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웰빙’이라는 단어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와 관련된 건강식품과 음식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정신질환도 미디어에서 다루는 빈도가 늘어나고 최근에는 TV에서 연예인들이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고백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막상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나 가족에게 정신질환이 찾아오면 그 일을 쉬쉬하거나 부끄러운 일로 여긴다. 신앙인들은 이런 경우에 자책감으로 두 배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사랑하는 내 딸, 애썼다” 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한혜성 원장은 우울증을 비롯한 불안, 공황장애는 신앙과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몸이 아픈 것임을 강조하며, 치료에 전념하면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고통의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나눈다.
깨져버린 그릇
쉴 새 없이 업무로 바빴던 어느 날, 한혜성 원장은 5년 전 아이를 사산하고 난 후 긴 터널과 같은 시간을 통과한다. 사랑하는 할머니의 소천 이후 친정 식구들의 건강 이상을 차례로 마주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누적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 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속이 메스껍고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그녀는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남을 직감한다. 정신과 의사였기 때문에 다른 불안증세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이미 ‘깨진 그릇’과도 같은 상태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치료자인 제가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속상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지요. 참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진 않았지만 에너지가 떨어져서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이 애써야 했습니다. 또한 생각과 걱정이 많아져 일상적인 일 외에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 괴로운 건 몸의 힘듦이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건강 때문에 하지 못하는 걸 받아들이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
몸은 온전치 못했지만 부족한 가운데에서 준비한 우울증 강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위로 받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자신의 소명이 마음이 아픈 자들을 위로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마음 돌봄 실전 연습
우리 인생에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한혜성 원장은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3가지 단계의 질문을 통해 마음 돌봄을 연습해 볼 것을 제안한다.
1단계 : 있는 그대로 나 / 상대 / 상황 바라보기
2단계 :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구분하기
3단계 : 내가 어쩔 수 있는 것 하기, 어쩔 수 없는 것은 다시 1단계로 돌아가기
한혜성 원장은 교육목적으로 받았던 정신 분석에서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이 어린 시절에 자신이 견뎌온 상황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그녀는 일하느라 바쁘셨던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자라 항상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잦은 이사, 사촌들과 함께 살아야 했던 상황 속에서도 떼를 쓰기보다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헤아리는 착한 딸이었다.
“부모님이 노력을 무척 많이 하면서 사셨군. 어린 자네는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책에 마음을 붙인 것 같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어른처럼 굴고 공부도 열심히 했겠지. 책에 붙인 마음이 지금은 사람으로 가서 어떤 사람에게나 늘 애쓰며 사는 것 같다. 어린 시절 마음 둘 데가 없었기 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긴장과 불안이 있는 것 같아.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에게 잘하려고 너무 애쓰면서 살지 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부모님에게 편한 마음으로 잘하게 될 거야”
저자는 누군가, 또는 내 자신이 어렸을 때의 나, 특정 시점의 나를 “그 때 그 마음 그대로” 공감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충분히 나 자신을 수용하고 인정함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할 유연함을 갖게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어린 시절의 나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짐을 견디고 살아오신 부모님을 함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마음 돌봄’은 상처를 상처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은혜임을 깨닫게 해준다.
아버지, 제가 불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수 많은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이는 우울증, 화병, 공황장애로 이어진다. 특히 작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로 일상이 마비되고 폐업과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모두에게 많은 피해를 남기고 있다. 한혜성 원장은 심각한 재난 가운데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킬 방법을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 솔직하게 마음 아파하기
우리는 그 어떤 정체성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가졌어요. 저는 하나님 안에서 솔직하게 마음 아파하는 신앙인이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인정하고 그 품에 머물러 있으면, 그 분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실 참 부모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주권 인정하기
이럴 때 우리는 자꾸 묻고 싶어집니다. ‘하나님,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나요?’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가 이해할 영역이 아니라 인정할 영역입니다. 신앙의 영역이지요. 그래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걸 해결하려고 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일 수 있어요.
-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기
어쩔 수 없는 일에 지나치게 매이는 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조차 할 수 없게 만들 뿐이에요.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외부 환경의 어려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가 할 일은 줄어들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일을 하는 우리의 중심이 중요하다고 보십니다.
- 전문가의 도움 받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재난의 시기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도움 받을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 게 좋아요.
고통 중에 있는 당신에게
삶에서 고통은 필연이다. 전 세계적인 재난과 기근의 소식부터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겪고 듣는다. 이런 일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한혜성 원장에게도 견디기 힘든 고통의 순간이 찾아왔다. 뱃속의 아이를 임신한 지 7개월 된 어느 날 떠나 보낸 것이다. 임신 후반이었기에 유도 분만으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 속에 기도할 어떤 힘도 낼 수가 없었고 신음하며 울 뿐이었다. 아이를 화장한 후 남편과 친정아버지 손에 보냈다. 그녀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몫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삶의 주권이 그 분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저는 자타공인 정말 애쓰면서 사는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애쓴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하나님만을 의지한다고 했으나 사실 제가 애쓰고 열심히 살며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랐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거에요. 열심히 살아도 내 노력으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철저히 받아들이게 된 삶의 고통 앞에서야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님을, 하나님이 내 인생의 조력자가 아닌 주인이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요 “
그녀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어떤 판단이나 조언이 아닌 그 고통을 함께 겪어준 사람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위로의 편지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의 편지를 전달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조언한다. 어떤 말보다 낙심한 자의 건강을 챙겨주는 일, 반찬을 가져다 주는 일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TV속, SNS 속 누군가 행복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는 행복하지 못해 슬퍼하는 누군가도 있음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애쓰며’ 살아온 나 자신도 이미 용납받고 사랑받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고통과 슬픔에 있을지라도 그 분 손에 모든 주권이 있음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Blessing & Resting이 아닐까 ?
<새롭게 하소서 영상: https://youtu.be/k1dzhoZYKrA>
<사랑하는 내딸 애썼다 책소개 영상: https://youtu.be/2JWkoEjAuLI>
글. 임효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