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어?” 아이들에게 무심한 듯 건네는 애정어린 한마디. 밝은지역아동센터 엄경애 대표는 아이들 이야기를 시작하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14년간 울고 웃으며 아이들과 함께 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밝은지역아동센터의 엄경애입니다. 예전엔 교육전도사로 교회에서 일했고 지금은 목사인 남편을 둔 사모이자, 이 아동센터의 선생님이에요.
밝은지역아동센터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이 곳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돌봄센터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이들에게 밥도 먹이고, 공부나 특별활동과 같은 프로그램이 열리는 곳이예요. 결손 가정이나 맞벌이 부모의 아이들이 저녁까지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죠.
지역아동센터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많은 사람들이 지역아동센터가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된다고 알고 있어요.
정부보조금은 50% 정도이고 그 외에 후원금 30% 정도가 있어요. 만약 정부의 지원으로만 운영한다면 아이들에게 밥만 먹여줄 수 있는 형편이에요. 후원금으로 아이들이 여러가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있어요. 후원은 회사나 개인들이 주로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형편이에요. 월 10,000원의 후원자가 스무명만 되어도 좋을텐데, 저흰 아직 10,000원 후원자가 채 스무명이 되지 않아요.
이 곳은 주로 어떤 아이들이 오고 또 어떤 활동을 하나요?
저희 센터의 아이들은 한부모 자녀가 대부분이에요. 부모님이 장애인이시거나 아예 안 계시는 아이들도 있고 탈북 청소년과 다문화 자녀도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총 26명의 다양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필요와 재능, 취미에 따라 바이올린, 방송댄스, 플룻, 미술치료, 축구, 난타, 진로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 중에 바이올린 수업도 있는데 처음에는 강사료를 내고 강사분들이 아이들을 지도하게 했어요. 3년이 지난 지금은 그동안 선생님들께 배운 아이들이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밝은지역아동센터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작은 공부방으로 시작했어요. 남편이 목회자인데 교회건물을 임대해놓고 보니 예배가 없을 때는 비어있게 되잖아요. 갈 곳이 없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남편이 원래 선생님이었던지라 남편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제가 밥을 해 먹이면 좋겠다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처음엔 후원금도 없고 정부지원금도 없이 순전히 저희 사비로 시작했지요. 그렇게 시작했던 공부방이 2015년에 제도권에 들어오면서 정부후원금을 받는 지역아동센터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일을 한지 올해로 14년이 되었네요.
이 곳에는 독특한 자원봉사자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가 비영리단체다 보니 봉사자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요. 특별히 대학생들이 와서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면 좋은데, 방화동 주변에는 대학교가 없어서 자원봉사를 할 대학생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6년전에 “청소년자원봉사단기프트”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어요. 관내 고등학생 아이들이 이곳에서 봉사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학교 선생님의 추천을 받은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1:1로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은 저희 센터에 있는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으니 공부한 내용이나 관심사가 비슷하잖아요. 그런 멘토의 도움을 받아 전교 1등과 3등을 하는 친구들도 저희 센터에 있어요.
그렇게 시작한 자원봉사가 활성화되어 요즘에는 지원하는 자원봉사자들이 150-200명 가량 되요. 그런데 저희 센터가 수용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라 근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1 멘토를 파견까지 하고 있어요.(웃음)
모든 봉사자들은 신입교육을 시작으로 중간중간에 보수교육을 받고 있고, 협력하는 학교 선생님들과는 학기가 끝날 때마다 평가도 하고 계획도 세우는 회의를 정기적으로 하고 있어요.
자원봉사자들을 구하려다 봉사 시스템을 만들게 되신 거네요.
사실 이 봉사단체를 처음 운영하게 된 계기는 대원외고에 다니는 학생의 엄마가 전화를 해 오면서였어요. 이 엄마는 아이가 교육봉사를 했으면 좋겠는데 서울시내에서 교육 봉사를 할만한 곳이 없어서 찾다찾다 저희 센터에 전화를 하신 거에요.
아이가 토요일에 교육봉사를 하고 싶어하는데 토요일도 센터를 운영하느냐고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고등학생 멘토 프로그램이 설립되었어요. 그 가정을 포함한 15명의 아이들이 모였고 목동 엄마들을 중심으로 한 엄마봉사단도 창립했어요.
그 분들께
“자기 자녀들만 잘 키우면 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더 나은 사회를 맞이하려면 여러분이 다른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라고 호소했어요.
사실 아이들은 실질적인 도움 없이 바르게 자라기 어렵잖아요. 더 가진 분들이 나눠주고 도와주어야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 다른 평범한 아이들과 균형있게 자랄 수 있거든요.
