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샬롯(Charlotte)이라는 도시에 방문한 적이 있다. 샬롯은 세계 3대 자동차 경주대회로 꼽히는 나스카(NASCAR, 미국 개조 자동차 경기 연맹)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도착 이튿날 그곳에 사는 지인의 추천으로 경기장을 구경하러 갔는데, 대회 일정이 없는 날이면 나와 같은 방문객은 나스카에서 제공한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경기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나스카의 발자취와 자동차 경주 문화를 엿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서비스의 하이라이트는 뭐니해도 승합차에 탑승한 채 최대 33도까지 옆으로 기울어진 경기장의 트랙을 전속력으로 달려보는 체험이다. 더구나 이 체험이 나의 가슴을 더 설레게 한 이유는 그토록 신나게 승합차의 가속패달을 밟던 가이드가 당시 칠순을 앞둔 우리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이 가이드는 반세기 전 경기장이 지어진 초창기부터 입장권을 판매하는 창구에서 일하다 노년에 이르러 은퇴한 뒤 줄곧 이 일을 맡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속 150km에 달하는 속도로 차를 몰면서도 태연하게 이 경기장에서 활약한 카레이서들의 성공과 실패에 얽힌 사연들로 입담을 뽐내던 그녀는 마치 나스카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행여 가이드의 꿈은 카레이서 아니었을까. 그날 거침없이 트랙을 달리던 가이드의 카리스마 넘치는 운전솜씨는 여전히 내게 의심의 여지를 남긴다. 수많은 입장권을 팔았을 창구 너머 펼쳐진 트랙에서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차례를 꿈꿔왔는지도 모른다. 일생을 기다려 그곳을 맘껏 달릴 수 있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으니, 세상에 그녀만큼 간절하게 꿈을 이룬 카레이서도 없을 것 같다.
샬롯에 다녀온 지 한참 후 중국 베이징의 한 골목에서 그 간절함을 떠올린 한 영혼을 만났다. 표정에 가득 담긴 호기심은 유모차에 앉은 이 작은 영혼의 매력일 것이다. 그 호기심은 딱 그가 세상을 산 날 만큼 본능에 충실해 보인다. 그런 그에게도 꿈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저 신기한 세상을 맛보고 싶다는! 그러나 꿈은 종종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그 기다림이 저마다의 삶에 잠시가 되기도 하고 일생이 되기도 하지만 진리는 하나라고 믿는다. 꿈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고.
촬영장소: 베이징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