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 넉넉함이,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줄 지혜가, 누군가의 실수를 넘어가줄 이해심이 더 생길 줄 알았는데 실제 나이가 드니 오히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고집이 되고, 내가 되고, 그래서 더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돌보아줄 힘이 없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과 시간들이 참으로 안타까울 때가 있다. 어찌보면 가장 이해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가족을 때론 친구나 회사동료보다 더 모를 때가 있다. 아니 더 무심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참 성격이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두 분이 다투시는 일이 많았다. 그게 어렸을 땐 참 싫었는데 크고 나니 나 말고 다른 집들도 잉꼬부부 처럼 사시는 부모님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냥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왜냐하면 꼭 부모님 세대가 아니더라도 지금 주변의 친구나 후배들의 결혼 생활도 내 눈엔 그리 행복해 보이거나 정말 잘 맞는 부부를 보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 엄마 아빠의 다툼이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다투는 두 분을 이해하기 보다 짜증을 내거나 무관심하려고 했는데, 나도 나이가 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제야 마음의 넉넉함이 조금 생기기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인생이, 삶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누리고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 그리고 지나버린 속절없는 세월.
부모님이 보냈던 모질고 힘들었던 세상이 (두분 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세대), 그리고 자식 셋을 키우기 위해 넉넉치 않은 살림에 열심히 사셨던 것이, 내가 이제 나이가 들고 돈을 벌고 일을 하다보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엄마가 젊은 시절 보냈을 힘들었던 시간들, 아빠가 우리들을 키우기 위해 힘들었던 시간들을 마치 부모님이 아니라 친구를 보듯 보게 되었다고 할까.
최근에 열심히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아는 것을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이다. 내용이 길지만 22살의 미혼모가 되어 어쩔 줄 몰랐던 여대생, 그리고 그 여대생을 짝사랑한 트럭 운전수가 결혼해 자식을 낳고 산다. 평생 사랑하고 아껴줄 줄 알았던 결혼생활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고, 황혼의 나이에 졸혼을 선언한 엄마와 아빠를 대하는 자식 셋의 이야기이다. 평생을 함께 했지만 그 누구도 몰랐던 속마음이 드러나며 가족을 이해하게 되는 내용이다.
평생 아빠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친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첫째 딸 은주가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장면이 나왔다. 카페에 앉아 그 이야기를 해주는 60이 넘은 엄마에게서 은주는 22살에 미혼모가 되어 눈물 흘리는 엄마를 본다. 그리고 그 엄마의, 아니 22살 여대생의 손을 잡아준다. 지금은 어렸을 적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였을까. 아니면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서 였을까.
이 장면이 참 마음 속에 남았다. 누구든 우리가 그렇게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가족은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나 응원군이 되어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갈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다툼에도 이번에는 내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 난 어른이 되었고, 이제 그런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한 마음과 정신력이 있다. 나는 더이상 두 분의 어린아이가 아니기에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위로해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보살펴 드렸다. 그렇게 진짜 어른처럼 그분들의 삶을 보듬어 드리고 나니, 비로소 이해와 위로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우리 엄마의 가장 힘들었던 젊은 시절로 들어가 내가 딸이 아니고 친구처럼 엄마의 손을 잡아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맛있는 국밥 한 그릇 사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 보니 나도 이제 제대로 나이가 들어가나부다 싶다.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가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잘 알고 있는) 가족입니다’가 되기 위해선 가족이라도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되어야 진정한 쉼과 축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기 때문이다.
글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