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 광장 곳곳에 흩어져있던 사진가들의 촉수가 일제히 발자국 소리를 따라 예민해진다. 셔터 버튼 주위를 맴돌던 내 검지손가락의 끝자락도 언제든 힘이 들어갈 기세로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시야에 나타나길 기다린다.
특종이 될 만한 소재를 되레 평범한 일상처럼 만나게 되는 곳, 이곳은 바로 뉴욕 패션위크(Fashion Week) 현장이다. 차고 넘치는 아이디어와 감성으로 무장한 세계 각국의 멋쟁이들은 이곳을 향한 대중의 시선에 쾌감을 더한다.
타고난 심미안을 가진 이 멋쟁이들은 저마다 독창적인 스타일을 선보이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핏fit을 고집하고 강박적으로 자신의 차림새에 집착한다. 그러나 수년간 이들의 매력을 사진에 담아온 나는 더 이상 이들의 몸에 걸친 것들이 어느 디자이너의 신상이라든지, 또는 다음 계절엔 무엇이 유행이 될 것인지 구별하는 정도의 촉으로 특종을 노리는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런 멋쟁이들의 까탈스런 취향과 계산적인 안목에도 어딘가 흠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발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때로는나에겐 이들의 흠에서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완벽주의 성향의 이면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엿보는 것만큼 패션위크에서 더 흥미로운 특종이 없다. 광장에서 사진가들이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인 그녀의 빈틈없는 스타일에 주목하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이 그녀가 신은 하이힐, 하필 그것도 밑창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네, 신발 좀 벗어보게.”
동료 사진가인 알렉스 웹(Alex Webb)을 만난 요세프 쿠델카(Josef Koudelka)는 웹이 거둔 사진적 성과에 대한 평을 시작하기 전 돌연 그가 신고 있던 신발 밑창 부터 보자고 했단다. 체코 출신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거장인 쿠델카의 눈에 설마 동료의 신발이 사진보다 탐났던 것일까? 그 이유를 들어보니, 완벽한 사진을 건지기 위해 이 사진가가 얼마나 발품을 팔았는지 쿠델카는 신발 밑창의 닳은 흔적을 보고 그 실력을 가늠한다는 것이다.
39달러 99센트. 멋에 더하고 싶은 자신감만큼 중력을 거슬러 신은 하이힐에 그녀가 지불한 값인데, 미처 가격표를 떼지 않은 부주의로 멋쟁이들 사이서 치를 혹독한 댓가가 더 커 보인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도 그녀가 책임질 몫인 걸. 그나마 이 순간이 나에겐 특종으로 다가왔으니 그 몫은 헛되지 않은듯싶다. 그녀가 미리 쿠델카를 알았더라면, 그리고 발품을 팔아 먼 길이라도 돌아 왔더라면, 나에겐 이마저의 행운도 없었을 테니!
촬영장소: 뉴욕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