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하나 남은 이가 유독 반짝인다. 그가 지켜 온 마지막 자존심처럼. 그 이에 비치는 노인의 속마음을 슬쩍 물어보니 뻣뻣한 수염처럼 굳었던 얼굴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한평생 해로한 부인을 곁에 두고 차마 눈도 못 뜰 지경이다. 노인의 웃음에서 퍼지는 열기가 먼발치 텐산의 만년설 마저 녹아내릴 기세다.
덩달아 부인의 머쓱한 표정에도 스멀스멀 웃음꽃이 피어 오른다. 마치 노인의 빠진 이들을 모은 전리품 마냥 그녀가 두른 진주 목걸이에 알알이 남모를 사연이 담긴 것만 같다. 끝내 노인은 답을 피한다. 대신 부인의 눈빛으로 평생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노인의 속사정을 짐작해볼 뿐이다.
언젠가 한 방송에서 웃음을 강의하는 수업을 본 적이 있다. 웃음이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연구하여 참가한 사람들에게 웃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었다. 수업 참가자들이 보인 관심과 의지는 상당히 열정적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있다. 아마도 그 어색함은 웃음마저 학습의 틀 안에서 배워야하는 현대인의 웃지 못할 상황에서 씁쓸한 현실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웃는데 필요한 삶의 단서들은 사실, 우리 안에 있다. 사진 속 노부부에게서, 웃음은 세상의 허물에 둘러쌓여 서로의 가치를 소홀하게 여기다 생기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축복의 언어라는 것을 읽는다. 엉뚱하게도 텐산 너머 저 먼 이국땅에서 온 나그네의 물음에 그토록 오랜 세월 닫혀있던 노인의 마음이 열렸으니 축복의 언어엔 국경도 따로 없나보다.
그 노인은 웃음으로 사랑을 고백했던걸까. 불그스레 달아오른 부인의 볼이 수줍음을 감추지 못한다..
촬영장소: 키르키즈스탄. 중앙아시아의 내륙에 위치하며 구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1991년 정치적으로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다. 인접국가들에 비해 산업화의 속도가 느린 반면,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국토의 92%가 산지로 이루어진 청정국가다. 그 중 텐산산맥이 대표적인 산맥으로 키르키즈스탄의 동서를 관통하며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 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