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떴는데 기억이 안 나는 거에요. 내 몸은 있어요. 근데 내 몸이 없는 것 같은 거에요. 내 몸에 감각이 하나도 없는 거에요.”
“가서 보니까 뭐 완전 피투성이야.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더라고.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런 일이 벌어졌나”
“당신은 전신마비가 되었습니다. 평생 일어날 수 없고, 걸을 수 없고 휠체어 탄 상태로 살아야하고, 손가락도 절대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유난히 이상했던 6년 전 그 날의 기억을 34살의 청년, 박위는 잊을 수 없다. 사고가 나기 전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았던 그에게 삶은 매일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인턴으로 근무하던 직장에서 정직원 제의를 받고 친구들과 축하파티를 하러 외출을 했다. 정신을 차려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전신마비가 된 상태였다. 어릴 때부터 긍정적이고 씩씩했던 아들을 유난히 사랑했던 아버지는 사고가 난 그 날 아들에게 했던 말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고 있다.
“위야, 너는 장가가지 말고 나랑 오래오래 살자” 그러고 보냈거든요. 근데 정말 나랑 오래오래 살것 같은 몸으로 그 다음날 나타난 거죠.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피울 시기인 28세의 청년인 박위는 하루 아침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짐이 되어버린 현실에 그는 혼자서 눈물을 훔치며 매일을 보냈다. 고단한 재활훈련 동안 힘이 되어준 건 동생. 휠체어에 앉고 내리는 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팔 근육에 의지해야 하는데, 형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훈련을 도운 동생 덕분에 이제는 혼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침대로, 휠체어에서 차량으로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비록 전신마비가 됐어도 정말 반드시 좋아질 거란 확신이 있었고, 독립적으로 내가 혼자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내가 무조건 만들 것이다. 그런 의지가 확고하게 있었기 때문에 정말 미친 듯이 재활했어요. 굉장히 더뎠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전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누구라도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기보다 걸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간 그는 진정한 삶의 풍요로움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도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넘어 도리어 긍정적 에너지를 받기에 이른다. 그런 긍정의 아이콘인 박위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지켜보는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고 그 만의 방법으로 아들을 응원한다.
“물론 아이가 그런 의지와 변하지 않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죠. 그런데 그 올라갈 때에 안간힘을 쓰는 것을 못 보겠어요. 위가 하는 말 중에 제가 싫어하는 말이 있는데, 자기는 안 일어나도 된다고 해요. 근데 부모로서는 안돼요. 위가 일어나야지.”
운전을 하고 휠체어를 접어서 차에 싣는 일, 수백 수천번의 연습을 거쳐 그에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도전일 수 있었던 재활의 과정을 그는 영상에 담았고 도움이 될 그 한 사람을 위해 유투브 채널에 위라클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했다. 진심을 담은 영상에 사람들은 응답했고, 우울증을 겪던 사람, 삶을 마감하려고 했던 사람들까지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코로나로 인해 갑작스레 실직을 하게 된 승무원, 자신과 같이 낙상사고를 당해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겸손하지만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 많고, 최악을 지나왔기 때문에 좋아질 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이다.
진심을 담아 희망을 전한 그에게 이번에는 지인들의 영상편지가 도착했다. 짖궂은 친구들의 인터뷰가 지나고 그의 아버지가 화면에 등장한다.
“위는 분명히 일어날 거라고 믿기 때문에 이건 시간의 문제일 뿐, 곧 닥칠지도 몰라요. 그 시간은…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산티아고 가는 길 있죠? 거기를 같이 한 번 걷고 싶어요. 위하고, 그런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둘이 같이 걸어가면서 지팡이를 짚더라도.. 지팡이를 짚고 가더라도.. 그 길을 같이 걸어갈 수만 있다면..”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동안의 아버지가 느꼈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박위의 눈가에도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하지만 이내 눈물을 닦고 아버지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도 말고, 날 믿어달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삶의 평범한 순간은 사실 평범한 것이 아니라 기적이다. 매일 일어나 내 손으로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내 발로 출근하고 버스를 타고 하는 이 모든 일상이 사실은 기적이다. 하지만 칠흙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순간도 역시 분명한 기적이다. 매일 아침 한강에 나가 휠체어를 미는 박위의 모습에서 인생을 충실하고 의미있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때때로 지치고 힘들 때 내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그 희망을 전해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기적을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공중파의 이 다큐 한편은 우리에게 삶의 기적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 보게 한다.
박위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T8l_qvhkgTBu8-7wz1hZ0Q
사진 출처: SBS 스페셜 ‘나는 산다 박위의 휠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