어떤 계기로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영등포에 있는 창녀 촌의 중고등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직접 가보니 낮보다는 밤이 훨씬 무서운 곳이었죠. 그곳에 엄마가 창녀인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 아이들의 소원은 학교에 가는 것, 그리고 엄마가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어요. 너무 평범한 소원인데 그것조차 누리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채 꿈을 잃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 이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외 받는 아이들이 제 인생에 들어온 순간 이었어요.
이곳에서 아이들 야간보호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야간 보호를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저희 센터에 언니와 둘이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 하나가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새벽 한시에 들었어요. 그때가 한참 유괴 사건이 많았을 때라 남편과 저는 곧장 밖에 나가 경찰에 신고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새벽 6시에 겨우 아이를 근처 오락실에서 찾게 됐는데, 아이는 어두컴컴하고 다리도 못 뻗는 좁은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집에 가지 않았던 거였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왈칵 나면서
‘내가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면 안 되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눈물)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좁고 어두운 집에 누가 가고 싶겠어요.
그래서 저녁 9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야간보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같이 살 수는 없으니 최대한 잠 자기 전까지 함께 있는 거죠.
이 일을 하시면서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요.
두 아이가 생각이 나네요. 한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어요. 덩치는 작은데 큰 가방을 메고 혼자 길을 걸어가는 걸 보니 딱 저희 센터 대상자 아이인 것 같더라고요. 찾아오는 아이들을 맡기도 하지만 대상자가 되는 아이들을 찾아내는 것도 저희 일이거든요.
가서 이야기를 해보니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집에 들어오시는 상황이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짜리 언니와 같이 살고 있었구요. 기가 막혔던 건 근처 빵집에 외상이 60만원이나 있었던 거에요. 배가 고픈데 먹을게 없으니 빵집에 가서
“엄마 돌아오면 드릴게요!”
하며 외상을 달아놨던 거죠.
그래서 아이들을 데려와서 먹이고 입히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을 맡아줄 친척을 수소문해서 천안에 있는 친척집으로 아이들이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어졌지만 생각이 많이 나요.
다른 한 아이는 어떤 아이였나요?
또 한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함께 했는데 당시에 아빠는 백내장이었고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분이셨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아이가 많이 불안해했어요. “엄마가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해요?”하며 울던 아이에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걱정하지마!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널 입양할게! 넌 공부만해!”
라고 했죠.(이 이야기를 전하며 엄경애선생님은 눈물을 쏟았다)
저는 아무 대책도 없이 그런 말을 했는데 아이는 제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정말 공부만 하더라고요. 학비나 생활비로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늘 저는 다 해결될 거라고 호언장담하며 아이를 안심시켰고 다행히도 좋은 후원자가 연결되어 아이는 잘 성장했어요. 지금은 항공기능대 졸업반이 되었어요. 곧 공군장교 입대를 앞두고 있는 어엿한 멋진 청년이 되었고 이제는 저희 센터를 후원하는 후원자이기도 해요. 어려운 형편의 다른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지요.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없었나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해서 FC도토리라는 축구단을 창단했어요. 전 축구가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인지 몰랐어요. 아이들 유니폼에 공과 축구화도 장만해야 하고, 우리 아이들로만은 축구를 할 수 있는 수가 되지 않아 인근 아이들도 모집했어요. 돕는 손길도 없고 저와 남편이 모든 걸 해결하다보니 처음으로 몸이 지치면서 이 일이 참 외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유방암이었던 거였어요. 유방암 수술을 하러 가는 날 병원을 1시까지 가야 했는데, 12시 30분까지 일을 하고 병원에 가는 길에 가까운 부모님들에게 수술을 알렸어요. 제가 수술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였죠. 다행히 수술은 잘되었지만 아직도 투병 중이예요. 돌이켜보면 그때가 제게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지역아동센터의 교육의 목표가 있다면요?
저희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게 교육의 목표에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이 지금은 무상으로 지급되잖아요.
“지금은 너희가 누리되 나중에 자라서는 너희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갚아라.”
라고 항상 이야기해요.
제가 그 아이들에게 해준 것을 제게 갚는 것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다른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갚는 거죠. 그런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꿈이 있으시다면요.
제 개인적인 꿈은 영어공부를 하고 싶은 거에요. 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돈을 벌어야 하는 가정형편 때문에 일을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그 중에서도 영어를 잘 하고 싶었는데… 앞으로의 인생이 어찌 전개될지 누가 알겠어요. 언젠가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어로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요.
밝은지역아동센터의 희망의 징검다리가 되어주고 싶으신 후원자 분을 찾습니다!
여러분이 후원하신 현금이나 물품은 밝은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위한 학습지원, 금식지원,문화지원,정서지원, 가족 기능강화 및 생활복지 지원 등에 소중하게 쓰여집니다. 여러분의 정성어린 후원은 본 단체의 운영에 큰 밑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후원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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