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디지털 점자메세지 시계인 시각장애인용 스마트워치를 만드는 ‘닷’이라는 회사의 대표 김주윤입니다
Q. 어렸을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 아버님도 사업하시는 기업가셔서 육사를 가거나 기업가가 되려고 했었어요. 육사는 떨어졌고 그래서 사업가가 되고 싶었어요. 요즘은 스타트업이 생겨서 벤처 투자나 지원도 많지만 IMF이후 2000년대는 기업하기 쉽지 않은 여건이었기 때문에 배울꺼면 제대로 미국가서 배우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셔서 저는 미국에 가서 배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고등학교때 아버지 사업이 잘 되는 게 아니었지만 저는 유학을 가겠다고 했어요. 알바도 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가서 성공해서 돌아와야지’하는 마음으로 미국에 갔어요. 손정희씨 같이 실리콘 밸리에 있는 창업자들을 동경하던 아이였어요.
Q. 미국 유학 중에도 창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업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시애틀로 유학을 가게 됐고 창업 관련된 커뮤니티나 모임에 많이 나갔어요 전공은 사회과학이고 부전공은 창업이었어요. 워싱턴 대학에 입학 했을때 졸업은 제가 큰 의미가 없어서 수업도 창업쪽으로만 들었어요. 학교에 한국인들이 많이 없어서 영어가 빨리 늘었어요.
대학교 1학년때 ‘스타트업 위크엔드’ 라고 주말 동안 모여서 창업하는 대회에 떨리는 마음으로 나갔어요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에 있는 분들과 아이디어 교환을 해서 팀을 만들고 창업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첫 창업을 했어요.
마이크로소프트 다니는 인도분과 함께 창업을 했는데 그 분이 결혼해서 인도에 가시는 바람에 첫 창업은 그렇게 끝이 났고, 그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것은 열정 밖에 없었기 때문에 부딪히며 다시 사업에 뛰어 들었어요. 소프트웨어 교육 관련 창업이었어요. 대학생들이 취업 전에 자신의 이력을 보여주기 어렵잖아요? 그것을 도와주는 웹사이트였는데 사업은 1년 반 정도 하다가 그냥 끝이 났어요.
Q.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그 이후에도 또 창업을 하셨나요?
한국에서 2012년에 글로벌 청년 활성화 사업이라는 것이 있었어요. 정부에서 실리콘밸리에 3개월 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미국에서 어린 나이에 창업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최연소로 발탁이 됐어요
그 때 2년반 만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부모님이 제 유학자금을 대느라 집을 줄이셨더라구요. 사실 너무 죄송했고 그래서 부담도 많이 됐지만 어쨌든 실리콘밸리에 가서 많이 배웠죠. 그 당시에 몸을 갈아 넣듯이 사업을 하다보니 온몸에 발진이 날 정도였어요. 그런데 마지막엔 잘 안됐어요.
그때 당시 제가 호주에 유학하고 있는 친구를 불러서 함께 창업을 하게 됐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마지막 발표에서 VC(벤쳐캐피탈) 분들에게 안좋은 평가를 받고 다시 뭔가를 해보려 했는데 그것도 잘 안됐어요
Q. 창업이 쉽지 않네요. 그런데 안티크리스천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다시 믿게 되셨나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세번째 창업을 하려고 하는데 첫번째 창업 때 만난 분중에 시애틀에서 많은 창업을 경험하신 분들이 저희가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니까 아이템을 추천해 주셨어요. 그 아이템이 카카오 택시처럼 트럭을 연결해서 이사짐을 나르는 우버 포 트럭(Uber for Truck) 이었죠.
미국에는 트럭들이 많으니까 일을 안하고 쉬는 동안 잠깐잠깐 아르바이트로 일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하셨다고 해서 제가 코파운더(공동창설자)로 참여를 해서 세번째 창업을 했어요. 그 때 제 나이가 스물 세살이었어요. 그것을 런칭하고 돈을 벌었어요.
