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중앙기독학교 교목이자 원천교회의 김요셉 목사님. 김장환 목사님과 미국인 트루디 김 사모님 사이에서 혼혈아로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혼란과 좌절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게 된 김요셉 목사님을 만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아이”
Q 영어가 더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한국어를 굉장히 편하게 하시네요.
그럼요. 한국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서 두 언어를 다 할 수 있지만 전 한국어가 더 편해요.
Q 지금은 혼혈에 대해서 개방적이지만 목사님께서 자라실 때는 사회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아요.
다들 저를 신기하게 봤어요. 지금도 혼혈아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보지만, 제가 자랄때는 튀기, 양키라고 대놓고 놀리고 코가 크다고 많이 놀렸어요. 저는 늘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친구들은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든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죠.
Q 예를 들면 어떻게 증명해보이려고 하셨는지요?
친구들이 뺑코라고 하도 놀려서 제 코를 납작하게 하려고 방바닥에 엎드려서 코를 박고 자기도 했어요. 아니면 친구들 앞에서 김치를 잘 먹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국민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점심 도시락을 싸가는 날이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점심시간에 양은 도시락 뚜껑을 딱 열었는데 그 안에 햄앤에그(Ham and Egg) 샌드위치가 있는 거에요. (웃음)
지금은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그런 음식을 먹지 않았어요. 너무 창피한 마음에 도시락 뚜껑을 닫아버렸어요. ‘내가 아무리 한국인이란 걸 증명해 보이려고 해도 나는 100% 한국인도 아니고 100% 미국인도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어요.
Q 그런 도시락을 싸주신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으셨나요?
집에 와서 한참을 울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낙담해서 울고 있는 저를 안아주시면서,
“예수님은 네가 변하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셔. 네 마음속에 있는 아픔과 미움도 모두 용서하신단다.”
라고 말씀해주셨어요.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펑펑 나더라구요. 그 일을 계기로 전 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로 결심했어요. 제 외모나 배경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거라면 하나님이 저를 이렇게 만드신 목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 미국 유학을 떠나다”
Q 그런데 아버지께선 어떻게 미국인과 결혼을 하셨나요?
저희 아버지는 미군 부대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하우스 보이였어요. 칼 파워스(Carl Powers)라는 미군 상사분이 눈치 빠르게 뭐든 악착같이 일하는 저희 아버지를 눈여겨보시고 도와주기로 결심하셨지요. 하지만 사실 이 분도 가난해서 돈을 벌려고 한국에 파병 오신건데 도리어 저희 아버지를 미국에 데리고 가서 공부시키셨어요. 그렇게 아버지는 미국에서 어머니를 만나신거예요. 칼 파워스 선생님께서는 평생을 시골에서 선생님으로 일하시면서 저희 아버지를 교육시키고 삶을 변화시키신 저희 집안의 은인이세요.
아버지께서는 항상 자신을 교육시켜 준 그 분의 은혜를 잊지 않으셨어요. 누구나 저희 아버지, 김장환 목사님같이 극동방송 사장이라던가 침례교세계연명의 총재같은 사람은 될 수 없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칼 파워스 선생님처럼 남을 도울 수는 있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항상 남을 돕는 교육에 힘쓰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영어도 못하는 아이에서 한국어를 잘하는 아이로”
Q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으셨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안식년을 맞아 1년 동안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어요. 어머니 덕분에 듣고 영어로 말은 좀 할 수 있어도 읽고 쓰기는 거의 못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첫 수업시간이 단어 철자(Spelling) 시간이었어요. 제가 영어를 못하는 게 들통이 나서 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까봐 두려웠어요. 한 명씩 차례가 돌아가고 드디어 제 순서가 되었는데 가슴이 터질것 같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저한테 뭘 시킨 줄 아세요?
“요셉아, 너는 한국에서 와서 한국말을 잘한다며? 그럼 선생님 이름을 한국말로 써줄래?” 하시는 거예요. 그건 너무 쉬운 일이었어요. 한국어로 “샤프” 라고 쓰니, 선생님도 다른 친구들도 신기해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제가 선교사님이신 부모님 때문에 한국에 살아서 한국어를 아주 잘한다고 하셨어요. 샤프 선생님은 절 ‘영어도 못하는 아이’가 아닌 ‘한국어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주셨어요. 혼혈아로 늘 열등감을 갖고 산 저에게 샌드위치 사건이 제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였다면 샤프 선생님은 제게
“있는 모습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
라는 메세지를 심어주셨어요.
Q B&R의 Blessing이 가진 “당신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습니다”와 동일한 메시지네요.
네. B&R 매거진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저와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거진이 있다는 것에 굉장히 기뻤어요. 그래서 인터뷰도 수락한 거구요. (웃음)
“삶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다”
Q 이제 학교 이야기가 좀 궁금한데요,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학교를 설립하게 되셨나요?
