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한 염려가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톨스토이의 고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신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고, 결국 사람들은 자신을 염려하며 돌봄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오직 사랑으로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이기보다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감정으로 해석되는 시대 속에 과연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는 요즘, 지고지순한 사랑을 남긴 한 부부의 이야기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소설 ‘빙점’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결핵과 척추질병으로 무려 13년간 병상에서 지내야만 했다. 삶의 의미와 신앙을 전해준 남자친구 타다시가 그녀 곁을 떠나자, 잡지 인터뷰를 계기로 공무원인 미우라 미쓰요를 만나게 된다.
1955년 6월 18일. 아야코의 병실은 색상 장식이 없는 검소한 방이었다. 당시 아야코는 폐결핵이 발병한 지 9년. 척추 만성염증에 시달린지 3년이 지난 상태였고 몸을 뒤척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약간 부은 듯 보였지만 그녀의 투명하고 커다란 눈동자는 퍽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아야코와 나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환자와 위문자로 이루어졌다 – <나의 아내 미우라 아야코, 미우라 미쓰요 >
3번째 그녀를 방문한 미쓰요는 자신의 삶을 아야코를 위해 주어도 좋다는 고백과 함께, 3일만이라도 함께 살아도 좋으니 결혼하게 해달라 신께 기도를 드린다. 1957년 어느 여름 날, 아야코는 기적처럼 회복되었고 두 사람은 결국 결혼하게 된다.
미우라는 하나하나 어린이에게도 들려주듯이 대답해 주었다. 이런 다정함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어쨌든 37세의 나와 35세이던 그의 신혼여행은 다른 사람으로선 엿볼 수 없는 감회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소윤교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깨끗하고 조용한 영림서의 휴양소였다. 아담한 다다미방에 안내된 우리들은 먼저 무릎을 꿇고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 기도하고 난 두 사람의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나는 장지문을 열고 창문을 보았다. 창 밖에 느릅나무가 있었다. 질 것 같으면서 지지 않은 하나의 병든 잎만이 바람도 없는데 너풀너풀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그 병든 잎사귀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 자신도 또한 질 듯 싶으면서 지지 않는 병든 잎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아슬아슬 가슴 죄는 듯 한 병세였지만 나는 이렇듯 재기할 수 있었고, 결혼하여 소운교까지 올 수 있었다. – <이 질그릇에도, 미우라 아야코>
비록 완전히 몸이 회복되지는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쉬어야 했지만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아야코는 일상의 행복을 되찾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자신들이 부부로 맺어진 것이 모두 절대자의 사랑 때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고, 그래서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아야코, 변상이라니.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요. 상대편은 조그마한 세탁소야. 양복을 변상하면 그 달은 끼니를 거르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도둑만 맞고 가만히 있어요? 나는 변상을 받고 말겠어요.”
“성경에 뭐라고 쓰여 있지? 용서해 주라고 쓰여 있지 않아, 알겠지 아야코. 용서한다는 것은 상대가 잘못을 저지른 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용서해 줄 수는 없지 않아. 그러니까 용서해 주어요. 변상하라는 말은 결코 해서는 안돼” – <이 질그릇에도, 미우라 아야코>
자신의 비싼 양복을 실수로 도난 맞은 사람에게 용서를 베푸는 남편을 보며 아야코는 자신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여 졌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남편이 자신을 그런 사랑으로 이끌어 주리라 확신하게 된다. 이미 두 사람의 사랑은 부부를 넘어서 이웃에게 닿아 있었다.
“이것을 소설로 써도 좋을까요?”
“과연 그것은 재미있는 스토리인데, 아무튼 써 보아요.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뜻에 어긋나지 않은지 잘 생각해봐요.”
허락이 내려 나는 곧 미우라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 이 소설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부디 쓰도록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일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결과가 되는 것이라면 쓸 수 없게 해주시옵소서…”
나는 곧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설 쓰는 방법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다행으로 알고 편지나 일기를 쓰듯이 써 나갔다. – <이 질그릇에도, 미우라 아야코>
잡화점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아야코에게 장편소설의 아이디어가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것이 소설 ‘빙점’의 시작이었다. 남편 미우라는 집필 결정 이전에 먼저 기도한다. 그 분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하게 해주시고, 아니라면 쓸 수 없게 해달라고.. 그들은 커다란 책상에 마주 앉아 기도로 집필을 시작하고, 기도로 마쳤다. 남편의 헌신에 힘입어 그녀는 무려 1천만엔이라는 상금을 거머쥐는데, 아야코에게 남편은 조용히 다가와 말한다.
“아야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해. 인간은 유명해지든가 조금이라도 돈을 벌어오게 되면 그렇지 않았을 적보다 어리석어 지기 쉬운 법이야. 또 남들이 추켜 세우면 진짜 바보가 되기도 하지”
“아야코, 하나님은 우리가 잘 나서 써주시는 게 아니라 성경에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에 지나지 않아. 이런 ‘질그릇’이라도 하나님이 쓰시려 할 때는 반드시 써 주신다. 앞으로 자기가 ‘질그릇’임을 결코 잊지 않도록” – <이 질그릇에도, 미우라 아야코>
소설 <시오가리 고개>의 연재를 시작하고 10개월이 지났을 때, 아야코는 내게 말하는 대로 원고를 써주지 않겠냐고 한다. 66년부터 아야코와 나는 구술 필기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70여권의 작품이 대부분 구술 필기로 세상에 나왔다. 1권당 평균 3백 페이지로 본다면, 원고지 2만장은 나의 펜으로 썼다는 계산이 된다. – <나의 아내 미우라 아야코, 미우라 미쓰요 >
아야코가 혈소판 감소증, 직장암, 마지막에는 파긴슨 병으로 아무런 것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미우라는 아내가 언제나 숲 같이 조용했고,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 모습을 보는 자신에게 커다란 훈련이 되었노라 고백한다. 그녀를 사랑으로 보듬어준 남편이 없었다면 미우라 아야꼬와 같은 소설가도, 빙점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에 그녀를 사랑해준 남편 미우라. 역시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다.
요즘과 같이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절망의 시대에, 가장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미 사랑을 입은 자로서 살아갈 때, 그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주변의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존재 만으로도 감사하고, 그들을 사랑할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게 된다. 비록 ‘질그릇’ 같은 인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으로 어느 누구보다 행복했었노라고 인생의 마지막에 고백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임효선 기자
<참고영상: https://youtu.be/lh5h3zNLLQ0 – 유투브 채널 “기록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