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 특히 가족을 잃는 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나 또한 아빠를 떠나 보낸 후 느끼는 상실감 속에 꽤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젠 괜찮다고 생각할 때 즈음이면 그리움과 슬픔, 아쉬움과 미안함이 번갈아 가며 내 마음속으로 찾아왔다. 무언가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때 김명선 간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게 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캠퍼스 전도와 찬양 사역에 헌신했던 그녀는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남편의 전폭적인 지지로 새로운 사역과 앨범 발매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랑하는 남편이 담도암 4기 진단을 받게 되고 결국 가족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랑이 남긴 하루”는 남편의 소천 이후 마주한 일상과 묵상에 대한 기록이다.
눈이 부셔서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태양이 강렬했던 어느 여름, 남편은 이 땅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진정한 여행을 떠났다. 죽음이 무엇인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생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 준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유난히 바람이 세다고 느껴지는 가을을 지나, 그 해 겨울부터 나는 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이해해 보려고 썼고, 이해 받고 싶어서 썼다. 쓰다 보니 그것은 시가 되었고, 노래가 되었다
남편을 살려 주시도록 눈물로 기도했던 시간, 사랑했던 시간이 지난 자리에는 그리움과 함께 슬픔이 찾아왔다. 이제는 고통이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리라 믿지만 지금 이 시간을 공유할 수 없다는 생각에 또 아프다.
남겨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많이 웃고 즐거워한 날일수록 다음 날 공허함이 더 크다. 나는 항상 그를 필요로 했고, 그는 내가 있기만 하면 됐다. 지금도 너무나 필요한 순간들 속에서 그가 존재하지 않음에 절망한다. 그가 있어 주기만 해도 좋을텐데, 어젯밤에 호연이가 울었다. 아픈 것은 분명 아니었고, 슬픔이 가득한 흐느낌이었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 우는거야?”
“아니…”
일곱 살 아이는 자신에게 불쑥 찾아온 울음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슬픔이 여전히 자리한 그 곳에서 그녀는 원망하거나 좌절하기보다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살아나간다. 풍성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삶의 기쁨을 발견하고, 또 기록한다.
어느 때고 계속 생각난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보다 아이들의 까르르 행복해하는 소리에 더 생각이 난다.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남편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니, 나는 그를 정말 알고 사랑했었나 보다. 4년 전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사진을 보며 오늘을 살기로 결심한다. 염려나 두려움은 내던지고,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오늘 하루의 기쁨을, 오늘 하루의 순종을, 오늘 하루의 성장을 주님 안에서 누려야겠다.
그리움이 익숙함으로 조금씩 바뀔 때 즈음, 첫째 호연이가 안 보이던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하루에 몇 십 통씩 전화 거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아이의 행동은 급기야는 등교를 거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가까스로 등교에는 성공했지만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는 수시로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보러 한 번만 내려올게. 한 번만… “
“호연아, 교실로 좀 가. 제발 올라가라고, 종이 쳤다고!”
그렇게 흐느끼다가 문득 내 모습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아이들이 다니는 복도 끝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호연이는 겁에 질렸고, 옆 교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던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다. 나는 도망치듯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호연이는 맨발로 울면서 뒤쫓아왔다. 차 안으로 들어온 나는 목 놓아 울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찾아오자 남편의 부재가 그녀의 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억울하고 지친 마음에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그 분을 새롭게 만난다.
“여러분,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것 같을 때,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미쳐 날뛰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셨는데, 아니 나와 함께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인데… 근심과 염려로 닫혀 있던 내 눈과 귀가 열렸고, 내 안에서 진심 어린 찬양과 감사가 흘러나왔다.
누구나 유한한 시간을 살아간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웠는지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랑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지만, ‘남겨진 사랑’은 계속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은 내 곁에 없어도 사랑 그 자체는 내 안에서 숨쉬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입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짧은 인생 동안 후회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 것이 내 삶에 주어진 가장 큰 블레싱Blessing이 아닐까.
늦은 밤. 녹록치 않은 인생을 생각한다.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우리가 바람을 견디고 끝까지 붙잡아야 하는 것은 ‘나는 꽃이다’ 라는 자기 확신이 아닐까. 내 사랑의 노래는 분명 드러나고 들릴 것이니, 영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영원할 사랑을 남기는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해야겠다.
글 임효선 기자
[사랑이 남긴 하루 북 트레일러 영상: https://youtu.be/9qjyEqSkwZ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