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선생님, 인터뷰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바이올리니스트 손인경이고, 온누리교회 사랑챔버 지휘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사랑챔버는 발달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이고, 99년에 설립해서 올해로 20년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온누리 장애우 음악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고, 이후에 온누리 사랑챔버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어요.
Q. 어렸을 때 해외에서 사셨다고 들었는데 한국말을 잘하시네요.
태어난 것은 한국이지만 3살 때 가족이 모두 홍콩으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영국계 학교를 다니다 보니 영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죠. 대신 집에서는 가족들이 한국어를 기본적으로 사용했어요. 홍콩이다 보니 광동어도 잘 할 수 있어요.
바이올린을 사랑하던 소녀, 예일 박사학위 취득
Q. 홍콩에서 처음 음악을 시작하신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친정 엄마께서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LP판 듣는 것에 익숙했어요. 사실 저희 언니도 피아노를 공부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TV에서 기타 치는 사람을 보고 반해서 엄마에게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어요. 엄마는 기타 대신 바이올린을 사 주셨고, 홍콩 필하모닉에서 연주하시던 중국인 할아버지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만 4살 반 (우리나라 나이 5살) 때의 일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바이올린으로 칭찬받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콩쿨에서 입상하고, 신문에 나오기도 했었죠. 장래희망에 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린 선생이라고 적었어요. 엄마가 제가 어릴 때 레슨비 많이 안 받는 선생님이 될 거라고 했었다고 기억하시더라고요. (웃음)
Q.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음대 대학원에서 음악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셨어요.
네. 맞아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학교 친구들이 영국, 미국, 홍콩, 캐나다 친구들이었고, 이민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해외에서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예일대학원은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구두시험, 논문도 준비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 연주활동을 한 경력이나 강의를 한 경험을 인정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경력을 쌓기 위해 1990년 여름에 한국에 잠시 들어오게 되었어요.
Q. 잠시 들어와서 경력을 쌓으려고 하셨는데 계속 한국에 머무르게 되신 건가요?
원래는 그럴 계획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어요. 한국에 와서 온누리교회에 출석하면서 3부예배 챔버도 섬기고, 여러 곳에 출강하고 연주 활동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변화하게 되었어요.
1992년부터 예일대 음대 동문으로 구성된 소마 트리오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3명으로 구성된 트리오인데, 저와 팀원들 이름이 ‘이’민정, ‘손’인경, ‘배’일환이어서 처음에는 이름 성에 신체 일부분이 공통적으로 들어간다 해서 ‘Body 트리오’ 라는 별명으로 부르다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몸의 의미를 담은 ‘소마(σῶμα) 트리오’로 부르게 되었죠.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들어와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남편을 소개받고 만나게 되었는데 나이도 저보다 어렸고 크리스천이 아니었어요. 법무관으로 훈련 받던 중이라 어느 날은 군복을 입고 저를 만나러 왔어요. 그 때 불현듯 배우자 기도를 한창 하던 때 꿈이 생각이 났어요.
꿈 속에서 저는 전쟁터의 간호사였는데 어떤 병사가 저에게 손을 잡아 달라고 하면서 웃고 있었어요. 남편이 저를 만나러 나와서 웃는데 꿈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떠올랐어요. 참 신기하죠. 가끔 부부 사이에 냉기가 흐르면 “왜 내가 그 꿈을 믿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저에게는 가장 든든한 동역자에요.
※ 소마트리오: 미국 예일 음대 동문으로 구성된 피아노 트리오. 손인경 (바이올린), 이민정 (피아노), 배일환 (첼로) 3인으로 92년에 결성하여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성가곡, 트리오 연주곡, 음반 등 폭 넓은 연주활동으로 사랑받고 있다.
