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동작엔 낭비가 없었다. 기계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부자(父子)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여름 불볕 아래 서 있는 그들의 작은 트럭엔 이미 적재량을 훌쩍 넘긴 재활용 상자들이 드높이 실리고 있었다. 저러다 트럭이 균형을 잃지나 않을까 그 모습이 위태로울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부자는 멈추치 않았다.
그날은, 개학을 앞둔 중학생 딸과 베이징의 마트에서 한 가득 장을 보고 나오던 늦은 오후였다. 그 부자가 트럭에 싣고 있던 빈 상자들은 우리가 나온 마트에서 처분하려고 버려진 것들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장바구니를 꾸역꾸역 채웠던 나의 헛된 씀씀이가 남긴 흔적인 셈이기도 하다. 그 흔적을 부자는 고스란히 싣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주했던 그 부자와 나와 딸은 모두 비슷한 또래의 아빠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학기를 앞둔 이 순간 짊어진 삶의 무게와 의미가 엇갈린 듯 보였다. 잠시 우린 서로의 시선을 의식했고, 그 어줍던 순간의 느낌은 여전히 나의 가슴을 조이게 만든다.
동전의 양면처럼 성장과 번영의 그늘에 서식하는 모순과 괴리는 헛헛한 우리 삶의 비루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우린 얼마나 엄중한 경고로 이를 받아들이고 있을까.
키푸시의 광물 채굴 현장에 동원된 수많은 아이들, 출생신고조차 안 된 이 아이들에겐 책과 연필 대신 한 줌의 코발트가 더 귀했다. 황량한 키푸시에서 아이들이 배고픔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들의 동작에도 역시 낭비가 없었다.
바깥 세상의 전자제품 소비가 늘수록 이들의 손은 바빠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자제품의 주요 부품에 공급되는 핵심 원료가 코발트이기 때문이다. 종일 체굴현장에서 고단한 노동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아이들은 정작 자신이 제공한 원료로 만든 완전한 물건이 무엇인지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름 모를 한 어린아이의 해어지고 얼룩진 이 손에서 이 아이가 짊어졌을 삶의 무게를 감히 짐작해 본다. 우리 세상이 겪고 있는 상처와 흉터를 그의 손에서 보는 듯 하다. 한 영화감독이 인터뷰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공범’이라고 남긴 말에 동의하기가 이처럼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촬영장소: 콩고민주공화국. 아프리카 중부 내륙에 위치하며 17년째 조셉 카빌라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특히 남부의 카탕가주 일대엔 재생배터리의 핵심원료인 세계 최대량의 코발트가 매장되어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전기차 생산과 함께 코발트 확보를 위한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광물산업의 이권을 두고 현지의 세력간 유혈분쟁과 노동착취가 끊이지 않아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 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