 전문적인 도움을 요청할 곳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복지정책은 쉽게 가족을 분리하는데, 분리된 가정을 지원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가정에서 분리되지 않고 편부모 가정이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줄어들겠죠. 전 입양이 많아지는 사회보다 줄어드는 세상을 보고 싶어요. 우리가 보기엔 부족한 가정일지라도 아이들은 원가정에서자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꿈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전국에 흩어져있는 입양가족들에게 공기처럼 다가가서 단비처럼 내리는 건센이 되도록 건센을 전국 각지에서 접근이 용이하게 발전 시키고 싶어요. 그래서 더 많은 입양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 외에도 나이가 차서 보호소를 나온 자립청소년을 돕는 방법도 찾아보고 있어요. 저는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책, 그림, 강의, 영상 컨텐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에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웃는 모습이 따뜻한 세 아이의 엄마 이설아씨는 딸이 쓰고 엄마가 그린 입양 성장 동화 “미루의 그림 동화”를 출간하기 위해 다음 스토리 펀딩에서 펀드레이징을 하고 있습니다.
• 다음 스토리펀딩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6217
• 건센 공식 카페 http://cafe.naver.com/gunc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