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데이터(Data) 쓰면 안 돼~ 절대로!”
“얘, 너 데이터 엄청 많잖아. 엄마 꺼 지금 안되니까 네 꺼 좀 쓰자”
지난 여름 집에서 가까운 바닷가를 찾아 산책을 하던 중 귓가를 스친 한 모녀의 대화 중 일부다. 다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어찌나 태연하게 데이터란 용어를 쓰던지 내심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하긴 게임을 좋아하는 내 조카들도 만날 때마다 그놈의 데이터란 것이 다 소진되었다며 늘 울상이고, 날마다 ‘일용할 데이터’를 아껴쓰겠노라 다짐한 중학생 딸과 그녀의 친구들은 가는 곳마다 동냥하듯 무료 와이파이(Wi-Fi) 망부터 있는지 살펴보기 일쑤다. 나 역시도 문득 ‘고객님의 데이터가 ㅇㅇMB 남았습니다’란 문자를 받으면 행여 세상과 단절이라도 될까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란 아마도 ‘전산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는 형태로 기호화하거나 숫자화한 자료’라는 사전적 의미에 가까울 것 같다. 내가 이 용어를 접한건 80년대 후반 초등학교에서 처음 컴퓨터를 배웠을 때다. 영어의 알파벳도 잘 모르던 시절 투박한 컴퓨터 모니터의 검은 바탕화면에 암호처럼 알파벳과 기호를 조합해 자판으로 입력하곤 했다. 요즘으로 치면 코딩 같은 수업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수업을 무척 재밌고 진지하게 여겼지만 나는 ‘데이터’라고 하는 이 기계적 언어가 낯설고 불친절하게 느껴져 끝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훗날 누군가가 당시에 배운 컴퓨터 수업이 ‘MS-DOS’ 시절이라고 나에게 귀뜸해 줬지만 여전히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은 대개 그때를 가리켜 화면이 시커멓던 시절이라고 말하면 쉽게 알아들으리라.
세월이 흘러 언젠가부터 데이터란 것은 많은 이들의 생활 속에서 일상적인 용어이자 친밀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 그사이 시커멓던 바탕화면도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보기 좋게 설정할 수 있게 되었고 굳이 컴퓨터 언어를 익히지 않아도 손끝의 터치로 무궁무진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데이터를 통해 접하는 가상의 현실에서 세상을 알아간다. 그 가상의 현실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가치를 배우기도 하고 유익한 경험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데이터가 없는 세상은 시시한 하루일 뿐이라고 쉽게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어른들은 바깥 세상을 등지는 이런 아이들을 나무라기도 하지만, 도리어 아이들은 어른들이 데이터에 의존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놓고선 뒤늦게 아이들의 삶의 방식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며 서운해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데이터를 누리며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키르키즈스탄의 한 난민촌에서 만난 아이들의 세상엔 그놈의 데이터라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하루가 시시하지도 않았다. 절망의 벼랑에 내몰린 이 공동체는 모든게 모자르고 남루했지만 아이들의 눈빛은 빛났고 이들의 웃음은 해맑았다. 와이파이는 커녕 전기조차 구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때로는 쓰다 버린 운동화 끈이 아이들의 놀이에 사용되어 서로를 이어주고 묶어주는, 굳이 비교하자면 일종의 데이터 같은 연결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이 끈을 손에 붙잡고, 허리에 메고, 그리고 발로 뛰면서 난민촌의 아이들은 그 해 5월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촬영장소: 키르키즈스탄. 이웃나라인 타지키스탄에서 자국민을 제외한 모든 민족들을 강제 추방하면서 키르키즈스탄에 이들을 위한 난민촌이 형성되었다. 이곳의 난민들은 최하위 저소득 계층으로 생계 유지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