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삽질 정신’, ‘기획의 정석’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공모전 23관왕 대상의 신화를 쓴 공모전의 여왕 박신영씨를 비앤알 매거진에 만났다. 제일기획의 광고기획자에서 기획 강사로 제 2의 인생을 개척한 그녀의 비앤알 스토리를 만나보자.
Q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저는 ‘기획스쿨’이라는 회사에서 기업체에 기획서와 보고서 쓰는 법을 알려드 리는 일을 하고 있는 박신영입니다. 매일 다른 회사로 강의하러 출근을 하고 있죠. 그리고 현재는 남편과 함께 두살 된 딸의 육아에 빠져 헤매고 있답니다.
공모전의 여왕이 되다
Q 박신영씨 하면 여러 개 타이틀이 생각나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는건 ‘공모전의 여왕’인데 어떤 계기로 공모전(광고)에 입문하게 되셨나요?
저희 학교인 한동대가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포항 시골에 있어서 밖에서 뭔가 할게 없었어요. 그래서 동아리에라도 들어가려고 가고 싶었던 동아리 시험을 네 군데를 봤는데 계속 떨어지는 거에요. 입학 시험보다 동아리 시험이 더 통과하기 어려워요. (웃음) 밖에서 할 게 없고 학교 안에서 뭔가를 해야 하니까 동아리 시험이 너무 치열했던 거 같아요.
그 때 친구가 시험이 없는’ 광고학회 동아리’를 추천해 줬어요. 저를 받아준 그곳이 너무 감사했어요. 아마 그냥 처음부터 그 동아리에 들어갔으면 감사함이 없었을 거에요. 4번의 거절감을 느낀 후 들어간 거라 감사함이 컸는데 거기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다들 공모전 얘기를 하는 거에요. 나를 받아준 고마움이 너무 커서 아이디어를 20개씩 생각해 가곤 했어요.
선배들이 말하는 것 중에서 못 알아 듣는 용어들을 다 검색해 가면서 열심히 했는데 알면 알수록 제가 광고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학년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그리고 친구네 학교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어요
Q 그럼 책을 읽기 위해 휴학을 한 거네요?
그건 아니고 휴학을 하고 친구 집에 놀러갔는 데 친구네 도서관이 우리 학교 도서관과는 비교도 안되게 좋은 거에요. 그 학교가 바로 전해에 새로 도서관을 지은 터라 책이 많았어요. 반년 동안 하루 세 네 권 씩 책을 읽으면서 경영학 분야를 탐독하다 심리학 책도 읽다가 인지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동화책까지 읽으면서 돌고 돌면서 계속 책을 읽었죠.
지나고 보니 제일기획과 엘지에드(AD)의 대상을 받고 받고 하는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때는 깨달음을 얻으려고 책을 읽었던 건 아니었어요. 친구들은 어학연수도 가고 토익 시험도 보면서 실질적인 스펙을 쌓고 있을 때 저는 책을 읽었죠. 사실 책은 바로 결과물이 나오는게 아니라 어떤 날은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제 스스로 마음의 싸움이 컸던 것 같아요.
불확실성과 싸우는게 힘들었어요. 그렇게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3학년으로 복학했고 그 때부터 공모전을 시작했어요.
Q 경험도 없는 사람이 공모전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무모한 거 같기도 한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처음에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공모전을 시작했어요. 아마 제가 부유한 집안이었다면 이런 능력을 갖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이 갖고 싶거나 필요할 때 공모전의 상금이나 상품으로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엄마 아빠가 안사주신다면 ‘공모전에 당선되야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책을 읽는게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싶을 수도 있는데 제가 책을 쓰면서 느낀 건 사람이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 한권의 책이 나오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책을 쓰시는 분들이 각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결과물을 두 세시간 만에 흡수 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읽는 사람의 두려움이 무언인지 파악해라
Q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비결이나 훈련법이 있을까요?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잘 안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상대방 중심으로 쓰기’예요. 보통 공모전은 1차 제안서는 실무자가 심사하고 2차는 교수님들이 심사해요. 저는 무조건 1차는 심사하는 사람들 한테 맞추어 쓰거든요.
