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인도를 여행하던 중 아그라 지역에 있는 타지 마할이란 유적지에 갔을 때 들은 얘기다. 우리보다 몇 년 앞서 이곳을 방문했던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타지 마할을 보고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타지 마할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예찬하는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나니 나에겐 타지 마할과 함께 전해 내려오는 전설들 보다 빌 클린턴의 소감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처럼 세상을 두 부류로 굵직하게 정의 할 만한 삶의 기준이나 계기가 나에게도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때 난 타지 마할의 위용보단 실제로 본 적도 없는 한 지도자의 안목을 통해 엿본 그의 세계관이 흥미로웠고, 여태껏 타지마할 하면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 보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먼저 떠오른다.
그 후,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우연한 기회로 현지에 사는 지인과 함께 케냐 중서부에 펼쳐진 나쿠루 국립공원을 간 적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플라밍고 서식지로도 유명한 이 공원은 자가용을 이용한 사파리투어가 가능한 곳이었다.
말이 공원이지 이곳엔 정해진 길도 없다. 수십번은 와봤다는 지인의 자랑을 들으며 우리 차량은 왕국 어디론가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잘 정돈 된 동물원에 익숙한 나로선 이 거대한 자연 속에 흩어진 각종 동물들의 서식지를 용케 찾아가는 지인의 ‘동물적 후각’이 신기하기도 했다. 동물들과 가까워질수록 그들과 나, 누가 구경꾼인지 애매모호해지는 이 혼돈의 순간은 도리어 이곳에서 깨닫게 되는 최고의 덕목 아닌가 싶었다.
종일 달려보아도 야생과 문명을 가르는 경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공원 입구에 진작 내려놓고 왔어야 했던 편견의 울타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뉴욕에 돌아온 나는 마치 타지 마할의 빌 클린턴처럼, 그날의 사파리투어를 전후로 나를 두 부류로 생각해보았다. 동물의 왕국을 다녀온 나와 그렇지 않은 나. 그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문명과 야생의 경계처럼, 뉴욕도 이런 왕국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이곳에 사는 수많은 동물들과 사람들도 이미 서로를 닮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 사실을 시내의 1번가에 서있던 차에서 발견했다. 베테랑 운전수답게 견공의 표정에 품위가 흐른다. 누굴 기다리던 참이었을까. 마치 세상 어딘가 정해진 길 없이도 족히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차에서 그는 이렇게 한마디 건네듯 앉아있다.
자네, 이제 세상 좀 볼 줄 아는군!
촬영장소: 뉴욕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 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