첫번째 창업 때 공동창업자가 창업하고 인도로 간 충격이 있어서 그 이후에 코딩을 열심히 공부해서 세번째 창업 때는 개발자로도 참여했어요. 코딩을 못하니까 영업을 나가도 제가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잘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하는 서비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재밌다기 보다 이야기하고 싫고 위축이 되더라구요. 내가 창업을 한 회사인데 왜 그럴까 생각하며 힘들었어요. 그 때 어머님이 갑상선암에 걸리셨단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안좋았어요. 그러면서 2013년 말부터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 사업을 나 혼자 이끌어 간다는 생각에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러던 중 후배 한 명이 교회에 나가보자고 했어요. 그 후배는 유학을 와서 열심히 살던 친구였는데 기도를 하면 마음이 너무 좋다는 거에요. 저는 안티 크리스천이었는데 그당시 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에 제 아집 같은 것들이 많이 없어지고 마음이 낮아졌던 때였어요. 청년부 예배에 나가게 되었고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죠. 후배가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시는데 그 때 느껴지는게 많이 있었어요. 그 날 바로 믿게 되었어요. 저도 신기했어요.
Q. 한국으로 돌아오시게 된 이유를 듣고 싶어요.
스물네살 때 아버지가 학비가 떨어졌다고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가면 군대를 가야했어요. 저는 사실 제가 미국에 왜 왔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졸업도 못했고 창업한다고 부모님이 집도 줄이셨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군대도 가야하고. 예수님을 만난 것이 변환점이 되었지만 20대에 너무 고생만 한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는 행복 했던것 같아요.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찬양인도 하고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요.
그러던 중에 시각장애 성경 관련된 것을 보게 됐는데 그 당시엔 그냥 지나갔어요. 잠깐 관심이 생겨서 커뮤니티에서 만나고 조사도 했었지만 저에게 그건 큰 이슈는 아니었어요. 한국에 들어오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셔서 제가 미국에 3개월만 더 있겠다고 했어요. 그 기간에 새벽기도를 나가서 제 삶을 맡기고 기도했어요. 그러고 나서 한국에 2014년 6월에 왔는데 부모님이 원룸 같은 데로 집을 옮기셨더라구요. 마음은 안좋았지만 제가 2012년 실리콘밸리에 가기 위해 돌아왔을 때와 다르게 저는 자신감에 차 있었어요. 주님이 함께 하시니까.
한국에 왔는데 교회가 너무 많은 것도 그전엔 몰랐는데 우리나라가 참 축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 전도도 해야하고 군대 가기 3개월 동안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Q. ‘닷’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신건가요? 원래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있으셨나요?
돌아보면 이끌림이 확실히 있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제가 하나님 만나고 예수님 영접하고 나서 제가 성경을 배우는거랑, 제가 추구하는거랑, 제가 좋아하는게 안 맞더라구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 기도를 많이 했어요. 창업이라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고 성경적인 것은 이웃을 돕고 낮은 곳을 바라보는 것인데 그것이 안맞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하며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어요. 기도하다보니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 모르겠고 왠만한 아이템은 누군가 하고 있다보니 해야할 일을 찾을 수 없었어요.
미국에서 신앙을 갖고 나서 1년 동안 제 룸메이트 두 명이 지체장애인이었어요. 한 명은 목만 가눌수 있고 한명은 상체만 쓸 수 있는 친구랑 1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 시간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시간이었어요. 한 친구는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에 갔고 지금도 같이 일을 하기도 하는데 그 때가 장애인에 대해 제가 체험하는 시기였죠.
그러다 아는 크리스천 누님과 이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전 세계 시각장애인이 2억 8천 5백만 명이고, 아예 안보이는 분들이 4천만 명이예요. 점자책이나 점자 성경책의 크기는 너무 커서 가지고 다니기가 힘들고, 점자 디지털 기기는 5백만원 정도로 너무 비싸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런 것들 때문에 시각장앤인의 문맹률이 높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 분이 말하기를 문맹률이 높으니 성경보급이 많이 안되었고 성경보급률이 낮으니 상대적으로 복음이 전달되는 것도 힘들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뭔가 기도에 대한 응답 받았다는 느낌을 들었어요. 방향성을 주시고 선교의 비전까지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닷’이라는 기업을 창업하기 위해 친구들과 용인에 원룸을 하나 얻었고 거기서 닷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는 창업을 배웠으니까 시장 크기는 어떻고 발생할 수 있는 있는 문제가 보이니 어떻게 가야 할 지가 보이더라구요. 우리가 값싼 기술을 만들어서 점자 디지털 기기들이 여전히 비싸니 이것에 상충되는 값싼 기기들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웨어러블 기기들이 핫 했기 때문에 저희도 이쪽으로 편승을 했던 거고 그러다 보니 점자 전자 시계가 첫 아이템이 된거죠.
