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막내 딸 아만다를 포함해 네 자녀를 모두 홈스쿨링으로 교육한 노옴 웨이크필드(Norm Wakefield) 목사는 저명한 기독교상담가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족사역에 초점을 맞춰 부모들에게 부부관계와 자녀교육에 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1월에 한국을 방문한 노옴 웨이크 필드 목사를 만나 그의 삶의 B&R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목사님, 간단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미국 텍사스의 벌버드에 살고 있는 노옴 웨이크필드 목사입니다. 현재 엘리야 미니스트리리의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4명의 자녀를 둔 아빠이자 16명의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입니다.
Q: 아이 양육과 가정 사역을 주로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제 아내 알마와 전 16살, 고등학생 시절에 만났어요. 우리 교회의 고등부 모임에서 알마를 보고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알마를 처음 만날 날부터 그녀에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정열적인 눈길을 보내면서 온갖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녀와 가까워지고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제가 알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주길 바랬어요.
하지만 사실 전, 알마가 저를 기쁘게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그런 행동을 했던 거죠. 알마는 제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딸이었는데, 알마와 데이트를 한다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영적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인식시키고 싶었던 거 같아요. 알마는 저를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여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알마를 원했던 이유는 그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어요. 물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녀 또한 자신만의 백마탄 기사를 찾아 다녔고, 저를 적임자라고 여겼어요. 알마를 제가 원하는 형상으로 만들어가는 조각 작업이 끝나자 제 아내가 저를 조각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죠.
Q: 조각 작업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모습으로 배우자를 조각한다는 뜻인가요?
네. 상대방을 위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거에요. 예를 들면 알마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하고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4년 동안 꾸준히 만났고,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짝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똑같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행복했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실체를 보게 되었어요. 전 결혼을 통해 제 아내가 저에게 행복과 안락함을 줄거라 생각했는데, 그녀 역시 저에게 같은걸 바라고 있었던 거예요. 서로에게 바라기만 했던 거에요.
서로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긍정적인 조각 도구는 우리의 결혼 생활을 파경으로 몰아가고 있었어요.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조종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거죠. 그런데 긍정적인 조각 도구로 상대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부정적인 조각 도구를 사용하기도 해요. 부정적인 조각 도구를 쓰면 일시적으로 상대방을 조각할 수 있거든요.
Q: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분노의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아내와 자녀를 조각하고자 불같이 화를 내고 뛰쳐나가는 부정적인 조각도구를 쓰기도 해요. 그의 폭발하는 분노는 가족들을 조종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려는 거죠. 그러다가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이 기대한 바대로 행동하면 이내 곧 화가 풀리지만, 죄책감은 남게 되고 그 죄책감은 가정 안에 많은 불화를 가져오게 되죠.
Q: 그렇다면 가정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각 행위는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우선 조각 행위를 하는 대상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상대를 조종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지 깨달아야 해요. 우리 부부의 근본적인 문제도 서로를 숭배한다는 점 이었어요. 서로 상대방이 행복과 안락함을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능력까지 서로에게 허용해버린 것이죠. 상대에게 모든 것을 준 상태가 바로 숭배거든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누군가를 찾아 다니는 것은, 누군가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위치로 그 사람을 올려놓는 것이예요. 만약 나의 긍정적인 조각 행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우리는 마냥 기뻐해요. 하지만 우리의 우상이 더 이상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면서 더욱 숭배 받고 섬김 받기를 요구하면 부정적인 조각 행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상대를 무시해버리고, 만약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면 그것을 당연시하고 합리화해버리는 것이예요.
Q: 그렇다면 목사님의 가정은 어떻게 회복을 경험하셨나요?
저희는 서로가 우상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죄를 고백했어요. 그 후에 결혼생활에서 놀라운 회복을 경험했죠. 저희 부부는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에요. 세상적인 방법으로 내 안에 우상을 만들고 그 모습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죠. 자녀들도 저희에게 숭배의 대상이긴 마찬가지였어요. 저희 부부가 가지고 있던 자녀들에 대한 우상 숭배적 기대감을 아이들에게 고백하고, 함께 기도했을 때 우리의 죄로 인해 생겼던 상처는 회복되었고 서로를 새롭게 사랑하게 되었어요. 이 과정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어야 해요.
