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의 한 건물에 있는 승강기에 글씨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닳고 낡은 버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승강기의 버튼 중 유독 사람들의 손 때가 묻은 흔적이 많아 보였다. 바로 옆엔 말끔한 상태의 버튼도 나란히 놓여있었는데, 그 버튼에는 ‘열림’이라고 쓰여 있었다.
새해 첫 아침이 밝는다. 전날 밤 한껏 부풀었던 기대와 설레임은 이 아침이 수줍은듯 새해로 넘어가는 마음의 문턱에서 한발 물러선다. 주변의 모든 소음과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것 같은 새해 아침 찰나의 고요함, 그것은 마치 우주의 진공 상태처럼 기대와 설레임의 무게마저 없애 적막한 느낌이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새해 아침인데 괜한 조바심에 마음의 문을 쉬이 열지 못하고 있다.
인기척에 서둘러 몸을 숨긴 사진 속 고양이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낯선 이의 발걸음에 고양이들도 그들 나름의 마음 속 ‘닫힘’ 버튼을 닳도록 눌러 댔을지 모른다. 그나마 대문의 틈으로 스며 드는 빛의 양만큼 내게서 관심을 완전히 거두진 않은 모양이다. 그들과 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꼭 낯선 새해 아침을 마주하는 내 마음의 표정 같다.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다녀온 이소연 박사는 당시 우주정거장에서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우주에서 보니 저렇게 아름다운 지구 안에서 아등바등거리며 힘들게 살아왔던 삶을 뉘우치게 된다’는 소감을 전했다. 함께 우주선에 탑승한 동료들과 그곳에서 일할 땐 그들 사이에 국경이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장의 분위기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구에 돌아가면 서로 돕고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램을 남겼다. 10년 전 캄캄한 우주에서 그가 세상에 전했던 소망의 메시지가 새해 유난히 매서운 한파에 움츠러든 서로의 마음에 훈훈한 덕담처럼 들려오길 희망한다.
촬영장소: 베이징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