저희 부모님께서 1970년도 후반에 수원중앙유치원을 설립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유치원이라는게 거의 없을 때 였거든요. 유치원 아이들이 졸업을 하니 연계해서 진학할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저도 대학에서 기독교 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제가 가진 교육 철학을 토대로 기독교 학교를 설립하고 싶었어요. 기존의 획일화 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봐 줄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함께 하는 수업”
Q 학교를 둘러보니 장애,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던데 수업이 잘 진행되는지, 그리고 이렇게 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사실 효율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굉장히 비 효율적이죠. 하지만 저희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같이 있는 가치” 혹은 “가치 있는 같이”랄까요?
한번은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가 수업 시간에 교실을 뛰쳐나가서 온 선생님들이 그 아이를 찾으려고 학교 여기저기를 찾아 다닌 적이 있어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그 친구 창피하지 말라고 화장실에 같이 가서 소변을 보기도 했어요.
이런 것은 절대 지식으로 배울 수 없어요.
마치 성경에서 99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는 목자와 같은 마음인 거죠. 세상의 원리와는 다르지만 아이들은 이런 교육을 통해 이해와 배려, 협동, 사랑을 직접 체험하며 성숙해는거죠. 학교 정원의 6%가 장애학생이에요. 한 반에 두 명씩 장애 학생이 있고, 선생님도 담임 선생님과 통합교육 지원실 선생님(특수 교사) 두 분이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세요.
중앙에서 아이들을 사회에 내보낸지 벌써 20년이 넘었어요. 중앙기독학교의 교육은 약한 사람을 밟고 일어서는 강자가 살아남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 약자이지만 서로 함께 할 때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주안점이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그런 사회를 만들 거라고 믿고 있어요.
Q 그런 교육을 하려면 선생님의 역할이 정말 중요할 거 같은데요, 목사님께서는 어떤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생을 아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에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알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으니…” 라는 구절이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아는 것과 같은 인격적 앎을 가진 선생님이죠.
Q 그런 선생님에 대한 일화가 있을까요?
제가 그렇게 말을 재미없게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어느날 중학교 1학년 성경 수업에 들어갔는데 학생들이 그렇게 졸더라구요. 제 수업이 인기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같은 아이들이 미국에서 오신 롭 슈만(Rob Shuman) 선생님의 영어 특강 시간에는 졸지도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듣는 걸 보고 이상한 거예요. 그렇게 재미있는 수업도 아닌데 왜 그 녀석들이 졸지 않았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몇 일 후에 우연히 롭 선생님 컴퓨터 모니터를 보게 되었는데, 스크린 세이버에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들고 찍은 사진이 계속 돌아가더라구요. ‘바로 이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롭 선생님은 미국인이라 아이들의 한국 이름을 외우기 힘들어서 그렇게 한 거였어요. 전 아이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는데 말이죠. 전 지식을 전달하려고만 했지 롭 선생님처럼 학생 한 명 한 명을 알지 못했던 거예요. 학생, 특히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자신을 개인적으로 알아주는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게 되어 있어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학생을 아는 교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거라는 걸 깨닫게 되었지요.
“이혼의 고비에서 배운 쉼이 있는 삶”
Q 주일에는 목회 사역으로, 주중에는 학교일로 많이 바쁘셨을 거 같은데 가정에서 불만은 없었나요?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원천교회를 세우고 중앙기독초등학교를 개교하고 십여년을 정신없이 살았어요. 나름대로 성취감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교회와 학교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아내는 그런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어요.
하루는 아내가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저를 찾아왔어요. 더 이상 이렇게는 살지 못하겠다고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저는 절대 안된다며 아내를 붙잡았죠. 아내는 저의 이중적인 모습들, 온전히 거듭나지 못한 죄성 등을 다 알고 있었지요. 아내는 제가 얼마나 이중적인 사람인지 학교, 교회 리더쉽에게 알리고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했어요. 그리고 같이 상담을 받자고 했죠. 정말 그렇게 하긴 싫었지만 떠난다는 아내를 설득하려고 어쩔 수 없어 그러겠다고 했어요.
교회와 학교에서는 그만두는 대신에 저희 부부에게 1년의 안식년 기간을 제안했고, 그렇게 저희 부부는 미국에서 일 년동안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Q 안식년 동안에 관계가 어떻게 회복되었는지요?
사실 미국에 가면 학교일도 하고 앞으로 필요한 새로운 구상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때 저희 아내가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됐죠. 미국에 도착해서 병원에 가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안정을 취해야한다고해서 일 년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같이 이야기하고, 식사도 하고, 산책하고, 말씀도 같이 읽고, 일을 떠나 쉬면서 관계가 회복되었어요.
“쉼 Resting, 쉬기위해 일하라”
Q 사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에 쫓겨서 쉬는 게 쉽지 않잖아요. 쉬면 게을러지거나 뒤쳐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포기하거나 도태된 사람처럼 보이게 까지 하니까요.
