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걷느냐일 것이다. 다른 이들 보기에 행복하고 평탄한 길을 걷는 것 같아도 외로움과 배신의 아픔으로 고통을 겪는 경우가 있는 반면 고되고 견디기 힘든 삶이어도 힘과 소망을 주는 누군가로 인해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은 외과의사인 박관태 선교사가 미지의 땅 몽골에 가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그분’의 인도하심과 행복한 동행을 생생히 기록한 책이다.
몽골에서 유명한 파김치
“파김치!” 는 몽골에서 박관태 선교사를 부르는 호칭이다. 파김치는 닥터 박 (Doctor Park) 이란 뜻의 몽골어로, 성인 ‘Park’에 의사를 뜻하는 ‘Emchi’가 붙어서 된 말이다. 일이 많아서 ‘파김치’가 될 정도로 바쁘게 진료 일정을 소화하던 그에게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의료사고가 찾아온다. 자칫하면 환자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그는 간절히 기도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
난생처음 해보는 수술을 기구도 없는 가운데서 시작했지만 말씀에 기록된 대로 평안가운데 수술을 마쳤다. 수술 후 담즙이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그는 환자와 함께 아침 저녁으로 기도하였는데 매일 500cc 나오던 담즙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박관태 선교사에게는 놀라운 은혜의 간증인 동시에 매 수술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부르심, 빼앗기지 않을 한 가지만 붙잡고 가라
집안 대대로 불교를 믿던 가정에서 태어난 박관태 선교사는 좋아하는 여학생을 따라 교회를 몰래 다니기 시작했다. 고3 수련회 때 예수님을 영접한 그에게 어느 날 선교를 향한 뜨거운 마음과 감격이 일어났다. 결국 ‘의료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여 재수 끝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어느 지역으로 나가야 할 지 기도하던 그에게 처음에 눈에 들어온 곳은 ‘북한’이었는데 지금 당장 들어갈 수 없어 품게 된 땅이 ‘몽골’이었다.
하나님은 약속은 주셨지만 어떻게 어디로 가라고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지 않았다. 믿음의 길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 그런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면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로마서 8장 25절은 이야기 한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나는 하나님이 나를 북한으로 부르셨음을 안다. 북한과 동일한 사회주의 배경을 가진 몽골에서 훈련받게 하시고, 향후 북한에 들어가서 일할 기회를 잡기에 용이한 장기이식을 공부하게 하신 것도 다 그날을 위한 것임을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언제쯤 북한 땅으로 보내실지 모르지만 그 날까지 참음으로 기다리고 신뢰하며 믿음의 길을 가련다.
로제타 홀, 그리고 친구 재학이의 죽음
박관태 선교사가 선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데 영감을 준 ‘로제타 홀’은 한국에 온 어떤 선교사보다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의료 선교사다. 의사였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과 함께 조선을 섬겼고 아들과 그의 아내 역시 의료 선교사로 조선 땅에 헌신했다. 그러나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은 맏아들이 돌을 맞는 해에 평양에서 환자들을 돌보다 병에 걸려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놀랍게도 로제타 홀은 남편이 사랑한 이 땅 조선으로 다시 돌아와 43년간 충성되게 사역했다.
박관태 선교사는 친구인 심재학 형제와 함께 로제타 홀을 연구하며 복음의 빚진 자 답게 이 땅에서 부르심을 좇아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이 시대가 원하는 연약한 자를 위한 의사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이런 그의 결심은 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희미해져간다. 고된 일정을 마치고 동료 선후배들과 갖게 된 술자리는 그를 점점 세상과 가까이하게 만들었고 선교에 대한 비전마저 희미해져 갔다. 그러던 중 절친이었던 재학에게 발병한 악성 림프종으로 박관태 선교사는 친구를 위해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 된다. 재학이 그에게 원한 건 딱 한가지, 친구가 자신을 대신해 선교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혼란 속에 몽골 아웃리치를 참여하며 박 선교사는 “저들을 위해서 누가 갈까. 나는 저들을 위해 너를 사용하고 싶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런 그의 영적인 회복을 누구보다 기뻐한 재학이었지만 끝내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관태야 미안해. 난 아무래도 함께 못 갈 것 같아. 내 몫까지 부탁한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재학이 너는 갈 수 있어. 걱정 하지 말고 힘내”
몸은 비록 떠났지만 재학이는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몽골에서 4년간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아산병원에서 일하게 됐는데, 좋은 병원에서 트레이닝을 받다보니 그 자리에 안주해 편하게 살고 싶고, 세상에서 더 유명해지고 싶은 유혹이 슬그머니 머리를 든 것이다. 그 때 흔들리는 나를 바로잡아 준 이도 재학이다.
처음에는 약속 때문에 의무감으로 선교사역을 했지만, 지금은 사역이 재미있고 좋으니까 한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언제나 재학이와의 약속,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로제타 홀이 고려대학 의대에 베푼 빚을 갚으려는 마음이 있다. 내가 로제타 홀의 후예라면 재학이는 나에게 윌리엄 제임스 홀과 같은 사람이다.
마르다에서 마리아로
몽골 아웃리치로 분명한 선교사로서의 비전을 확인한 박관태 선교사는 몽골어를 배우고, 복강경 수술을 준비하며 차근차근 선교지로 갈 준비를 해 나간다. 매일매일 전투와 같은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어렵게 가게 된 몽골 땅에서 열정을 다할 준비를 마친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신다. 도무지 그 음성을 이해할 수 없었던 때, 누가복음 10장 38-42절의 마르다, 마리아 이야기로 다시 한번 정확히 말씀하신다.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 10:41-42)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분주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그에게 이제는 빼앗기지 않을 단 한가지만 붙잡기를 원하는 분명한 음성에 그는 끝내 순종한다. 어떤 인정이 아니라 영원한 관계로의 초대에 순종한 것이다.
