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즐겨먹는 고소한 땅콩. 이 땅콩에 숨겨진 비밀같은 이야기가 있다. 땅콩박사로 알려진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 박사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노예무역이 성행하던 1860 년대 미국에서는 대규모 목화를 경작하기 위해 엄청난 노예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노예를 먹여 살리기 위해 값싼 작물인 땅콩이 들어왔다. 목화를 더 재배하기 위해 노예가 더 필요했고, 아프리카에서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땅에 끌려온 흑인 노예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 목화밭에서 평생을 일만 해야했다.
그런데 이 목화의 저주를 끊은 사람이 바로 흑인 출신인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이다.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 흑인 부모 밑에서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폭도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와 조지 역시 폭도들에게 납치 되었다가 어머니는 어딘가로 팔려갔고 조지만 카버라는 백인 부부에 의해 구출이 되었다.
그러다 깊은 신앙심을 가진 한 선생님의 도움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고 결국 농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뛰어난 연구로 명성을 쌓아가던 중, 항상 마음 속에 있던 물음인 ‘불쌍한 흑인 동족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되었다.
흑인을 위한 학교를 세워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부커 교수에게서 온 편지를 읽다가 마음에 큰 감동을 받는다.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이나 지위, 명예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단념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하고 가난하여 버려질 운명에 처한 우리의 동족들을 위해 함께해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것입니다.”
앨라배마의 터스키지 학원에 농학부를 설치한 부커 교수는 카버 박사에게 자신과 함께 학교를 일으켜 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연구소는 커녕 실험 도구 하나 변변히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카버 박사는 이곳이 바로 자신이 가야할 곳임을 깨닫고 연구와 발명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의 남부지방은 목화로 유명했는데 목화씨 바구미라는 해충 때문에 목화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이 해충 때문에 수많은 농민들이 파산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카버 박사는 농민들에게 목화 대신에 땅콩을 심으라고 장려했다. 목화 재배는 땅의 질소를 뺏어가 황폐하게 만드는데 이때 목화밭에 땅콩을 심으면 땅이 회복되고 비옥해 지기 때문이었다.
땅콩은 공기 중이 질소를 빨아들여 저장해두기 때문에 가뭄이 와도 잘 견뎠고 땅에서도 아주 적은 양분만을 취하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농장마다 땅콩을 심기 시작했고 척박한 땅에서도 땅콩은 잘 자라주었지만 문제가 또 생기고 말았다. 바로 땅콩이 너무 풍작을 이루어 처치 곤란한 지경까지 이르른 것이다. 농민들의 하소연을 들은 카버 박사는 땅콩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땅콩을 연구한 끝에 땅콩버터, 비누, 기름, 사탕, 잉크, 물감, 접착제 연고 등 300여 가지의 땅콩으로 만들 수 있는 식품과 공산품을 발견해냈다. 결국 땅콩 농사는 목화 재배를 멈추게 만들었고 노예해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 중에 6위가 땅콩일 정도로 한 사람의 열정이 가져온 결과는 실로 대단하다.
그 많은 발견과 발명을 했지만 단 한가지도 특허를 받거나 이익 사업에 투자하지 않고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이 발견을 진정으로 나누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받은 것, 가진 것을 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방법을 찾고 나누는 것. 땅콩 하나로도 300여가지가 넘는 발명품이 나올 수 있었듯이 내가 가진 작은 것 하나를 나눌 때에 분명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그 무엇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글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