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다녀올 시기가 가까워지면 그곳에 사는 조카들을 만나는 시간이 무척 기다려진다. 작은 아빠인 나는 조카들을 만나면 이번엔 어떻게 웃겨볼까 생각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채우곤 한다. 웃음보가 터질 조카들을 상상하면, 이 기다림은 결코 지루한 시간이 아니다. 때로 농의 수위가 조금 높아질 때면 초등학생인 조카 찬영이는 쑥스러운 기색을 참지 못한다. 그래도 절대 나를 원망하는 법이 없다. 나의 농을 제대로 즐기는 셈이다.
“작은 아빤, 엉뚱해요!”라는 찬영이의 서슴없는 외침에 비로소 그와 나 사이의 수십 년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격의 없는 사이가 되곤 한다. 그보다 더 어린 조카들마저 영문도 모른 채 “작은 아빤, 엉뚱해요!”를 따라 외칠 땐 뭐랄까 이들과 한배를 탄듯 더없이 흐뭇한 마음이 든다.
사실 그 엉뚱함에 있어서는,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그의 소설에서 탄생시킨 주인공인 돈 키호테를 따라 갈 사람이 있을까. 소설이 출간된 지400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엉뚱함은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라고 외치던 돈 키호테. 그가 일으키는 사건 사고들 마다 부하이자 시종으로 함께 호흡을 맞추던 산초 판자와의 역학 관계는 소설의 대표적 이미지로 기억된다.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 사이에서 읽혀지는 사회적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이들이 초래한 어이없는 상황들을 더 난처하게 만들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푹푹 찌는 불볕 더위가 베이징의 골목을 달군다. 집집마다 일터로 나가려 채비하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진다. 사진 속 커플도 예외는 아니다. 옷가지를 챙기려 밖으로 나온 이 커플의 의심스러운 정체가 사뭇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를 떠오르게 한다.
이 골목에 만약 세르반테스가 있었다면, 이들 중 누가 돈 키호테고 누가 산초 판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이들은 오늘 하루 어떤 일들을 꾸미고 있는걸까. 어지간해서 져본 일이라곤 없을 것처럼 옹골진 체구의 사내와 눈치 하난 감히 빛의 속도에 버금갈 만큼 앙칼스런 그의 견공이 함께 헤쳐나갈 모험들이 기대된다.
촬영장소: 중국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