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설인 춘절 연휴가 막을 내렸다. 고향의 먹거리를 가득 담은 보따리를 메고 베이징에 돌아오는 귀경객들의 표정이 밝다. 그들의 보따리엔 저마다 품었을 새해 소망과 각오도 함께 깃들지 않았을까. 덕분에 그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 보인다.
정수리를 비추는 해가 따습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 무슨 영문인지 옛 골목 한켠에 자리한 가게의 주인은 한가롭다. 창가의 마네킹들도 새 계절 옷으로 단장하고 손님을 기다리는데, 정작 가게 주인은 분주한 바깥 세상과는 달리 그 만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절묘하게 해를 가린 그림자를 오롯이 즐기면서!
귀경객들의 발길이 골목으로 이어진다. 나도 이들처럼 새로운 소망과 각오로 새해를 맞이했다. 이를테면 올해는 밀린 글쓰기에 집중하리라 다짐하며 말이다. 하지만 책상 앞에 앉으니 창 밖의 풍광에 마음이 흔들려 카메라를 만지작거린다. 막상 사진을 찍으려 나서니 살을 에는 추위가 내 발길을 돌린다. 글과 사진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할수록 싱거운 변명과 탄식만 만리장성처럼 늘어져간다.
보면 볼수록, 세속을 추월한 것 같은 이 가게 주인의 배짱에 매력을 느낀다. 가게 앞에 매달아놓은 탱글한 홍등마저 주인을 닮아 야무져 보인다. 그가 즐기는 빛과 그림자의 선명한 경계선처럼, 무뎌진 나의 초심도 또렷하게 다듬어지길 다시금 소망해본다. 그 소망을 향해 달릴 나만의 시간을 마음에 그리며 굽이굽이 골목을 붐비는 귀경객들 사이를 빠져나온다.
촬영장소:
베이징. 중국의 수도로 80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이기도 한 청나라를 끝으로 중국 공산당이 들어선 후,1960년대 문화대혁명이란 사회주의운동으로 사회주의를 실천하면서 역사적 전통적 문화유산들이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붕괴되었다. 이후 경제개방정책으로 인해 도시가 급속히 현대화되면서 베이징 서민의 일상이 담긴 옛 골목(후통)들도 대부분 철거되어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작가: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