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청소년, 집 밖의 청소년, 위기 청소년들 아빠 처럼 먹이는 목사님으로 알려진 이요셉 목사를 만나 그의 삶에 드러난 비앤알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Q. ‘양떼커뮤니티’ 라는 단체 이름이 예쁘면서도 독특한데요 이름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양떼커뮤니티’ 라는 이름을 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고 저희들끼리 부르다가 생긴 이름이에요. 양떼라는 이름은 ‘양아치떼’의 줄임말인데(웃음) 양아치들이 떼거지로 모여서 예배하니까 양떼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양떼’라는 것이 이중적 의미가 있잖아요. 예수님이 목자이시고 성도가 양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저희끼리 부르다가 이름이 정해진거죠.
Q. 위기 청소년 사역을 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2백명 정도 성도가 있는 교회에서 전임전도사가 되었어요. 그 때 청소년부와 청년부를 맡아서 할 때였는데 새벽에 교회 문 따고 들어와서 본당이나 청소년실에서 술먹고 뻗어 자고 있는 아이들을 제가 쫒아냈었는데 쫒아내다 보니까 이 친구들과 정이 들었어요
새벽에는 교회 온 애들을 쫒아 내고 낮에는 저희 교회 애들 다니는 학교에 전도한다고 학교 돌아 다니면서 햄버거 사주고 하다보니까 교회 들어오는 애들은 쫒아 내면서 교회 밖에 있는 애들을 전도하고 있는 모습에 회의가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엄청 혼내고 쫒아내다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허락하셔서 ‘애들을 쫒아 내더라도 밥은 한 번 먹이자’ 라는 생각으로 근처 국밥집에서 밥을 먹이다보니까 관계성이 생기고 애들이 교회에 오게 되었어요. 2011년 10월 11일에 시작해서 딱 10년 됐습니다. 토요일 저녁 7시에 예배를 드려요. 그 시간에 예배를 만든 이유는 토요일날 제일 술 많이 마시는 시간에 술을 못 마시게 하려고 했던 거였어요. 위기청소년이나 가정 밖 청소년들은 뒤에 친구 공동체가 많거든요. 그 친구들이 밀려 들어오면서 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서 제가 나오게 되었고 양떼 예배가 양떼 커뮤니티가 된거죠. 애들이 저에게 왔다는게 맞는 것 같아요. 처음에 왔던 애들 중에 지금은 사역자가 되어서 직원으로 일하는 아이도 있어요.
Q. 단체 안에서 하는 주요한 사역 활동은 어떤게 있나요?
가장 중심 사역은 예배입니다. 모여서 아이들의 상황을 봐야 해서 예배가 중심입니다. 한번도 예배는 빼먹은 적이 없어요. 사회복지센터가 프로그램과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면 저희는 선교단체에요. 저희는 인물중심인 거에요. 아이들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하다가도 아이들에게 맞지 않으면 폐기하고 바꾸기를 반복했어요. 인간의 중심에는 양떼 예배가 있고 양떼 예배에 온 아이들의 필요성에 따라서 사역이 열리는 것 같아요.
예배에 왔던 아이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유를 봤더니 아이들이 교육을 받은 게 없는 거에요. 저희 아이들 중 80%가 보호종료 아동인데 보육원에서 자라고 나이가 되서 나온 아이들이죠.. 보육원이나 쉘터에서도 블랙리스트가 되어서 들어가서 함께 생활할 수 없는 아이들이 원룸 같은 곳에 함께 생활해요. 이런 가출팸 아이들이 저희 주요 사역 대상입니다.
