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가 함께 한 세계여행
몇 년 전, ‘모녀여행’이 트렌드로 떠 올랐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도 엄마와의 대만 자유여행을 계획했고, ‘용기있게(?)’ 그 일을 실행했다. 혼자 이곳 저곳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엄마와 템포를 맞추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지금도 순간순간 기억하면 재밌고 즐거운 장면들과 멋진 풍경에 웃음짓게 된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는 환갑이 넘은 엄마와 서른 살 아들의 좌충우돌 세계 여행기를 그린 책이다. 책의 저자(이하 아들)가 표현한 것을 그대로 옮겨보면, 두 사람은 나이와 몸무게를 합쳐 100살, 100KG 미만의 여행자이다. 환갑잔치 대신 여행을 선택한 모자는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외친다.
“그래 세상아, 지금 우리가 간다!”
추운 겨울바다를 넘어 도착한 중국 칭다오, 여정의 첫 도시였지만 얼음장 추위에 무엇 하나 제대로 못해보고 베이징행 기차를 탄다. 그래도 칭다오에서 맛본 만두는 엄마 인생 최고의 만두였다. 딱딱한 침대기차를 타고 도착한 베이징에서는 설상가상 숙소 사기를 맞는다. ‘60위안’이 ‘60달러’로 둔갑하는 순간, 힘들 만도 한데 꿋꿋이 참아내는 엄마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아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는 내용을 읽으며 글 너머에 있는 나도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베이징에서 시안까지 가는 길에는 *뤄양을 들러 존재 자체가 하이라이트인 곳을 만나게 된다. 엄마는 그 풍경을 보며
“아들, 진짜 엄마 인생 최고의 볼거리야.” 라고 이야기한다. 가슴이 뜨거워지다 이내 뿌듯해진다. 하지만 티내지 않는다. 대신 나지막한 목소리로 받아친다. “엄마,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인천 페리에서부터 쉴 틈 없이 달려온 모자는 휴식 같은 도시 *리장을 만난다. 곳곳마다 돌담길과 예쁜 수로들이 이어지며 여행자를 유혹한다. 이제서야 여행의 여유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엄마가 아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건넨다.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당신에게도 소망하는 내일과 기대하는 미래가 있었을 텐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자신을 내려놓은 채 온전히 누나와 나만을 위해 살았다는 사실을.
국경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본격 진입하니, 더위와 함께 각종 사건 사고가 빈번해졌다.
베트남에서 지인의 초대를 받아 힐링 만끽하는 한편, 라오스에서는 온갖 불편함과 불친절을 겪는다.
방콕에서는 어버이날을 맞아 누나가 ‘서프라이즈’하게 등장, 가족이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예산에 쪼들려 좀처럼 마시지 못했던 커피 한잔에 엄마는 행복에 겨워 말한다.
“여행 떠나기 한 달 전만 해도 이 나이에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거야. 내가 이 사실을 나이 육십 먹고 알았네.”
책을 읽으면서 아들이 얼마나 애쓰고 수고하는지 느껴져서 왠지 등을 토닥이며 격려해 주고 싶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여행자들이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도 묻고 싶었다.
“왜 엄마랑 여행해? 힘들지 않아?”
“왜 엄마랑 여행을 하냐고? 이 여행은 처음부터 엄마와 함께 하기로 한 여행이니까. 힘들지 않냐고? 힘들지. 여행이 어떻게 힘들지 않겠어. 어떻게 늘 파트너와 문제없이 다닐 수 있겠어. 그래도 즐거워. 내가 대견하고 엄마가 자랑스러워. 앞으로 한참을 더 여행할 계획인데, 어느 누구도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응원해줘.”
동남아를 넘어 중동여행의 마무리를 할 때 즈음, 두 사람은 순례자의 영원한 고향인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골고다 언덕길을 지나 엄마가 가장 가고 싶어했던 성분묘 교회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신 곳에 세워진, 예루살렘에서 가장 신성한 교회로 알려져 있다.) 에 이르자, 엄마는 자연스럽게 기도를 올린다.
예수님의 시신이 묻혔던 곳이라는 교회 중앙의 작은 예배 처소는 한 번에 대여섯 명 밖에 들어설 수 없는 작은 공간이다. 그 곳에 들어가고자 줄을 선 순례객들 중 흐느끼는 사람이 여럿이다. 예배 처소에 들어선 엄마도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나와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엄마의 뒷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예루살렘에서 1막을 마치는 순간, 아쉬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책을 읽으면서, 여행에는 힘든 순간도 있지만, 신비로운 풍경 앞에 경이로워지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여행은 인생과 닮아 있다. 우리 인생에도 힘든 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넘어서면 빛나는 경이로움이 있다는 것 처럼…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해본다. 내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이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시간을 순간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겠다고 말이다. 엄마와의 여행을 다시 한번 계획해 봐야지…
*뤄양(낙양): 중국의 7대 고도 (古都) 중 하나로, 베이징, 시안과 함께 중국 역사 상 가장 많이 나라의 수도가 된 곳이다. 주나라 때 왕권을 상징하는 구정 (금속으로 만든 귀한 솥) 을 안치했던 천하의 중심이었다. 용문석굴은 400여년 동안 건설된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로 불교 조각 예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리장(여강): 중국 윈난성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관광도시로 이름이 높아졌다.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리장고대마을은 명청시대 때부터 무역의 거점을 이루었으며, 나시족의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진 고성 건물로 유명하다. 1996년 진도 7의 큰 지진이 일어나 이 도시의 1/3이 파괴되었으나 이 고성지역만 해를 입지 않았다. 1999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글 임효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