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 그녀와 나는 미국 유학생 시절에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대학원 석사 과정 학생, 그녀는 남편의 석사 공부를 위해 함께 떠나온 갓난 아기의 엄마였다.
나는 그녀가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일년 남짓 교제의 시간이 지나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소위 한국의 명문대SKY중 한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을 통해 부장으로 십 여년을 일하다가 남편의 공부를 돕기 위해 부장 자리를 내려놓고 미국으로 온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가 회사에서 ‘부장님’이었을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작고 가녀린 ‘강윤이 엄마’는 내 친구이자, 동네 언니이자, 같은 육아동지였는데 ‘부장님’이라니! 그녀의 재발견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공공보건의 꿈을 펼치기 위해 다시 학교에 다니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의 졸업을 한 학기 남긴 시점에 그녀는 미국의 탑스쿨에 모두 합격했다. 하버드대, 미시건주립대, 존스홉킨스의 입학허가를 따낸 그녀는 원하던 공부를 하러 가족과 존스홉킨스로 떠났다.
우리는 공부와 육아, 가정 사이에서 힘들 때마다 서로를 격려해주었다. 그녀는 매일 동틀 무렵부터 밤하늘에 별이 반짝일때까지 공부에 집중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자신에게 그렇게 했듯이 집안일과 육아를 담당하며 아내의 공부를 내조했다.
그리고 공부한 지 일년도 되지 않아 그녀는 현재 미국의 유명 제약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중이다. 작은 체구에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그녀는 통찰력과 결단력이 뛰어나 맡겨진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수행해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더 좋은 조건으로 여러곳에서 제안이 들어온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가진 조건을 부러워 할 수도 있다.
한국의 최고 학교 SKY 출신
외국계 기업의 부장 역임
왠지 여유로울 것 같은 미국생활과 육아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학교 존스합킨스에서 석사공부
미국의 유명 제약회사 인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남편
이미 이 정도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면 내가 ‘무엇’이라도 된 듯 어깨가 들썩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부러워 해야 할 대목은 그녀의 외적 조건이 아니다.
이직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회사의 출신인 한 동료와 그녀는 최근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동료는 그 회사에서 출장이 너무 많아 아이를 못 본 날이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그 동료는 네가 지금 가장 힘든 날이 바로 그 회사에서 가장 편한 날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료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자신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삶의 우선순위를 희생해야 하는 것이 명백한 일이라면, 금전보상과 미래의 기회가 무슨 의미인고, 성공하면 무엇하리 하루하루의 평화를 잃으면.’
–소연
그녀의 삶의 우선 순위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그리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는 봉사의 시간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그 동료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에게서 우리가 부러워 해야 할 점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녀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고의 자리가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일상의 자잘함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지 못한 채 인생을 전력질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를 높은 자리에 앉혀줄 스펙이 아니라, 나에게 이미 주어진 축복을 알아보는 지혜로운 눈과 그 축복을 우선순위로 둘 줄 아는 평온한 마음이다. 그런 눈과 마음이 있다면 이미 최고의 보석을 얻은 셈이다.
Blessing, resting.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보석이 우리 모두의 삶에서 반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