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you have me. 너에겐 내가 있단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 영화 <원더>에서 어기의 누나인 ‘비아’를 위로하는 할머니의 대사 한마디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마다 주연과 조연을 서로 돌아가며 맡는 구성이 특징이다.
언뜻 보기엔 어기가 주인공 같지만 실은 그를 둘러싼 모두가 영화의 주인공인 셈이다. 그래서 비아의 부모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 심지어 관객의 눈에서 멀어진 한낱 조연에 불과한 비아의 삶도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깊은 외로움과 상실감에 젖은 비아에게 든든한 ‘빽’이 되어주던 할머니, 그의 짤막한 이 대사 한마디가 그 소중함에 무게를 더한다. 어쩌면 이 대사는 지금 우리 모두를 향한 위로가 아닐까… 그래서 두고두고 이 장면이 눈에 밟힌다.
우리 가족이 살던 뉴욕의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않은 코니 아일랜드의 한 바닷가였을 비아와 할머니의 다정한 대화 장면은 마치 우리집 딸이 그토록 닮고 싶고 따르고 싶은 그녀의 할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단언컨대, 딸에게 있어서도 할머니의 존재는 언제나 0순위다. 그 비밀은 이 두 사람 말고는 알 수가 없지만, 이 영광을 독차지하는 할머니의 기쁨을 바라보는 것 또한 온 가족의 즐거움이다.
몇 해 전 여름, 할머니의 귀국을 앞두고 뉴욕에서 남겼던 사진 한 장엔 그 날의 여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딸아이의 서툰 솜씨로 알록달록 꾸민 두 사람의 발끝이 사이좋게 한데 모였다.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발가락들은 영화의 주연과 조연을 번갈아 연기한 배우들처럼 제각각 빛난다. 바닷가를 찾은 비아가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면서 추억에 잠길 때 그녀의 할머니의 위로가 떠오른 것처럼, 다시 꺼낸 그날의 사진에선 뉴욕을 떠난 할머니의 음성이 나직하게 들려오는듯하다.
“And you have me. 너에겐 내가 있단다.”
촬영장소: 뉴욕
작가 소개: 윤한구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양육과 함께 시작된 아빠 사진가의 길을 계기로 사진 세계에 입문했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저개발국가의 척박한 난민 캠프이든, 화려한 도심 속 번화가이든, 강렬한 조명 아래의 런웨이든, 처음에 가졌던 아빠의 마음으로 사진작가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으며, www.justfabulousmonk.com을 통해 그의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