그건 쉼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어서 그래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며칠 동안 창조하신 줄 아세요? 바로 7일이에요. 7일동안 세상과 안식을 창조하셨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6일 동안 하나님이 창조하고 하루는 쉬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7 일째 쉰 안식까지도 만드신 거예요.
본래 일이라는 게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소명을 갖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하는 거였는데, 세상에 죄가 들어오면서 일의 본질이 흐려진 거에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일이 아닌 내가 영광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큰 일을 해내고자 발버둥 치며 바쁘게 살게 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안식은 쉼(resting)이라고 생각해요. 온전히 내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족, 관계, 세상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거죠.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인 거죠. 그럴려면 내가 어떤 걸 할 때 정말 쉬는 건지 “나”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이 개념은 B&R의 릴랙싱(relaxing)과도 일맥상통해요. B&R의 R이 휴식의 개념인 Relaxing보다는 쉼을 의미하는 Resting이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웃음)
(이 인터뷰 후에 B&R의 릴렉싱(relaxing)을 더욱 본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레스팅(resting)으로 변경하게 됩니다)
“내려놓음이 나와 모두를 살린다”
Q 원천교회는 작은 교회가 여러개 모인 교회라고 들었는데, 일반적인 교회와 다르게 하신 이유가 있나요?
사실 원천교회는 하나의 큰 교회였어요. 저와 아내와 미국에 회복을 위해 안식년으로 나가있을 때, 저는 제가 교회에 없으니까 교인의 수가 줄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년의 시간이 지나고 교회로 돌아와보니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예배 드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없는 일년 사이에 학교가 더 유명해져서 교회에 사람이 몰려든걸 거야. 우리 부목사님들께서 심방을 열심히 하셔서 교회가 부흥된 걸 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요셉아, 아직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라는 마음이요. ‘내가 없으면 안된다. 나만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회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두 분의 부목사님과 교회와 상의해서 하나의 교회를 3개의 작은 교회로 나누어 누군 담임목사, 누군 부목사가 아닌 3명의 담임 목사로 교회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전 원천교회의 담임 목사가 아니라, 원천교회 소속의 기쁨의 제 1원천 교회 담임목사에요. 현재 원천교회에는 총 15개의 작은 교회가 있어요.
Q 직접 개척하신 교회를 여러 사람과 나눠 사역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큰 교회의 담임 목사일 때는 정말 바빴어요. 말씀 준비에 많은 심방, 중앙기독학교 일까지 하다가 가정에 소홀해져서 그 사단이 난 거 였잖아요. 하지만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이후로는 쉬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일하고 쉬는 이유를 명확히 알고 실천하게 된 거죠. 그리고 또 내가 내려놓음으로 인해서 더 많은 목사님에게 기회가 가고 또 성도들은 작아진 공동체에서 적극적으로 예배와 나눔, 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지요.
Q 정말 B&R을 실천하는 삶이네요. 목사님의 내려놓음이 목사님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축복이 된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쉼을 가지실 때 주로 어떤 것을 하시는지요?
저는 날을 정해놓고 쉬어요. 저는 절 잘 알아요. 자율적으로 쉬면, 전 일중독이라 분명히 안 쉴거에요. 그래서 쉬는 날을 정해놓는게 필요해요.
저희 부부는 일주일 중 목요일을 쉬는 날(안식일)로 정해놓았어요. 안식일 날 제 아내는 요리를 하면 안되고, 저는 학교나 교회 일을 하면 안돼요. 그러다보니 제 아내는 그 전날인 수요일까지 목요일 음식을 다 장만해놓고, 저도 해야할 일이 있으면 미리 마쳐두지요.
쉴 땐 주로 아내와 같이 텃밭 가꾸는 일을 해요. 텃밭을 가꾸다보면 잡념이 사라져요. 쉬는 날엔 책도 안 읽어요. 책을 읽으면 자꾸 설교 준비를 하게 되서요. 일과 관련 없는 오로지 쉼을 위한 것들만을 하죠.
“아빠가 보여준대로 살게요”
Q 좋은 선생님에 이어서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저희 아이들이 제 50번째 생일에 선물해준 액자가 있어요. 거기에 이렇게 써 놓았더라구요.
“아빠는 어떻게 살라고 말씀만 하지 않으셨어요. 아빠는 실제로 그렇게 사셨어요. 우리도 아빠가 보여 준 대로 살게요.”
저희 학교 학생들이나 저희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특별한 재능과 성품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함께 찾아주고, 축복해주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말만 하지 않고 제 삶으로 살아내며 보여줬어요. 아이들이 그 점을 알아주니 이만한 축복이 또 어디 있겠어요. 삶으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요즘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면요?
자녀들을 알지 못하고, 지식만 주입한다는 점이죠. 이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마찬가지 인것 같아요. 관계가 없는 앎은 없어요. 자녀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지식만 전달하는 관계는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자녀와 배우자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내가 우리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점검해보고 서로 더 알고자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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