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가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던 때, 나도 어쩔 수 없이 일주일간의 휴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스개 소리로 이제 세상은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구분될 거 라고 했는데 그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거 같다. 이전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던 여행, 모임, 악수, 극장에서 영화보기, 격려의 의미의 허그, 한 사무실에 일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심지어 식당에서 밥먹기, 학교가기, 운동하기, 교회가기 등의 어떤 활동도 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참으로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삶의 모습이었다.
그 전에는 사실 식물을 키우는 것을 귀찮다고 생각했다. 일이 바쁘다, 이 몸 하나 돌보기도 힘든데 라는 핑계 하에 몇개의 식물을 무지개다리를 건너 보내기도 했는데 시간이 갑자기 생겼는데 나갈 수가 없다보니 자연스레 식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일주일, 나에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식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선물로 받기도 하고 본가에서 얻어 오기도 하고 내가 화원에 가서 구입하기도 했다. 팔손이, 뱅갈고무나무, 해피트리, 산세베리아, 스투키, 선인장들, 다육이들, 페페로니아, 만리향, 금전수 아이비들, 치자나무, 긴기아난, 애니시다 등이 내 방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는데 식물들은 다양한 생김새 만큼 다 좋아하는 것이 달랐다. 예를 들어, 필손이는 물을 좋아하지만 과습은 안된단다. (아, 이 까다로운 식물), 레몬향의 노란 꽃을 피우는 애니시다는 과습이 되어야만 살 수 있고, 스투키 같은 식물은 물을 몇 개월 동안 주지 말아야 하고, 해피트리는 매일 분무기로 물을 뿌려줘야 싱그럽고, 다육이는 햇빛을 봐야 잘 자라고, 아이비나 페페는 간접적으로 해를 봐야 하고, 난은 겨울엔 춥게 키워야 하고, 선인장은 덥게 키워야 한다.
어디서 플라스틱 화분이 안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갈이를 해주겠다며 다이소에 가서 분갈이 흙과 도자기로 된 화분을 사왔는데 이게 다 같은 흙으로 분갈이를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건 마사토라고 물빠짐이 좋은 흙을 깔아야 하고, 난 같은 식물은 흙이 아니라 바크라는 나무 껍질에 심어줘야 하고, 다육이는 다육이 전용 흙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집에 있는 식물들의 이름을 알고, 키우는 법을 알고, 좋아하는 것을 알고익히기 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물주는 날을 잊어버릴까봐 포스트잍으로 몇일만에 줘야하는지, 언제 줬는지까지 일일이 적어가벼 돌보다 보니 그렇게 휴직기간이 지나갔다.
어느 정신과 의시가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못 만나자 식물에게 말을 붙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괜찮다고 했다. 다만, 식물을 답을 하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웃었는데. 나 또한 매일 아침 일어나 그 애들을 돌보면서 이름을 불러주고 말도 붙여가며 살피는 것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각 식물을 알아가며 보살펴 주는 일이 마치 사람을 키우는 일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식물처럼 모두 다르다. 하나도 같은 사람이 없다. 다들 생김새가 다르듯 성격이 다르고 식성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되기를, 아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강요할 때가 있진 않은지 생각해본다.
신이 ‘다 같이 식물’이라고 한번에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김새나 취향이 다양한 식물을 만들어 준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그리고 다름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느끼라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달라서 힘든 것이 아니라 달라서 아름다운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것. 그것이 초보 플랜터가 느낀 작은 깨달음이다.
글. 김미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