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파우더룸. 당신의 하루는 늘 이곳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불청객들이 좁다란 그녀의 시공간을 메우고 있다. 일종의 의식처럼 매일 벌어지는 당신의 소소한 일상일 뿐인데, 손주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그것도 모자라 낯설고 이상한 이 의식에 저도 동참하듯 할머니의 행동을 따라 해본다. 훤히 드러난 갈비뼈처럼 자유롭고, 구불구불 주름 간 속옷처럼 불완전한 이 천진한 불청객의 호기심은 이날 할머니의 아침을 흐뭇하게 장식한 특종이 되어 아빠사진가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헌책방에서 요즘에는 보기 드문 시집을 하나 발견했다. 사진 속에서 이 아침을 다시 맞이할 때마다 생경하지만 의미 깊은 이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고기>
고기는 이상하다.
물 속에서 숨을 쉰다.
바로 그 점이 이상하다.
내가 1학년 때 1 학년 선생님한테 들었다.
사소할 것 같은 평범한 일상에 질문을 품은 이 시인의 결기, 어쩌면 바로 그 점이 내가 찾아 헤매는 이미지 속의 자아상 아니였을까.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시인은 지금쯤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나이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할머니의 파우더룸을 누비던 그날의 불청객은 이제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데…
궁금하다.
그들에게 오늘, 이상한 ‘바로 그 점’은 무엇일까.
촬영장소: 서울
고기: 경북 안동 대성국교 2학년 박주극 어린이의 시로 교육자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인 이오덕 선생이 엮은 시집 <나도 쓸모 있을걸>에 수록되어 있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 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