Q. 사업자금을 창업경진대회를 통해 마련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이 시계는 29만원 정도 합니다. 정부 지원 받으면 시각 장애인 분들은 무료로 받을 수 있어요. 이 쪽 창업에 대한 원론적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붙여주셨어요. 2014년 6월에 들어와서 창업을 하고 군대를 가야했었는데 그 때 법률이 바뀌어서 창업경진대회에서 3위 안에 입상을 하면 2년 연기가 되요. 제가 첫 수혜자가 됐어요.
이 아이템으로 경진대회 나가서 많이 떨어졌었는데 신기하게 첫 대상을 탄 데가 저희 용인 숙소에서 500m 떨어진 용인디지털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상을 타게 되서 거기에 오피스도 처음 얻게 된 거죠. 전국 대회를 다 지원했었는데 된 데가 거기였어요. 그래서 거기서 시작을 했고 그리고 전국대회에 나갔고 그 해 말에 KBS에서 한 ‘황금의 펜타곤’ 이라는 대회에서 저희가 우승을 했죠. 그래서 1억상금을 받고 SK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에도 가게 되고 그러면서 투자도 받고 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사실 점자 시계는 특수 계층을 위한 사업이라 수익성 문제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처음 부터 한국 뿐 아니라 글로벌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을 알리기 위해 발표를 많이 다녔었었는데 일본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만들어준 기사가 TIME지 나 BBC에 퍼진 거예요. 너무 신기했어요. 국내는 완전 단절된 세계였거든요. 그게 발단이 되서 BBC하고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런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루어져서 저희 사업이 글로벌하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어요.
Q. 전자기기를 만드는 일이라면 탁월한 전문가가 함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 일을 함께하는 직원분들이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5명이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같이 하던 미국 친구가 들어왔고 고등학교 동창중에 디자인 공부하던 친구랑 미국에서 같이 교회 다니던 친구 등이 모여 5명이 시작했다가 지금은 그 때 친구 중 3명의 친구가 같이 하고 있고 그 외 직원은 30명 정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만든 기기는 기존 기기와 다르게 그림도 볼 수 있고 엑셀도 할 수 있고 그래프도 볼 수 있어서 수학도 배울 수 있는 디바이스예요.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미국에서 큰 전시회에 가서 미국 정부랑도 이어지고 큰 기업들과도 이어졌어요. 컨텐츠는 많은데 점자로 된 책은 많이 없으니까 미국 정부도 미국 초등학생 한 명 당 1천만원 이상의 교재비가 들어간다고 하더라구요.
이것을 디지털화하자라던 때에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져서 저희가 계약을 하고 시계보다 큰 디바이스를 사용하기로 했어요. 교육이나 직업적으로 쓰시는 분들이 사용할 수 있게 5년정도 계약을 해서 연 100억 에서 200억 정도 매출을 예상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시작하면 전세계로 퍼지게 되기 때문에 전 세계로 이 기기를 퍼뜨리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어요. 이 기기는 현재 안드레아 보첼리나 스티비 원더 같은 분들도 쓰시고 계시고 아이들이 많이 써요.
Q. 스마트 워치보다는 점자 패드 같은 것이 있다면 훨씬 더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최근에는 패드를 이용해서 계속 더 좋은 방향을 열어주셨다고 생각하는게 뭐냐면 좀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게 되었어요. 말하자면 정부의 장애인 도움 사업, 공익사업 같은 곳에서 저희 기기나 기술을 사용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 부산에서 스마트 무장애 도시를 만들고 있는데 패드를 통해 키오스크에서 길안내를 해줄 수 있어요. 수화도 나오고 소리와 같이 길을 보여주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서면역에서 테스트를 했었어요. 그 전에는 몰랐지만 충격적이었던게 시각장애인들이 화장실을 못 찾아가요 점자블럭 따라 간다고 갈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지하철 출구가 16개 있는데 그걸 구분해서 소리를 들으면서 점자 패드에서 보여주는 길을 따라 가는 거죠. 그 기술이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서 큰 프로젝트로 이어졌어요 부산이 도시 전체를 무장애 도시로 만들 계획으로 지금 부산역에 설치하고 있고 이게 잘 되면 부산 전 지하철 역에 설치 할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이것도 기도 응답인 것 같아요. 시각장애 안내견들이 새로운 곳을 가는 것에 어려움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시각장애인만 돕는 용도로 만들려고 했는데 지금은 여러 피드백을 받아서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고령자, 외국인도 쓸수 있게 방향성을 잡아서 만들고 있어요. 중국어, 스페인어, 일어 등이 들어간 13개 국어가 탑재되어 있어요.