장애아동에게 음악을 가르치다
Q. 사랑챔버 활동은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처음부터 장애인들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아니에요. 시작은 99년 4월에 우연히 ‘장영주 독주회’를 관람하게 되면서부터 였어요. 그 당시에 연주회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나서 어떤 그룹이 장영주 씨와 협연을 하는 거였어요. 알고 보니 부산 소년의 집 출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를 꾸몄던 거에요. 그 공연을 보고 너무 큰 충격과 도전을 받았어요.
소마트리오 활동을 하면서 자선 연주는 정말 많이 했었지만 직접 삶으로 나누고 지도하는 부분은 없었거든요. 연주가 끝나고 옆에 있었던 저희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나는 이제까지 뭐하고 살았나 몰라”. 연주회가 끝나고 다시 제 일상을 살고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러다가 장애인 중에 재능은 있지만 악기와 제대로 된 지도가 없어서 연주를 할 수 없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들을 위해 자투리 시간을 내서 바이올린 지도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교회에 광고 부탁을 드리려고 했거든요. 근데 딱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요. 네가 장애인을 위해 뭔가 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어요.
Q. 처음에는 지체장애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바이올린 지도를 하시려고 했다고 들었어요.
네, 전 그렇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하 목사님께서 예배 시간에 이렇게 광고를 하셨어요. ‘손인경 자매가 장애인을 위해 바이올린을 지도하겠다고 합니다. 정신지체도 좋습니다. 자폐도 좋습니다. 모두 신청하세요!!’라고요. (웃음)
그렇게 광고가 나가고 나니 번복할 수가 없잖아요. 그 광고가 나간 후에 자폐를 가진 친구들이 많이 신청했어요. 사실 제가 특수교육에 대해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정말 우왕좌왕 했었죠.
Q. 그렇게 시작한 사랑 챔버가 벌써 20주년이 되었어요. 그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발달장애인들은 타인과의 교류가 어려워요. 여러 번 가르친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을 때는 솔직히 절망감도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여러 번 말로 반복하기 보다 그 느낌을 알려주려고 아이들에게 최대한 쉬운 말로 설명하고 손으로 보여주고 만져서 느끼게끔 해주었어요.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연주가 가능한 단계까지 이르렀고, 미국, 체코, 독일 등 해외 연주도 여러 번 다녀왔어요. 청와대에서도 연주 했었고요. 처음 시작했을 땐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리고 올해 12월 18일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가질 예정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습하는 것도 변화가 생겼어요. 예전에는 반드시 만나서 레슨을 했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카카오톡을 활용해서 레슨하고, 점검하는 게 일상화가 되었어요. 어머님들께서 연주하는 것을 찍어서 보내주시면 제가 카톡으로 지도하고, 또 모여서 연습하고 있어요.
아이들 수준이 다양해지다 보니 모든 단원들이 소외되지 않게 곡을 선정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까다로워진 것은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함께 봉사하시는 선생님들이 40분 정도 계셔서 요새는 어려운 곡들도 계속 도전하고 있어요.
처음 왔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었고, 음악을 전공까지 하게 된 친구들도 20명이 넘어요. 창단 멤버 중에는 독립해서 따로 자선 연주도 하는 단원도 있어요.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보람을 느끼지만 아이가 변화되는 모습을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볼 때 참 흐뭇해요.
한 번은 저희가 아이들에게 가사를 녹음해 달라고 숙제를 낸 적이 있어요. 가사를 알아야 리듬도 탈 수 있거든요. 단원들 중 한 명은 이 친구는 어렸을 때부터 한번도 부모님 앞에서 노래를 한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숙제 덕분에 어머님께서 아이가 태어나서 노래하는 목소리를 처음 들으셨다고 하셨을 때 마음이 정말 뭉클했어요.
유방암 진단을 받다
Q. 2009년 “하나님의 꿈을 연주하는 사랑챔버” 라는 책을 출간하셨는데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궁금한 분들도 계실 거 같아요. 혹시 그 후의 개인적인 삶은 어떠셨나요?
