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발견
이야기의 시작은 추상미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다. 유산을 겪은 후 어렵게 얻은 아이가 잘못될까 두려웠던 그녀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긴 시간 우울증을 겪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북한 꽃제비의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면서 엄마가 되기 전에 몰랐던 슬픔의 감정이 그녀를 휘감았고, 북한 아이들에 대한 연민은 폴란드로 간 전쟁 고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 추상미 감독은? 1994년 연극 ‘로리타’로 데뷔했으며 올해 46세이다. 대표작으로는 ‘사랑과 야망’, ‘노란 손수건’ 등이 있다. 2007년에 뮤지컬 배우 이석준과 결혼, 2009년에 임신하였으나 아이가 유산되면서 연출 공부를 시작했다. 산후우울증의 상처를 통해 북한 탈북자들, 전쟁 고아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이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한다. 현재는 배우로의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영화감독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상처의 연대
1951년, 한국전쟁 후에 고아가 된 1,500명이 아이들이 폴란드로 비밀리에 보내졌다. 전쟁의 공포와 질병을 겪은 아이들은 폴란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일상의 기쁨을 찾아간다. 나치 치하에서 전쟁의 고통을 겪은 폴란드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끌어 안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북한은 천리마운동에 아이들까지 노동 강화에 이용하면서, 폴란드에 있는 아이들의 귀환을 명령한다. 이는 아이들에게 부모를 두 번 잃는 경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폴란드 선생님과 북한 아이들이 나누었던 편지 글에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절절하게 흘러나온다. 한 아이는 걸어서 폴란드로 오려고 북한을 탈출하던 도중 죽음에 이르고 결국아이들의 생존을 위해 선생님들은 편지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연락을 중단해야 했던 아픔에 선생님들은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그리워한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편지를 누군가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고 싶다는 부탁을 편지에 적은 아이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답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상처 입은 치유자
추상미 감독과 폴란드 현장조사를 함께 한 탈북소녀 이송은 탈북 과정에서 생긴 상처로 마음을 굳게 닫는다. 겉으로는 쾌활하고 밝게 보이지만 깊숙한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남한 사회에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편견, 배고픔으로 시달렸던 과거,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그녀 안에 깊게 뿌리내린 탓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는 폴란드 선생님의 사랑과 추상미 감독의 진심이 결국 얼어붙었던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치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북한에 있는 동생을 생각하며 목놓아 우는 송이를 추상미 감독은 가만히 안아준다.
영화는 개인의 상처가 아픔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조명한다. 그 아픔이 사랑으로 보듬어 진다면 한 사람의 아픔을 넘어 역사가 만든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누군가는 상처를 덮기 급급하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약함을 덮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 군림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생의 진정한 축복은 내 상처를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흘려 보내는 데 있다고 영화는 이야기한다. 내 고난과 상처가 블레싱 Blessing으로 바뀌고 내 주변의 이들에게 레스팅Resting을 줄 수 있는 삶이 되길 소망해본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 내주신 폴란드의 선생님들에게 추상미 감독의 입을 빌어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을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글 임효선 기자
폴란드로 간 아이들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