양떼 예배로 시작해서 아이들이 교육을 못 받은 걸 보고 거리 학교가 시작되었고 더불어 심리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어서 로티위기정서심리상담센터가 열렸고 지금도 신림센터에서 거리학교와 심리센터가 운영되고 있어요. 강남센터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사용되고 있고요. 그 밖에는 아이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옥면가’라는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인턴과정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몇 명있는데 아직은 그 안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많이 안되요. 아이들의 습관 때문에 일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양떼 커뮤니티 같은 경우는 아이들에게 맞추어져 있다보니가 아이들이 병원에 가야 하는 경우 의료지원 나가고 계절마다 의류지원, 하루에 한끼씩, 일주일치의 컵라면, 햇반, 스팸, 컵밥, 김 같은 것들을 나누고 있어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시작한 사역이 있는데 미혼모 아이들 사역이에요. life saver라고 해서 미혼모 아이들과 태아를 위한 사역을 제 아내가 맡아서 하고 있어요. 저희 안에 임신한 아이가 두 명, 출산을 한 아이가 두 명 있는데 아이들이 부모가 없다보니 산후조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거에요. 저희 집 앞에 원룸을 잡아서 산후조리를 해주고 있어요. 이 안에서도 계속 새로운 사역들이 연결해서 시작되고 있죠.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져 준다는 생각으로 자립을 돕는 사역을 하고 있죠. 저희는 종교기관이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 아이들을 오게 할 수 있는 권한은 없어요 법률처분기관이 아니라 선교센터이고 종교기관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관계성으로 와요.
양떼 신림센터가 40명 공간인데 60명 씩 모였었거든요. 너무 많이 모여서 화요일, 목요일 두 번 나눠서 화목한 예배라고 이름 짓고 30명 씩만 모이려고 했는데 화요일 60명, 목요일 60명이 되었어요. 저희의 목적은 교화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거다 보니까 사랑을 많이 해줘요. 예배에 나오는 아이들 중에는 성폭행 가해자도 있고 성폭행 피해자도 있는데 그 안에 복음 전하면서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관계성 가운데 교화를 시키려고 하죠.
Q. 일주일의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제가 정말 말 안 듣는 120명의 자녀를 기르고 있는 부모인 것 같아요. 3-4년전만 해도 선생님들이 없어서 제가 혼자 다 했었는데 지금은 파트별로 선생님들이 계시고 저희 안에서 변화된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어요. 소그룹별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저는 그것을 교회가정이라고 칭하고 있어요. 한 선생님당 5-10명 정도의 아이들을 맡고 있는데 그렇게 아이들을 맡고 있는 선생님이 13명 있어요. 저는 좀 특별히 센 아이들을 맡고 있는 데요.
조직폭력배나 성매매를 했던 아이들, LGBT라고 동성애하는 아이들을 만나서 복음 전하고 있고 미혼모나 여성 아이들은 제 아내가 만나고 있어요. 주중에는 아이들을 만나는게 주된 일이에요. 지금은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 같이 사는 거죠. 재밌는 영화 나오면 같이 보고 같이 놀고 맛있는거 같이 먹고… 그러면서 복음 전하고 얘기하면서 고민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의 반복이죠.
Q.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
위험하다고 생각됐던 일인데 아이들이 칼을 들고 싸우는 거에요. 아이들이 싸운다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저를 보고 칼을 숨기고 죄송하다고 하더라구요. 아이들이 거칠게 자라 악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들의 성장배경을 들어보니 어릴 때부터 자기전에 칼을 쥐고 잤데요. 무섭기도 하고 누가 해치려고 하면 그 칼로 죽일까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 것들이 익숙했기 때문에 싸움도 그렇게 하더라구요. ‘아무도 이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아이들이 상처가 많고 어른에 대한 신뢰가 없다보니 믿음을 갖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아이들을 대할 때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가요?
일단 우리 아이들이 특별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특별하고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애들을 무서워하는 만큼 애들도 어른들을 무서워해요. 사실 사람이거든요. 괴물이 아니에요. 사람이고 인격체인데 우리 자체가 아이들은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해요. 막 혼내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어른들도 회사 앞에 모여서 담배피는 데 누가 와서 막 뭐라고 하고 소리지르면 좋아할 사람 없잖아요. 애들도 마찬가지에요. 처음부터 적대적으로 가면 누구나 다 저항하겠지만 가서 ‘밥은 먹었냐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불편한거 있냐?‘ 라고 말을 건네면 애들도 위협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거죠.