책을 출간한 이후에 많이 바빴어요. 챔버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도 많이 갔었고요. 그러다가 유럽공연 투어 도중에 딸 아이가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치료를 하느라 간호를 해야 했어요.
그 이후에는 저희 엄마가 ‘다계통 위축증’이란 희귀병이 생기셨어요. 이 병이 증상은 ‘루게릭’이나 ‘파킨슨’과 비슷해요. 간호가 필요한데 다른 가족들이 다 해외에 있어서 제가 저희 엄마를 전적으로 돌봐 드려야 했어요. 나중에는 간병인이 24시간 붙어있어야 하는 정도로 악화되셔서 저도 병원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났어요. 그러면서 사랑챔버 일도 계속 섬겼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유방암 진단이 나왔어요. 그래서 올해 2월에 수술을 했어요. 바쁘니까 먹는 것도 인스턴트, 고기 위주로 먹고, 운동도 못하고, 일은 많은데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너무 무리하게 했던 거죠. 한마디로 제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던 거예요.
Q. 그렇게 열심히 달려오셨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으셔서 마음이 많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진단을 받고 병원 진료 이후 수술을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암 진단받으신 분들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수술 방법이나 치료 계획 이런 것들을 정하는 것이 심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이 되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지인 분 추천으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어요. 수술을 받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께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주시려고 이런 일을 겪게 하셨나.. 그래서 서원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여쭤봤어요.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무엇을 해드리면 좋을까요?” 라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선 저에게 이러시더라구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너 하나면 된다.”
그 때 알았어요. 제가 정말 열심히 살려고 누구보다도 바쁘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저라는 사람 자체, 주님께 드리는 온전한 관심, 집중이라는 것을요.
Q. 수술과 치료과정을 통해 사랑챔버나 사역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셨을 것 같아요.
사랑챔버가 교회에서 시작된 단체이지만 어떤 부서에 소속되어서 활동하진 않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저와 아이들과 어머님들이 맨땅에 헤딩해서 만든 거거든요. 지금은 사랑챔버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저희들이 공동체를 이뤄가고 세워가는 과정에는 정말 많은 기도가 필요해요.
새로운 단원을 받고 훈련시키는 과정, 또 키워낸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과정 모두 쉽지 않아요. 연주할 때의 감동과 충만함에 비례하는 많은 눈물과 수고가 있는 거에요. 그 일을 완벽하고 철저하게 하려 했었는데 그러다 제가 암에 걸리고 보니 저 자신을 다시 처음부터 돌아보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블레싱 앤 레스팅 Blessing & Resting은 주려고 했지만, 내 자신은 휴식 Resting 가운데 있지를 못했구나’ 하는 것을요. 약자가 되어보니 상대방에 대해 공감하는 내용과 깊이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구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Q. 지난 10년은 정말 선생님에게는 인생의 제 2막 같은 시간이네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으신가요?
딸 아이와 엄마, 저 자신까지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달라진 것을 많이 느껴요. 새로운 찬양들이 제 속에서 나오는 느낌이랄까요. 아프고 나니 이젠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다시 시작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미래를 걱정하고 염려하면 끝이 없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 자유로울 수 있다면 최고의 복이 아닐까 싶어요. 좀 더 저 자신을 하나님 관점으로 보고 주시는 큰 사랑을 온전히 받아서 그것을 다시 흘려 보낼 수 있는 성숙한 삶을 살고 싶어요. ‘오늘이 내 인생에 마지막일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면 작은 것도 모두 감사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진 경우를 참 많이 보게 되요. 어렵게 연습해서 학교에 왔는데 또 잘하는 친구와 비교하게 되지요. 특별히 신앙이 없는 친구들이 이 부분에서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요. 제가 본 가장 행복한 음대생은 악기를 당당하게, 폼나게 메고 다니는 것,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자부심을 느끼는 친구들인 것 같아요. 음악 자체를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 또 그것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음악은 그 사람에게 최고의 축복이 될 거라 믿어요
글 임효선,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