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너머 광장을 메운 인파 사이로 한 소년이 좌판을 들고 기웃거린다. 애써 시선을 던져보지만 그의 캐러멜을 사려는 사람은 없다. 마침내 한 노인이 그 소년을 불러 함께 있던 식구들의 돈을 합해 턱없이 비싼 캐러멜 한 개의 값을 치룬다. 그 노인은 새끼손가락 한마디 크기만 한 그 캐러멜을 조그만 휴대용 칼로 잘라 여섯 식구와 한 조각씩 나눠먹는다. 잠시 후, 이 광장에 있던 모든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기차에 오른다. 캐러멜을 팔던 그 소년까지도.
영화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이다. 2002년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계 유태인 피아니스트였던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직접 겪은 홀로코스트의 참상과 그의 기구한 일생을 다루고 있다. 노인과 함께 캐러멜 한 조각을 나누던 아들이 바로 스필만이다. 그의 가족이 그날 맛본 캐러멜이 일용할 양식이 되었든, 최후의 만찬이 되었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독식하지 않는 유태인의 굳은 결의가 진하게 느껴진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을 날마다 감내하는 한 남매가 있다. 오랜 세월 이어진 내전의 영향으로 부모를 잃고 생계수단이 전무한 우간다의 이 아이들은 병마와도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50대 초반을 넘기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남매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황폐한 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 될 지도 모르는 이 남매를 지켜온 것은 다름 아닌 ‘나눔’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누나의 품에서 나누는 입맞춤은 이들의 수고를 위로하는 양식이 된다. 곤비한 삶 가운데 서로를 위해 남매가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포개진 입술 사이로 스민 남매의 숨결은 마치 스필만의 입에서 녹던 한 조각의 캐러멜처럼 달콤했던 걸까. 그 부드러운 향기가 사진 밖으로 다습게 번진다.
촬영장소: 우간다. ‘아프리카의 진주’로 불릴 만큼 풍부한 자원과 빼어난 자연을 갖추었지만, 지속된 내전으로 인한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전 당시 6만여명의 아동들이 반군의 납치에 의해 소년병으로 동원되었고, 이들이 성적 학대까지 당하면서 HIV/AIDS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의 감염율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현재까지 우간다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들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 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