아이들이 잘못했을때 상황들을 보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없어요. 피해자라고 여겨지는 애들도 가해자였던 아이들이고 가해자였던 아이들도 상황만 바뀌면 피해자가 되는 것이 가정 밖 청소년들의 실태거든요. 어느 순간 우리가 피해자 가해자를 구분지어서 얘기하는 것은 한쪽은 악한 존재로 규정짓는 것이에요. 모든 존재는 너무 소중하거든요. 아이들이 살아왔던 배경을 보면 악하게 살아올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거지 ‘존재자체가 악하지 않다’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애들을 사랑해주고 아껴주면 변화가 쉽지는 않지만 하나씩 변화될 수 있다는 것도요. 살아온 배경만 봐도 아이들이 딱하거든요.
저는 그런 아이들을 봤을 때 ‘지금 당장 보여지는 행동들보다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왔을지를 생각해 보면 시선 자체가 조금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관계성을 쌓으려면 많이 만나야 되고 돈이 있어야해요. 먹인만큼 변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사역은 우리가 하는게 아니라 고기가 한다라고 농담삼아 얘기해요(웃음) 지갑 안 열면 안 변한다. 좋은 선생님 위에 친한 선생님 있고 친한 선생님 위에 돈 잘 쓰는 선생님 있다. 많이 만나야 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관계성이라는 것 자체가 독특한 게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문화권으로 만나면서 횟수가 많아지면 관계성이 쌓이거든요. 제가 어른이라고 가르치려는 입장이 아니라 똑같은 입장에서 얘기하는 거죠. 우위를 선점하는 게 아니라 같은 문화권 안에 있어주는 것. 예수님도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땅에 오신 것 처럼 사역의 근본은 ‘도와줄게’ 가 아니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이들도 대화가 잘 돼요. 제가 잘 되는 걸 보여주는게 아니고 제가 힘들때 어떻게 하느냐를 보여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저를 보고 변했던 계기가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도 요동하지 않고 양떼를 맡았던 거예요. 장례식을 마치고 바로 올라와서 양떼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했을 때 애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제가 가장 힘들 때도 묵묵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없으면 목사님이 이렇게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하나님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은 잘됐을 때가 아니라 ‘가장 힘들 때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가 복음을 평가하는 기준이 돼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힘들 때 기도하는 모습, 힘들 때 아무렇지 않게 복음 전하고 아무것도 없는데 빚 내서라도 아이들 간식 사주고 밥 먹이고 하는 모습들을 직면했을 때 저와 많이 친해졌던 것 같아요.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떻게 하는지 애들이 보더라구요.
Q. 목사님 개인의 삶도 궁금해지는데 어렸을 때 목사님의 삶은 어떠셨나요?
제 인상을 보고 많이 놀았을 꺼라고 생각들 하시는데요 전 목회자 자녀로 모태신앙이었고 아직까지 한번도 술 담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스무살 때 신학교에 가서 신학교 졸업하고 신대원 졸업하고 지금까지 계속 온 것이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자극이에요.
아이들의 인생에 자극이 되는 사람은 부모님 두 분이 다 있고 거기서 사랑받고 쭉 자란 사람들이에요. 이 아이들은 자기들의 삶이 일반적인 줄 알아요. 친구들이 다 그러니까. 제가 부모님 두 분이 다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하니까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며 특별하게 생각하더라구요. 교회에서 올 곧게 쭉 살아온 사람들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자극을 받더라구요. 놀았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과는 오히려 티격태격 싸우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이 저를 세우시는 것 같아요. 술집 클럽촌 모텔촌에 저를 세우시고 보내시는 이유는 저는 그렇게 놀아 본 적이 없어서 술 맛도 모르고 분위기도 모르기 때문에 저에게 그런 곳들이 유혹거리가 안되는 거에요.
28세 되는 아이가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인데 그 아이도 제 앞에서는 담배를 안펴요. 함께 놀러가도 제 앞에서는 술 절대 안먹어요. ‘몸에 안좋으니까 술 담배 많이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겐 교육이거든요. ‘목사님은 술 담배 하면 안되요? 여자랑 자고 다니면 안되요?’ 물어요. 그게 안되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 거에요. 그건 안되는 거라고 얘기해 줬을때 한국교회의 목사님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거거든요. 제가 만약 사회복지 기관에서 배웠으면 사회복지 센터를 했을꺼에요. 제가 예배를 먼저 시작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예배가 습관이었고 개척교회 목사님 자녀가 할 수 있는 건 예배 밖에 없었기 때문이에요.