좋은 제안서나 보고서는 내용에 핵심이 들어가 있어도 듣는 사람의 두려움과 싸우는게 관건이에요. 교수님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이것이 학문적으로 맞는지, 증명 자료가 있는지 이고, 실무자들의 두려움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인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어 쓰는 것이죠. 결국은 제안서를 쓸 때 읽는 사람의 두려움의 질문들을 아는 것이 중요해요. 두려움의 질문 리스트들을 중간중간 소제목으로 넣어서 상호교류적인 대화들을 이끌어내는 거에요.
그 두려움을 파악하는 데는 심리학 책을 많이 읽은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인간은 직관적이지만 직관적인 것들만 보여주면 불안함이 올라오고, 너무 이론적으로만 하면 너무 학문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좌뇌적인 정리와 우뇌적인 감성의 부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Q 크리스천이신데 어렸을 때부터 신앙이 있으셨나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아빠가 목사님이세요. 그러다 보니 신앙이란 것이 마치 배고프지 않은데 뭔가를 계속 먹는 느낌이었어요. 배고픔을 알아야 음식의 고마움을 아는데 자랄 때는 그 고마움을 몰랐던 것 같아요. 주일날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부터 저녁까지 계속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어요.
몸이 너무 아파도 피아노를 쳐야 했던 것이 저에게는 상처였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농촌교회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교회생활의 즐거움은 없이 그냥 봉사만 한 거예요.
한동대에 가서도 공모전 준비하느라 상 받게 해달라고만 기도했던 것 같아요. 학교 마치고 서울에 와서는 회사 생활하느라 또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하고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았어요
그러던 중에 선배에게 전도를 당했어요. 교회에서 새신자반 7주 과정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그 때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자훈련을 받았고 제 인생의 가치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Q 예를 들면, 어떤 부분이 바뀌었을까요?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저는 너무 달라요. 남편이 참 멋있는 사람인데 세상적인 눈으로 판단하고 지적하고, 사실 저희 남편이 옷에 신경을 안쓰는 스타일이거든요. 한번은 제가 남편이 잘못입는다고 운 적도 있었어요. (웃음)
그러다가 어느 날 주일 아침에 눈을 떴는데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에요. ‘겉을 꾸미지 않아도 영혼이 아름다운 남자 친구를 내가 가진 세상의 눈으로 판단하는가’ 하는 마음이었어요.
예전의 저에게는 없던 마음이죠. 그렇게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조금씩 달리 보기 시작했어요.
쉼이 없이 달리는 회사생활에 작별을 고하다
Q 다시 돌아가서 회사(제일기획)에 입사하고 나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졸업하고는 바로 제일기획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 일을 시작했어요. 거기서도 매일 기획서 쓰고 브랜드 전략을 짜고 했어요.
제가 기획서 쓰는 걸로 제일기획 2년연속 대상을 받았었거든요. 영어기획서도 상을 받는 등 제일기획 공모전에서 6개 정도 상을 받은 경력이 있어서 서류심사를 받지 않고 입사를 했어요.
보통은 기획서 쓰는 일을 신입에게 시키지 않는데 제일기획 공모전에 당선이 되고 들어갔더니 입사 둘째 날 부터 밤을 새며 기획서를 써야 했어요. 신입이 해야 할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저는 계속 경쟁 피티(PT)에 들어갔어요.
3년 동안 팀이 9번 바뀌었는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면,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잠시 쉬고 다른 프로젝트에 들어가야 하는데 쉬는 기간이 없이 계속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어서 거든요. 프로젝트가 있는 팀으로 계속 넘어가는 거죠. 이건 단순히 ‘일이 많다’의 개념이 아니고 ‘이직의 개념’과 비슷해요. 다른 팀에서 다른 팀장님과 다른 브랜드를 만나는 거니까요.
저녁에 집에 들어가 본 게 입사 4년차 때였어요. 계속 새벽이나 아침에 집에 들어 갔었거든요.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다 몸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어느 날 심전도 검사를 했더니 ‘일시적인 심장이상’ 그래프가 나오더라구요. 아무래도 여기를 그만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그만뒀어요.