마르다는 분명히 선한 동기로 시작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 집에 방문했으니 해드리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음식접대가 아니라 그의 전인격을 원하셨던 것이다. 나도 마르다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으로 주님을 섬기려 했다. 내가 환자도 많이 고치고 의료 선교도 잘해서 주님께 한상 잘 차려 드릴 테니 주님은 잠자코 앉아서 내가 차려 주는 상이나 받으시면 됩니다, 이런 식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주님께 내 방식의 사랑을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 것을 깨닫는 순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주님은 참으로 오랜 시간 마르다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기다리신 것처럼 나를 기다려 주셨다.
수술을 예배로
몽골에서의 첫 6개월은 박관태 선교사와 하나님과의 데이트 시간이었다. 가벼운 치료 의뢰만 들어왔기에 QT와 기도훈련으로 ‘마리아’로서의 삶을 풍성히 누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몽골에서 사역하던 여자 선교사의 맹장수술을 계기로 본격적인 수술의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수술실도 없고 제대로 된 수술용 등도 없었지만 기도하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몽골 간호사가 아무것도 몰라 자신이 모든 걸 감당해야 했는데 이러다 보니 수술 전에도, 수술 중에도 끊임없이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 수술은 일도 사역도 아닌 예배였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닌, 그 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는 수술의 모든 순간은 예배나 다름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수술실도 없는 그 열악한 환경에서 수술을 했을까 싶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종족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간 것처럼, 나는 부족한 것들을 그때그때 채워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곳이 바로 예배의 현장이다. 그리고 나의 직업과 노력과 사역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서 하는 것이다.
첫 수술 이후 6개월은 수술실을 만들고 간호사를 훈련시키는 복강경 수술을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첫 복강경 수술 시도 때 뜻 밖에 마취사고가 일어났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이후 단 한번도 마취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박관태 선교사는 어려움을 당할 때 오히려 자신과 동료들의 믿음이 자라고 기다림의 끝에서 내 생각과 비교할 수 없는 그 분을 깊이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 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 43:19)
외과의사가 목회를?
몽골어가 익숙해진 후 박관태 선교사는 몽골의 현지인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그는 특별한 부르심에 마주하게 된다. 바로 생각지도 않았던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이었다. 수술방에서 늘 기도하던 그였지만 교회를 맡는 일은 그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참을 씨름하던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요한복음 21장 말씀으로 명확히 당신의 뜻을 들려주셨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부인할 수 없는 부르심에 순종한 그는 현지인 교회에서 매 주일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로 사역하게 된다. 목사도 아닌 평신도가 모국어도 아닌 몽골어로 설교하는 일이기에 뼈를 깎는 노력이 동반되었다. 그는 쓰임받기 위해 무조건 적인 은혜 뿐 아니라 준비된 자로 서 있기를 권면한다. 이후 그는 설교자 뿐 아니라 찬양인도자로 몽골 최초의 찬양집회를 섬기는 역사도 경험하게 된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실로 놀랍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셨는지, 결코 녹록치 않은 일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셨는지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병든 자와 약한 자를 고치셨다. 몽골에서 교회 사역과 의료 사역을 병행하면서 나는 어찌 보면 예수님의 사역에 가장 근접한 일을 경험하는 영광을 누린 것 같다. —- 인간적인 생각에서 보면 교회 사역하랴 병원 사역하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겠지만, 나는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하나님, 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거에요? 선교지에 와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후방 선교로 부르시다
몽골에서의 선교를 정리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박관태 선교사를 ‘후방 선교’로 부르셨다. 잠시 한국에 있다가 몽골로 갈 생각을 했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계셨다. 몽골로 가는 대신 의료선교의 필요가 있는 선교지에 가서 그가 경험한 노하우를 전수하게 된 것이다. 수 없이 시행한 복강경 수술, 교회, 경배와 찬양 사역, 소수민족 사역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선교에 대한 부담감으로 본인이 받은 월급에서 매년 돈을 아껴 수술 기계를 기증하고 현장에서 섬기는 일을 지속하였는데 돈이 없어서 한 해 쉬게 되었다. 그러던 그에게 뜻밖의 음성이 들린다.
“힘드냐? 당연히 힘들겠지. 그런데 말이다. 그 좋은 일을 왜 너 혼자만 하려고 하느냐? 왜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고 혼자만 움켜쥐고 있는 것이냐?”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내가 돈을 모아서 수술 기계를 사서 기증하고, 내 돈을 들여서 선교지에 가서 기술을 전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버겁긴 해도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내가 가진 재능(기술, 경험)을 나누면 되었다. 그러면 다른 누군가는 재정을 지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또 누군가는 중보로 후원하고 그러면 되는 것이었다.”
박관태 선교사는 자신을 향한 다음 단계의 부르심이 ‘후방선교’임을 깨닫고 현지선교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묵묵히 감당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 때가 되면 전방으로 나갈 준비를 하며 매일의 삶을 성실히 살아나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박관태 선교사를 이끌었던 ‘그 분의 손’을 묵상한다. 나의 계획과 열심을 넘어서 일하시지만 그것조차도 강제로 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주시며 깨닫게 하시는 그 분의 놀라운 계획을 찬양할 수 밖에 없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살아가지만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절대자의 인도하심이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려움없이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Blessing & Resting이 있는 삶을 꿈꾼다.
<인간극장 링크: https://youtu.be/RWouc-RoJcs>
<리틀빅히어로 링크: https://youtu.be/BHCh_M3Xmqo>
<CTS “내가 매일 기쁘게” 링크 : https://youtu.be/9chCYdbj2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