교회 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이 제 추억이에요. 어머님도 어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그 때 오셨던 성도님들이 어부들, 건달들, 홈리스들 이었어요. 전 그 사람들이 무섭지 않고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똑같이 대할 수 있는 이유가 교회에서 만나던 사람들이 다 그랬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훈련시키시지 않았나 해요.
Q. 위기 청소년을 섬기는 사역 가운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던 일 중 기억이 나시는 일을 나눠주세요.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아이 중에 양떼 창립멤버가 있는데 처음에 교회 문 따고 들어와서 술 먹던 아이중 하나였죠. 삶이 너무 안 좋았었는데 변화된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말하기를 ‘목사님 만나서 목사님과 예배했던 아이 중에 지금 나쁘게 된 아이들이 없다’ 라고 말할때 저에겐 큰 위로가 됐어요. 비율적으로 목사님 안 만난 애들은 교도소에 가있거나 나쁜 일을 하며 사는 데 목사님 만난 애들은 다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너무 행복하고 좋았어요. 저희 양떼 커뮤니티의 목적은 부흥하면 안되고 없어지는 건데 우리가 맡을 아이들이 없어서 없어져야 한다가 목표인데 실상 저희는 부흥, 성장하고 있죠.(웃음)
Q.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명은 하나님이 애통해 하시는 마음이 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양떼커뮤니티 10년 동안 열정만 가지고 왔던 사람들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이 없어요. 하고 싶어서 왔고, 멋있어서 왔고, 좋아서 왔던 분들은 남아 있는 분들이 없는데 지금 남아 있는 분들을 보면 하나님의 아파하시는 마음이 있다는 거죠. 하나님의 애통해 하시는 마음을 갖는게 사역의 원동력이에요. 두번째는 현장에서 만나는 예수님이 없으면 절대 못버텨요. 지금에 와서는 현장에 가는 이유가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라기 보다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거에요. 위기청소년을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해서 하는 거고 그게 원동력이에요.
아이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지면 절대로 못하는데 예수님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나는 주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보아야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내가 주님앞에 하는 모습과 똑같더라구요. 이 사역이 현장에서 만나는 예수님이에요.술집거리나 모텔촌, 가출팸에 계시는 예수님이 있거든요. 거기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이 일은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하나님이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실까 아파하실까 하는게 동기부여가 되는 거죠.
Q. 양떼 아이들 뿐 아니라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가정에서 목사님은 어떤 아버지인가요?
첫째 딸이 중 2, 둘째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저희 아이들은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해줘서 감사해요. 막내 아들은 제가 강요하지 않았는데 목사님이 되고 싶다고 말해요. 이유를 물었더니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고 아빠처럼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얘기하더라구요. 제가 해외를 다니고 양떼들 만나면서 가정에 쓸 에너지가 많이 없었는데 제 아내가 지혜롭게 잘 해줬어요.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빈 공간이 생기지 않게 아내가 많이 노력해 줬고 저도 짧은 시간을 아이들과 만날때 최대한 집중해 줬어요. 몸으로 많이 놀아줘서 그런지 제 생각에는 아빠의 빈 공간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아요.
Q. 최근에 뉴스를 통해 가정 안의 범죄들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 이런때 크리스천들이 가져야 할 태도와 역할은 무엇일까요?
저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동성애나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반대해도 그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 데려가거든요. 밥 먹이고 놀아요. 복음은 삶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다 퍼줘도 안변하던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변하더라구요.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잘 믿게 할까가 저희에겐 복지였어요.
Q. 앞으로 양떼커뮤니티의 비전과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부모교육 세미나와 미혼모 낙태를 시키지 않는 교육들에 대해 준비하고 있어요. 양떼커뮤니티 10년을 하다보니 매년 4-5명이 낙태를 해요. 올해부터 좀 더 책임감 있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낙태를 하지 않는 것에 책임을 지고 낙태가 왜 잘못됐는지를 아이들을 책임지려고 미혼모 사역도 준비하고 있어요.
글. 김정아, 김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