Q 정말 과로와 스트레스가 심했나 보네요. 그래서 강의를 하게 되신 건가요?
아마 심장이상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제가 처음 썼던 책 제목이 ‘삽질정신’ 인데 삽질은 ‘깊고 넓게 판다’라는 의미거든요. 대충대충 겉만 파면 흔적이 없으니 무언가 주어지면 깊고 넓게 파야한다 라는 뜻이 있어요.
공모전에서 23관왕을 한 것이 처음 대상 받았을 때는 이건 우연일 수 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또 도전을 했고 그 다음에 대상 받았을 땐 이 기업 스타일에 내가 맞았던 것일 수 있다 라는 생각으로 했고 그렇게 계속 도전하게 된 거죠. 그렇게 도전하는 것이 좋은 면도 있지만 둔해서 였을 수도 있어요. 제 성격이 끝까지 가봐야 그만둘 수 있거든요. 아마 다른 병이었으면 그만두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만두고 나서 교육브랜딩에 관심이 생겨서 교육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갑자기 그런 곳에 가냐고 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30대에 심장문제가 올 수도 있다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그곳에 있고 싶진 않았어요.
‘삽질정신’이라는 책은 학생 때 쓰고 제일기획에 들어가자마자 출판을 한 책이예요. 그 책은 제가 어떻게 맨땅에 헤딩하면서 공모전에 당선 됐는가 하는 내용이다 보니까 제일 기획에 있을 때부터 기획쪽 강의 의뢰가 많이 왔는데 제일기획 관계사에서 요청이 와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 강의를 들어가면 저 사람은 잘하겠다 저 사람은 큰일났네 이런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4일의 강의가 끝나고 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와요. 잘하겠다 싶었던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걸 알고 안주해서 89점 짜리만 만들어요. 큰일났다 했던 분들 중에 어떤 분은 180점 짜리를 만들어요. 물론 정말 그냥 큰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요.(웃음) 그렇게 예상과 반대의 경우를 많이 보다 보니까 강의를 하면서 인간의 잠재력에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2014년에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시간을 조금 탄력 있게 사용하고 싶어서 이전에 있던 회사도 너무 좋은 회사였지만 지금의 회사로 옮기게 되었어요. 지금은 ‘기획의 정석’, ‘한장보고서의 정석’, ‘제안서의 정석’ 이렇게 쓰고 있어요. 기획서와 관련된 교재를 쓰고 있는 것이죠.
인생에 버려지는 것은 없다
Q 자신의 진로나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나 조언이 있을까요?
사실 저도 가끔은 어느 정도까지 하는게 최선인지 헛갈려요. 일만 하다가 몸이 너무 안좋아졌었는데 그렇게 까지 일을 하는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이 힘들긴 해도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한 것 중에 어떤 것도 무의미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 다닐 때 단편영화 만드는 일도 해봤고, 디자인 전산전자 수업도 듣고 했던 것이 무의미 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다 나중에 도움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의 삽질을 응원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제가 이쪽 일로 옮길 때 많이 들었던 말이 왜 주류에서 비주류로 가냐 하는 말이었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요즘 ‘스타트 업(소규모 벤쳐 창업)’이 대세인 때인데 아직도 대기업에서 소모품같은 일을 하고 있냐 하는 사람도 있었죠.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은 어차피 상대적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도 없는 거예요. 제가 했던 모든 일들에 응원만 받았던 일은 없었어요. 어떤 일이든 절대량을 채워야 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말고 삽질처럼 보이는 일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삶을 통해 이루고 싶은 비전이나 사명이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계획을 안세우는 스타일이에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뭔가 새로운 것들에 연결이 되더라구요. 계획이 무의미할 때가 더 많아요. 사실 그게 더 욕심이 많은 것일 수도 있는데 인간은 계획을 해 봤자 아는 만큼 밖에 계획하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제 계획보다 하나님 계획이 훨씬 낫다는 것을 제가 인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제 계획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획을 안세우는 것도 있어요. 크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 보다 매일 아침 묵상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제겐 더 중요한 거 같아요.
글 김정아,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