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다. 사랑, 희생, 책임, 모성… 단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누군가의 엄마가 되는 것은 결코 쉽거나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은, 여자로 하여금 출산의 고통을 다시 감내하게도 할만큼 엄청난 것이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의 저자 케이티 데이비스는 스스로 이 엄청난 여정에 자신의 삶을 내던졌고, 무려 14명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기로 선택했다.
우간다와 사랑에 빠지다
케이티는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다. 미국 테네시에서 자랐고, 부유한 가정환경, 자동차, 멋진 남자 친구까지 갖춘 퀸카였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그녀는 부모님에게 중대한 선언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까지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할 거에요!”
엄마를 졸라 3주간 우간다의 고아원에 머물게 되고,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사람들, 무엇보다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어린아이들이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미국에 돌아온 케이티는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우간다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갓난아기들을 씻기고 기저귀를 갈아주던 순간들, 어린아이들과 함께 강을 향해 돌을 던지며 깔깔대던 순간들, 사람들의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가난뱅이’에 불과하지만, 사랑이 많은 것을 보자면 누구보다도 부자인 사람들을 섬기며 나는 순수한 기쁨을 맛보았다”
‘진짜’ 인생에 눈뜨면 이전 인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케이티에게 우간다에서의 생활은 ‘패러독스’ (역설) 였다. 첫째는 숨막히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극심한 가난이 공존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녀 스스로가 풍요로운 삶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기쁨 사이에서 괴로워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창조된 본래 목적을 이루고 있다는 확신이 그녀를 일으켜 주었다.
케이티는 구체적으로 우간다의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결심했고, 물질이 풍요한 자신의 나라와 고향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적극적으로 미국의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소개하고, 모금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효과적으로 이를 진행할 사역단체까지 설립하기에 이른다.
“한때 누렸던 안락한 삶보다는 누군가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일이 훨씬 더 기분 좋았다.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불편은 잠시 뿐이고 만족감은 훨씬 더 깊고도 오래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 많은 패러독스, 힘든 상황들, 지독한 외로움, 마를 만하면 또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이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 한 가지 확신이 단단히 뿌리를 내렸기에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하나님 뜻 안에 있다는 확신이다.“
‘엄마’로 불리다, ‘엄마’가 되다
100명이 넘는 고아와 어린아이를 돌보던 케이티는 가족들에게 전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마주한다. 집을 잃은 세 자매 (아그네스, 메리, 스코비아) 가 입양의 시작이었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은 케이티가 자신의 엄마가 되어주길 원했고,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엄마’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물장난을 치고 목욕을 하는 등 세상의 모든 엄마와 똑같은 일상을 말이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이 늘어날 때마다 케이티의 마음에는 기대감과 함께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기도했고, 신의 분명한 음성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기쁨으로 해냈다.
특히 다리 마비와 함께 다른 신체부위도 점점 마비가 되어가는 병을 앓고 있던 그레이스가 회복되는 과정을 보면서 신의 사랑을 더욱 실제적으로 깨닫는다. 그렇게 케이티는 ‘엄마’로 성장해 나간다.
“그 동안은 식구가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1인분의 식사를 더 준비하고 한 명의 숙제를 더 도와 주려니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이번엔 뭔가 달랐다. 이번에는 내 능력을 생각하며 괴로워하기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께 힘을 달라고 간청했다. 그랬더니 주님이 그레이스의 몸을 통해 날마다 기적을 보여주셨다. 그레이스는 이제 걸을 수 있다.”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케이티의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음의 울림을 넘어 강한 도전을 준다. 내 주위에 ‘엄마’가 필요한 외로운 이를 외면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내가 누군가에 B&R이 된다면,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엄마”란 말은 ‘당신을 믿어요’라는 뜻이다.
“엄마”란 말은 ‘당신은 나를 보호해 줄 거예요’라는 뜻이다.
엄마는 다급할 때 외치는 이름이고 기쁠 때 함께 웃어주는 존재다.
엄마는 슬플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존재이고 창피할 때 뒤에 숨을 수 있는 존재다.
글: 임효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