Q: 목사님의 네 자녀 중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막내 딸 아만다(Amanda)와도 회복을 경험하는 시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네. 아만다가 갓 태어났을 때 사실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기다렸는데, 이 아이의 존재는 저희에게 실망과 무기력감을 안겨줬어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길 바랬던 제 모습이 지금도 부끄러워요. 하지만 아만다를 통해 제가 얼마나 사랑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어요.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사랑받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에요.
Q: 사랑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 제가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전 늘 무언가를 얻었을 때 감사했어요. 그래서 제 딸 아만다가 태어났을 때,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했죠.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제 모습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제가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사랑을 시도할 수 있음에 감사했어요. 하나님께서 ‘다시 감사하라’라는 마음을 주셨거든요.
사실 힘든 상황이 감사로 이어지는 건 간단한 과정은 아니에요. 먼저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신뢰해야 해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해도 하나님의 방식을 신뢰할 수 있거든요.
Q: 아만다가 태어났을 때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내도 많이 놀랐고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어요. 새벽에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하나님께 “제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길 원하시나요?” 라고 물었다고 해요. 하나님께서는 “네가 아만다를 사랑하는 모든 순간이 나를 사랑하는 순간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 후로 아내는 아만다를 양육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을 평생의 말씀으로 새기고 있어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기 원하였으니, 너희에게 보낸 아만다를 사랑하라. 그럼 그게 나에게 베푼 사랑이다.”라는 마음을 주셨죠.
이건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니에요. 누구든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이를 만나든지,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상대방을 선물 같은 존재로 여길 수 있게 되죠.
Q: 장애인을 양육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장애아를 양육하는 한국의 부모님들께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관점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아이를 양육하며 저희 네 자녀 모두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아이들 모두가 다 자기만의 장애와 자기만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제 막내딸 아만다는 ‘다운증후군’이라는 눈에 보이는 장애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가끔은 부모에겐 눈에 보이는 장애보다 바로 보이지 않는 장애가 더 어려운 양육환경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가치를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가 없는가’ 로 결정해요. 하지만 한 사람의 가치는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로 결정되지 않아요.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에 장애가 없는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불편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우리 삶과 우리 가정이 평범하길 원하죠. 그것이 우리의 가정생활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니까요. 때로는 평범하다는 사실 때문에 안도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내 자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내가 이 아이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죠.
Q: 많은 부모님들이 그런 죄책감에 고통스러워 하실 것 같아요.
한 가정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예요. 어떤 아이는 더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떤 종류의 장애를 가졌든 그 아이의 가치는 나라는 사람이 그 아이를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내 안의 변화’에 달려 있어요. 평범하거나 혹은 무엇이든 잘 하는 자녀를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죠.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결핍이 있고 장애가 있는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그 아이의 삶에도 부모의 삶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일입니다. 오히려 그 아이들이 가정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죠. 축복이 다른 모습으로 숨겨져 있는 것이에요.
Q: 목사님께서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세요?
세상은 유용성에 따라 사물과 사람의 가치를 매깁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한다’의 의미는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제공해 준다는 뜻인거죠.
예를 들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이 “나는 내 차를 사랑해”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은 그 차를 통해 얻게 될 유익을 알기 때문이고, 혹은 차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가 돋보이게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예요.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고물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면, 자신의 차를 그다지 애정 어린 태도로 대하지 않을 거예요.
세상의 생각으로는 한 남자가 자기 아내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아내가 언제나 남편이 원하는 일을 하고, 또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그것을 해준다는 의미일 거에요. 아내가 남편을 행복하게 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한, 아내는 남편에게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 동전의 양면처럼, 어떤 이는 반대로 자신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대상을 향해 ‘증오’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지요.
아내는 남편이나 자녀들이 자기 바람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증오하기도 합니다. 보통 이러한 증오심은 오랜 기간을 걸쳐 생성되는데, 그 기본 개념은 결국 모두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것에 집중되어 있어요. 바로 나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죠.
하지만 한 사람의 가치는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이유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적’으로 사랑하지 않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랬다면 나는 그분에게 얼마나 쓸모 없는 존재였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를 통해 무언가를 채움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없이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순수하게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며 그 사랑으로 내가 채워지는 것이 감사하죠.
사랑의 중심은 내가 아닌, 그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며, 가족의 달 5월에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생각나게 해준 인터뷰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익이 아니라 이해와 감사가 넘치는 가정이 많아지길 소망해본다.
글, 안영, 정주희
사진, 김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