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을이다. 그렇게 덥던 여름도 가고 모기떼가 극성이었어도 가을이 왔다. 바람은 차가워졌고 나무잎의 색깔은 변해 이제 모두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나무는 어쩌면 모든 생물 중에 겨울을 준비하는 가장 열심인 생명체 인듯 하다. 모두가 초록이어 아무도 알지 못했던 나무의 본연의 색깔을 하나둘씩 드러내고 있는 것 보면 말이다. 나무에게 초록은 생명이다. 초록에 있는 엽록소는 태양의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그렇게 나무에게 생명을 주는 나뭇잎을 매년 과감히 떨궈버리는 나무는 대체 어떤 생각인 걸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겨라는 층이 생긴다. 이 떨겨는 뿌리에서부터 물과 양분을 이동시키던 관을 막아버린다. 마치 이것은 나무 자체가 생명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겨울에도 나뭇잎이 있으면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이 얼 수도 있고 함박눈이 내리면 나뭇잎 때문에 쌓인 눈의 무게가 가지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 물관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물관이 추운 겨울에 얼어버려 뿌리까지도 동사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생명과도 같은 잎을 떨구고 겨울을 날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처럼 조용히, 죽은듯이 그렇게 겨울을 나, 내년 봄에 다시 잎을 틔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매년 그렇게 나무는 죽고 다시 부활한다.
올해 가을 일년에 한번씩 이 의식을 치뤄내는 나무를 보며 나는 얼마나 내 인생의 겨울을 대비하며 살았는가 생각해본다. 내 자랑이고 내 생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겨울을 나기 위해 과감히 떨구는 나무보다 나는 더 욕심에 살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무는 초록의 잎을 포기하고 물관을 닫으면서 그동안 초록에 묻혀있던 본연의 색이 올라온다. 바로 단풍이다. 내가 가진 생명을 포기하고 진정한 나의 색깔을 찾아가는 작업. 그것이 내 삶 속에서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들, 내 안정감의 근원이 결국 나를 살릴 것인가, 나를 죽일 것인가. 나무처럼 현명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는 나의 자세가 바로 나무에 있었구나.
내 자랑과 내 의를 다 떨궈내고 내 자신의 본연의 색깔을 찾았을 때 나무가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나는 결국 내 인생에서 무엇을 거둬내야 하는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