Q.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크리스천 CEO로서 고민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015년 4월에 법인을 세우고 지금 6년 정도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신앙생활 시작할 때랑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어요. 주변에 빠르게 고속성장 하고 있는 기업들과 비교하게 되고 제가 창업계를 오랫동안 봐오다 보니까 성장하는 기업들을 많이 보게되거든요. 우리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보면 시장이 있겠지만 급성장하는 시장은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업이 커나가는 것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죠. 그 부분이 고민이에요
기업이라는 것은 이윤창출을 통해 능력을 보여주는 게 필요한데 하나님의 때에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구요. 이 사업을 그동안 다들 아무도 안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웃음) 쉽지 않더라구요. 규모를 키우기도 힘들고. 어쨌든 저는 방향을 보고 가고 있습니다.
Q.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신앙적 목표를 세워서 실제로 시각 장애인 분들을 만났을 때 기대와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더라구요.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시작했다가 신랄한 비판을 받고 떠난 경우가 있어요. 저희도 당연히 그런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에 그걸 깨버리는 게 계기가 되었어요. 저희가 뭔가 만들어서 좋은 일을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그게 결국에는 나의 의를 드러내는 부분도 있었고 사람과 직접 연관된 사업이다보니까 사람은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존재죠.
성경에 ‘네 이웃,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라는 말씀이 저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씀 중 하나였어요. 언론에서 인터뷰가 오면 많이 나가곤 했었는데 자극적으로 성과 위주로만 쓰시잖아요. 이제 그런건 안하고 크리스천 매체나 가끔씩 하는 정도니까 오히려 실제로 시장에서 부산의 경우처럼 사업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생겼어요. 제 고집을 좀 버리고 힘을 빼고 보니까 기회가 생기더라구요. 당연히 지금도 매출을 내는 부분에 대해서도 기도를 하고 있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제 힘을 빼게 하시고 현상 그대로 보게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서 현장의 문을 두드리다보면 큰 매출을 내는 것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인도하심을 느끼는 것은 올해 중동쪽 매출이 날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다 연기가 되고 끊겼거든요. 그러면서 그 전에는 한번도 국내에서 뭘 해야지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국내에 집중하게 되고 부산 프로젝트 같이 다양한 것들을 하게 되면서 내실을 강화하게 되었어요. 코로나 끝나고 나서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현금 잔고를 보면서 월급날이 되면 걱정하고 있지만 그러면서 최근에는 이런 말씀을 주시더라구요. 십일조생활 잘 하라고. (웃음)
Q. 앞으로 대표님, ‘’닷’의 비전 그리고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패드로 교육시장을 바꾸는 거랑 무장애 키오스크를 만들어서 지금 강남구청에 들어가는 것도 확정이 되었는데 전국 공공기관에 들어가는 것들, 그리고 한국 뿐 아니라 미국과 전세계로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여기서 어떤 시작점이 생기면 또 다른 무언가로 이어지겠죠.
키오스크도 아직은 저희 시계처럼 느껴지거든요. 더 좋은 것으로 이끌어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는 많이 있는데 장애나 포용적 부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많이 없더라구요 저희가 그 부분에서 도시 인프라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래요.
Q. 어려웠던 일을 굉장히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 거 같아요. 힘든 일들이 많이 있으셨을 거 같은데요.
담담하기 보다는 계속 매달리고 있죠 나중에 잘 되고 나면 다 은혜였다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매출이 엄청 나다던지 한 상황이 아닌 중간 단계이기 때문에 계속 기도하는 중이에요. 다른 잘 되는 기업들 보면 보통은 부러워하는데 복을 부어주시는 건 좋지만 제가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아요. 제 자신이 그렇게 드러나고 싶지 않아요. 저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인이 되는 게 목표에요.
글. 김정아,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