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내의 한 체육관 외벽에 M사의 스마트폰 광고물이 설치되었다. 우리 부부가 장만한 첫 스마트폰도 같은 M사에서 출시한 모델이었는데, 당시 나의 괜한 고집으로 아내마저 함께 골랐던 그 스마트폰의 성능은 사실 무척 실망스러웠다. 아내의 타박으로 그 스마트폰을 헐값에 처분했던 씁쓸한 기억이 그 외벽을 덮은 광고물을 마주칠 때마다 떠오르곤 한다.
그러고보니 지금 사용하고 있는 A사에서 나온 스마트폰은 올해로 첫 제품이 출시된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거듭 성능을 높여온 이들의 쓰임새가 지난 10년간 우리네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바꾼 점은 분명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일처리를 손바닥 안에서 해결하는 편한 세상이 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필요 이상의 장치들로 인해 따스한 인간미를 잃어가는 아쉬움도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2012년 가을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사의 스마트폰 중 새로운 모델이 미국에서 출시될 무렵 나는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창 세상의 이목이 이 제품에 쏠리고 있을 때, 케냐의 마사이족 마을에 머물던 나는 촬영을 위해 나선 길에서 마주친 한 남자가 신고 있던 신발이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폭신하게 길든 그의 신발은 실제 폐타이어를 잘라서 만든 수제화였는데 마치 장인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듯 폐타이어의 모양과 쓰임새가 새롭게 태어났다.
수제화의 닳고닳은 밑창에서 흙먼지로 불그스레 물들어가는 그의 발을 섬겨온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애매한 스마트폰의 세상에서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 있는 나의 모습과 달리, 수명을 다한 하찮은 물건까지도 지혜를 더해 살아가는 마사이 남자의 고매한 안목을 신발에서 엿본다. 가장 낮은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쓸모있게 다시 태어난 이 겸손한 수제화야말로, 누군가 한 번쯤 주목할 만한 ‘스마트’한 물건이 아닐런지.
촬영장소:
케냐. 43개의 부족이 함께 살며 이들 중 케냐와와 탄자니아 국경지대를 장악하고 있는 마사이족은 케냐를 상징할 만큼 그 위상이 가장 높다. 그러나 이들의 세력과 정체성은 점차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부족들처럼 외부의 간섭과 내부의 변화로 쇠퇴하고 있으며 마사이족의 전통문화도 사라져가고 있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